1990년대 초 등장한 미국의 PR대행사 파커 앤 리(Parker & Lee)의 창업자 중 한 사람인 아이비 리(Ivy L. Lee)는 ‘현대 미국 PR의 아버지’라고 불려지고 있다. 1990년대 초개혁과 항의를 외치는 여론으로 수세에 몰린 기업들은 PR을 수단으로 대처하고자 했지만 대부분이 전직 기자였던 초기 PR인들은 언론대행술(press agentry), 즉 확대, 과장하는 선전기법을 주로 하는 PR기법으로 사실의 호도를 일삼았다. 그러나 아이비 리는 뚜렷한 PR원칙을 선언하고 ‘원칙’에 의한 PR활동을 수행한 결과 언론대행술은 퍼블리시티로 발전했다.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리는 ‘월드’잡지 기자로 업계를 담당하는 동안 당시 기업이 당면한 문제점을 파악했다. 1903년 그는 5년간의 기자생활을 청산하고 PR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후 1934년 그가 죽을 때까지 거의 30여 년간 여러 가지 PR 원칙과 기법을 창안하고 실천함으로써 미국 PR계에 우뚝서는 존재가 되었다.

리는 1904년 역시 전직기자 출신인 죠지 파커(George F. Parker)와 동업하여 미국에서는 세 번째로 PR전문대행사 ‘파커 앤 리(Parker & Lee)’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PR계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가 원만치 않아 큰 실적을 쌓지 못했고, 4년 후인 1908년 리가 펜실베이니아 철도사의 홍보부장이 되면서 해체되었다. 이 기간 중 리는 기업주로 하여금 그의 신념을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기업이 숨기고 알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대중으로부터 의혹을 사게 되는 소지라고 믿었으며, 기업은 모든 사실을 정직하게 알려야 하며 그 입장을 명백히 드러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리는 1906년 한 무연탄광의 파업사건에서 탄광업자인 배어사(George F. Baer & Associates)를 PR고객으로 하여 일할 때 ‘원칙의 선언(Declaration of Principles)'을 발표했다. ’공중에게 알려야 한다(The public be informed)'는 원칙을 기초로 하여 그의 PR관을 피력한 것이 바로 ‘원칙의 선언’이다. 기업은 전통적인 관념대로 공중을 무시해서는 안되며 언론대행 기법으로 속여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시 모든 언론사 사회부장들에 포한 ‘원칙의 선언’은 현재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원칙적인 것이나 그 당시 시대상황으로는 아주 혁명적인 것이었다.

“우리 회사는 비밀 신문국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모든 일은 공개적으로 행해집니다. 우리들은 뉴스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우리 회사는 광고대행사가 아닙니다. 만약 우리들의 자료가 당연히 광고국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쓰지 마십시오. 우리들의 자료는 정확합니다. 우리가 제공한 자료의 주제에 대해 더 필요한 세부사항은 즉시 제공될 것이며, 어느 편집자도 관련된 사실을 직접 확인함에 있어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중략)...... 요컨대 우리의 방침은 기업과 공공단체를 위해 솔직하게 터놓고 말하여, 공중에게 가치있고 흥미로운 주제에 관한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미국의 신문과 공중에 제공하는 것입니다. ”

리는 이런 원칙 아래 문제가 된 무연탄광파업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대했다. 모든 정보는 원칙적으로 공개되었으므로 당시 파업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업무는 훨씬 수월했다. 기자들이 파업을 둘러싼 노사회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회의가 끝날 때마다 리는 기자들에게 회의결과를 보고해 주었다. 리는 또한 최초로 대규모적인 ‘자료배포제(handout system)’를 실시하여 기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리는 정보의 공개와 편의 제공으로 기자들의 호감을 샀으며, 결국 파업에 대한 회사의 입장이 정확히 보도될 수 있었다.

당시 리는 ‘퍼블리시티(publicity)'라는 말을 썼으며 1919년까지는 PR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다. 그는 ’퍼블리시티’에 기업경영단에 대한 자문 기능까지 확대하여 PR로 발전시켜 나갔다. 1914년 12월부터 록펠러 2세의 PR자문역을 맡은 그는 록펠러가의 이미지 개선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면서 PR인으로서 명성을 굳혀 나갔다.

20세기 초 미국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과정에서 록펠러(Rockfeller)는 대기업이 되면서 부정한 폭리와 노동운동의 강경진압으로 ‘기업악의 화신(the epitome of the evils of business)'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당대 최고의 PR인 아이비 리는 록펠러의 ‘이미지관리’를 하게 된다. 물론 당시는 ‘이미지관리(Imagement = Image + Management)'라는 합성어도 생기지 않았을 때이고 아이비 리는 록펠러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잠재우겠다는 전략적 접근을 했을 뿐이다.

록펠러의 PR자문을 맡은 리는 ‘탐욕스럽고 뻔뻔한 서민의 적(a rapacious, unscrupulous enemy of the common man)’이라는 록펠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그가 1937년 97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 ‘친근한 영감님(the kindly old fellow)'의 긍정적 이미지로 끌어올렸다. 록펠러의 이미지관리에 있어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비 리가 직접 록펠러와 대면해서(face-to-face) 종합적인 전략을 짰고, 록펠러는 아이비 리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아이비 리의 이미지관리에 포함된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록펠러의 사업과 자선기금에 대한 광범위한 호의적 보도를 위해 교육기관과 의료기관에 총 5억 달러를 기부한다.

(2) 록펠러가 만찬회등의 공공행사에 참석하여 만찬연설을 통해 보도 기회를 획득한다.

(3) 록펠러의 “자애롭고 인간적” 이미지를 조성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기사화한다. 즉 아이들에게 은화를 무심코 건네주는 그의 행동이나, 의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마음내키는대로 골프를 즐기는 그의 행동을 다룬 인간적 관심(human interest)을 불러일으키는 기사를 개발한다.

(4) 록펠러와 그 가족의 동정적 부고자료를 배포하고 문필가에게 의뢰하여 그의 전기를저술하게 한다.

리가 대기업주를 고객으로 PR자문을 하면서 특히 강조한 점은 훌륭한 실적이 동반하지 않는 PR이란 실은 ‘홍보의 망상(fallacy of publicity)’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돈많은 기업인들을 인간화(humanize)하는데 최대한 노력했다. 그는 PR을 단순한 대행업무에서 ’기업의 참모(brain trust for the businesses we work with)' 기능으로, 더 나아가 ‘자문(public relations counseling)' 기능으로 확대하여 오늘날의 PR 기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했다.

PR인으로서 아이비 리의 공적은 역사상 길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PR실무가로서 그의 행적에 대한 비판 또한 컸다. 그가 1914년 12월 록펠러의 PR자문역을 맡을 당시 노동파업을 진압하는 기업주로서 록펠러의 난폭한 행위는 맹렬한 지탄을 받고 있었다. 록펠러에 대한 비판은 리의 PR활동에까지 비화되어 업턴 싱클레어는 그에게 ‘독풀 아이비(poison ivy, 독풀 넝쿨의 일종)’라는 별명을 붙인다. 또 당시의 투쟁적 언론인 죠지 크릴(George Creel)은 리를 ‘여론독살자(poisoner of public opinion)'라고 불렀다.

리의 PR행위가 실질적으로 의혹을 사게 된 것은 나치스가 장악하고 있는 독일계 파벤(I. G. Farben)그룹 산하의 ‘저먼 다이 트러스트(German Dye Trust)'를 위해 PR을 대행했다는 점이다. 리는 1933년 연간 25,000달러 및 기타 비용을 지불받는 대가로 독일 회사의 PR대행을 맡았다. 이 일로 아이비 리는 돈만 주면 비윤리적인 일이라도 언제나 기꺼이 하는 PR인으로 인식되어 그의 윤리적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그러나 그는 죽기 직전 나치정부로부터 직접 돈을 받은 일은 없었으며, 미국 파벤사(American I. G. Farben)와의 관계를 확대하는 일환으로 독일 파벤사와 관계를 맺었다고 해명했다. 또 전범재판소에 제출된 기록에 의하면 파벤이 리를 고용한 것은 나치의 선전원으로서가 아니라 나치 정권의 정책을 유화하려는 노력에서였다고 했다.

아이비 리가 활동했던 시대적 상황은 미국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과정에서 부정한 폭리, 노동운동의 폭압 등 기업의 횡포가 빈번했으며 한편으로 언론은 기업의 추문을 폭로해서 터뜨리기에 열을 올리는 ‘muckraking journalism'이 만연한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칙의 선언‘을 하면서 공개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주는 PR을 표명하고 나선 아이비 리는 분명 ’현대 미국 PR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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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의 김경해입니다. 큰생각과 큰PR을 위한 이야기들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by 김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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