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에 해당되는 글 69건

  1. 2008년 04월 16일 [KPRCA 기고문] Post-국정홍보처 시대의 홍보 (3)
  2. 2008년 03월 10일 정치인들도 MPR 기법을 도입하라! (16)
  3. 2008년 03월 10일 PR 최고의 가치는 진실
  4. 2008년 03월 10일 고객이 즐거운 마음으로 “시간당 청구금액(hourly rate)"을 지불하게 만들자! (2)
  5. 2008년 03월 10일 Editorial : 사설? or 기사?
  6. 2008년 03월 10일 종이한장 차이로 생과 사가 교차
  7. 2008년 03월 10일 정부 역사상 최초의 본격적 위기관리 교육 강연회 실시 (4)
  8. 2008년 03월 10일 아버지가 아들에게 던진 한마디
  9. 2008년 03월 10일 외신기자를 내 사람으로 만든 김우중 전 대우 그룹 회장
  10. 2008년 03월 10일 다 잃은 후 더 많은 것을 얻은 옛 삼호건설의 설립자 조봉구씨와의 워싱톤에서의 짧은 만남
  11. 2008년 03월 10일 호리에 행장 전격경질과 숨막히는 숨바꼭질
  12. 2008년 03월 10일 MPR의 핵심은 최상의 핵심 메시지(Key Message) (2)
  13. 2008년 03월 10일 MPR의 전술들
  14. 2008년 03월 10일 MPR은 PR의 꽃
  15. 2008년 03월 10일 한국토요타의 현지문화존중마케팅 [성공적인 주요 MPR사례들]
  16. 2008년 03월 10일 한글과 컴퓨터와 MPR
  17. 2008년 03월 10일 주문고객이 30분이상 기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30분 넘으면 무료: 도미노피자의 성공적인 MPR전략
  18. 2008년 03월 10일 캠벨수프(Campbell Soup)의 미디어 이벤트 '수프의 달' (National Soup Month)
  19. 2008년 03월 10일 광고계의 살아있는 신화 오길비와 MPR
  20. 2008년 03월 10일 위기를 기회로 바꿔 매출신장 40%를 기록한 LG전자의 MPR
  21. 2008년 03월 10일 "인형하나 양자하십시오"
  22. 2008년 03월 10일 예쁜 바비(Barbie)에서 여성 바비로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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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2008년 03월 10일 맥스웰 하우스, 커피회사야? 건설회사야?
  25. 2008년 03월 10일 콜레스테롤 뽀개기 - 맥닐 컨슈머 헬스케어
  26. 2008년 03월 10일 사진이야? 프린트야? 엡손 스타일러스 칼라 740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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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2008년 03월 10일 퍼플문 왜이래? 여자들도 게임 좋아한다구

Post-국정홍보처 시대의 홍보


 

김 경 해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대표이사)




 


지난해 국민들이 내린 선택에 따라 참여정부의 뒤를 이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 많은 국민들이 희망찬 변화를 기대하는 가운데 우리 홍보업계는 국정홍보처의 폐지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게 되었다. 국정홍보처의 폐지는 단순히 정부조직 편제의 변화뿐만 아니라 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새 정부에서는 모든 정부부처 직제에서 '홍보'라는 말은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실패의 책임과 일방적 정책홍보방식에 따른 부정적 이미지를 홍보업계가 함께 떠안게 된 셈이다. 따라서 지금은 홍보업계가 현재 안고 있는 이미지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우리 홍보업계의 앞길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하겠다. 본 글에서는 홍보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홍보업계가 공공부문에서 겪었던 윤리적인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이를 통해 우리 홍보업계의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미국의 국가역사는 길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다양한 홍보모델을 발달시켜 왔는데 각 모델마다 장단점을 안고 있다. 먼저 미국의 독립전쟁을 촉발시킨 것으로 유명한 '보스톤 대학살(Boston Massacre)'은 사실 보스톤에 주둔한 영국군이 군인과 시비가 붙은 보스턴 항구의 부두깡패 등 다섯 명을 사살했던 사건인데 보스톤의 선동가(propagandist)들이 시민들을 움직이기 위해 '대학살'이라고 부르면서 널리 알려졌다. 정치적인 선동의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하여 ‘대학살’로 과장한 것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불리우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서양 속담 중에 ‘강을 건너는 도중에는 말을 바꿔 타지 말라’(Don't change horses in the middle of a stream)는 표현이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중에 지도자를 바꾸지 말라는 뜻으로 이 속담을 사용해 재선에 성공했으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자신의 네번째 임기에 도전하면서 같은 속담을 캠페인 슬로건으로 사용했다. 이에 공화당 후보였던 토마스 듀이 측에서는 당시 유명한 선전담당자(press agent)였던 짐 모란(Jim Moran)으로 하여금 네바다의 트러키(Truckee) 강에서 말을 바꿔 타는 이벤트를 연출하도록 했다. 말을 타고 강을 건너던 짐 모란이 강 한 가운데서 가볍게 다른 말 위로 올라 타자 강 건너편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속담 그대로 말을 바꿔 타도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이 사진으로 ‘한 방’을 노렸던 공화당 후보는 결국 큰 표 차이로 선거에서 패하고 말았다. 정책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홍보활동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단지 시선을 끄는 유사사건(Pseudo event)을 만들어 낸 것은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지난 1990년대 초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시 쿠웨이트 정부와 한 글로벌 홍보대행사가 만들어 낸 '인큐베이터 학살사건' 또한 세계적으로 윤리적인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미국 의회에서 15세의 나이라(Nayirah)라는 이름의 소녀는 병원 안에 난입한 이라크 군이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수 백 명의 아기들을 바닥에 던져 죽게 만들었다는 증언(testimony)을 했으며 해당 홍보대행사에는 이라크군의 만행에 관한 VNR(Video News Release)을 제작해 전국의 매체에 배포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 소녀가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라는 것이 밝혀져 증언내용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자유 쿠웨이트를 위한 시민모임(Citizens for a free Kuwait)'이라는 시민단체의 실질적인 후원자도 쿠웨이트 정부였음이 밝혀졌다.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 사실을 조작했다는 점과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뒤에서 조종하는 행위가 미국 PR협회 윤리강령에 위배되어 관련자와 해당 홍보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큰 비난을 받았다.

 



위에서 살펴 본 사례들이 다소 극단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지만 정책홍보의 목적이 공공성을 띤다고 해도 절차 및 수단에 있어서까지 윤리적인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음을 지적하고 싶다. 홍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미다스(Midas)의 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정부부처와 기업들은 홍보인만 개입되면 그 어떤 것이든 잘 포장되고 미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때로는 우리 업계도 스스로를 ‘분장사’로 생각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랜 PR역사를 지닌 미국의 정책홍보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이 우리에게서도 부분적으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일방향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홍보업계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노무현 참여정부에 허물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자금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투명성을 높여서 PR의 사업영역을 키웠다는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전에는 사회가 불투명했기 때문에 주로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홍보(defensive PR)만이 가능했다. 그러나 사회 전반이 많이 투명해지면서 각 조직에서 국민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홍보활동이 더욱 활성화 되었다. 참여정부가 기존 언론에 불만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정부체제 및 정책의 일방향적인 전달도구로서 홍보업계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 언론과 국민들은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다. 친정부 매체와 일방향적인 홍보를 통해 정부의 메시지를 직접 국민에게 전달하려는 시도는 결국 새 정부의 국정홍보처 폐지로 이어졌으며 홍보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으로까지 귀결되어 버린 것이다.

 



참여정부 아래에서 주요 정책을 포장, 화장, 과장하는 도구로 쓰이면서 홍보업계 스스로 홍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낳은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참여정부가 내세운 국민의 정책참여 과정에 과연 우리 홍보업계가 국민과 정부의 쌍방향적인 의사소통을 이끌어 내는데 얼마나 기여했던가? 당장의 사업수익에 이끌려 좀 더 전략적이고 전문성 있는 홍보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소극적이지 않았던가 하는 뒤늦은 자성을 해 본다.

 



최근 홍보업계를 둘러싼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해외 홍보업계에서는 새로운 홍보용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새로운 홍보기법들이 활용되고 있어 국제적인 수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우리 홍보업계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홍보업계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큰 생각(Big Think)”이 필요하다. 필자가 오래전부터 강조해 온 바와 마찬가지로 최근 방한한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경영대학의 번트 슈미트(Bernd Schmitt) 교수는 기업들이 ‘큰 생각’을 펼쳐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슈미트 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는 매일같이 산을 향해 바위를 굴려 올리다 실패하는 저주받은 삶을 반복하지만 오디세이는 오랫동안 지속되던 트로이와의 지루한 전쟁에서 대형목마를 생각해 냄으로써 승리를 이끌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난공불락의 트로이 성을 공략하기 위해 오디세이는 대형목마 속에 군사를 숨겨둔 채 트로이에 선물로 바친 뒤 승리감에 도취한 트로이 성을 하룻밤만에 함락시킨다. 결국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틀에 박힌 작은 생각을 벗어나 ‘트로이의 목마’와 같은 창조적인 큰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홍보업계도 마찬가지로 ‘큰 생각’이 필요하다. 미국 홍보업계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에드워드 버네이즈(Edward Burnays)는 1920년대 중반에 판매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베이컨 회사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버네이즈는 미국인들의 식생활 변화로 인해 베이컨 시장이 축소된 상황에서 경쟁업체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기 보다 아침식사의 영양학적, 의학적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시장을 키우고자 했다. 버네이즈는 토스트와 커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때우던 미국인들에게 저명한 의사들을 통해 아침식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마침내 계란 후라이와 베이컨이 포함된 미국식 아침식사(American Breakfast)가 미국 사회에 뿌리 내렸고 당연히 베이컨 시장은 급성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홍보업계가 큰 생각을 할 때 고객사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동시에 홍보시장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사회적 미디어(social media) 등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동향에 대해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와 ‘공유’로 대표되는 사회적 매체의 등장과 이에 따른 사회적 현상은 더 이상 전통적인 언론관계 활동이 효과적일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새 파워블로거와 전통적인 언론매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소비자들이 직접 생산한 메시지가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사회가 되었다. 물론 모든 홍보인들이 블로그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으나 새로운 흐름을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이해하고 자신의 업무에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미 마케팅이나 광고업계 종사자들은 새로운 미디어를 업무에 적극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셋째, 홍보업계의 윤리성을 높여야 한다. 비록 참여정부에서 퍼블리시티 기능이 주로 활용되었지만 우리 홍보업계는 전략적 컨설팅과 공중의 관계관리 기능을 담당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도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펼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로부터 윤리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홍보기업 및 직원 전체의 윤리의식을 높일 때에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의사나 변호사들은 전문성과 함께 윤리성을 강조함으로써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우리 홍보업계도 윤리의식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과 실천이 필요한 때라고 하겠다.

 



네 번째로, (‘홍보’를 ‘홍보’하기 위한) 홍보업계의 단합된 노력이 필요하다. 홍보의 다양한 기능과 더불어 효과성 및 효율성을 적극적으로 사회에 알려야 한다. 광고나 마케팅에 비해 홍보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들이고서도 효과적인 결과(cost effective)를 이끌어 낼 수 있지만 아직까지 사회 각계에서는 홍보의 효율성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들이 새 희망을 갖고 맞이하는 이명박 정부시대에 정작 우리 홍보인들은 홍보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스스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비록 지금은 홍보에 대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인들이 산재해 있지만 업계 전체가 홍보업무의 전문성과 윤리성을 높이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 우리 홍보업계의 노하우(know-how)이듯 현재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도록 하자. 이번에 한국 PR기업협회에서 발행하는 온라인 계간지가 회원사를 비롯한 업계의 윤리의식과 전문성을 높이는데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홍보산업의 진정한 전도사가 되기를 기대한다.



* KPRCA에서 발간하는 온라인 뉴스레터 Headway 2008 Vol.1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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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년 04월 16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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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의 윤리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공감, 그리고 배움 얻고 갑니다. :) 언제나 귀감이 되는 사장님의 칼럼에 감사합니다 ^^
  2. 김경해
    2008년 04월 18일 14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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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K를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조대리에게 항상 고마움을 표합니다.
    우리PR인들은 윤리적인 측면을 항상 염두에 두고 PR활동을 한다면 사회로 부터
    존경받는 전문인이 되겠죠. 계속 수고해 주세요.
  3. 2008년 04월 23일 11시 16분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사장님, 어제도 블로그에 대한 많은 관심 보여주시면서 여러가지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 사장님께서 가지신 많은 철학과 insight들을 우리 직원들은 물론 후학들과 공유하시는 media로 이 블로그를 운영해 나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종종 들르겠습니다 사장님. 건강하세요.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펼쳐보면 하루 사이에 벌어진 수많은 위기의 순간들을 접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 나의 하루를 돌이켜 보더라도 실수로 혹은 예기치 않은 일로 위기를 겪게 된다. 표면으로 보이는 이유는 각기 다른 듯 하나, 내면의 문제를 파헤쳐 보면, 이는 바로 전략적 위기 커뮤니케이션 부재로 발생한다.




특히 이해관계가 각기 다른 국민들을 주요 공중으로 고려해야 하는 정당 및 정치인의 경우는 그들과 신뢰를 바탕으로 장기적이고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해 가는 과정 속에서 매 순간 위기에 철저히 노출되어 있다. 또한, 한번의 위기로 국민들의 마음에서 멀어진 정당 및 정치인이 다시 기존의 명성 및 신뢰를 쌓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위기를 사전 예방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위기관리 프로그램 교육에 대한 정당 및 정치인들의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지난 대선의 가장 큰 패인을 스스로도 홍보의 문제로 꼽고, 개혁적으로 '정치 PR 특강'을 추진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정치인들의 이 같은 위기관리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지난 2003년 7월 9일, 정부 및 정치인 대상 최초의 위기관리 교육 프로그램으로 저자의 '정치인과 위기관리'의 특강을 개최하였다.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정치인과 정부 관료 그리고 PR에 관심 있는 학생 등 120여명이 자리를 가득 매웠다.




먼저, 저자는 정치인들은 이미지의 위기, 정체성의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실수, 언론관계 속 위기, 국민의 불신 등의 위기상황에 놓여 있지만, 그 어떠한 경우라도 위기관리의 첩견으로 꼽히는 사전대응적(Proactive)인 준비자세를 갖추고, 평소 좋은 이미지를 심어둔다면 위협스럽게만 느껴지는 위기는 바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전략적 관리의 중요성은 지난 대선 기간 중 여러 차례 보여진 노무현 후보의 위기 정면 돌파의 모습이나 사스로 중국 전체가 비상사태까지로 발전하였을  때 한국의 LG전자가 위기관리 전략인 '중국 사랑 캠페인'을 도입 오히려 매출이 급증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게 된 사례를 통해 더욱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위기 발생 이후 책임자 문책으로 쉽게 위기를 종결 시켜 버리는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위기 불감증 문제는 바로 위기관리의 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상기 시켰다. 따라서, 강의 중 위기관리 Process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며 듣게 되었다. 위기 상황들은 먼저 내부인사 및 외부 전문가와 언론인을 통해 진단을 통해 (Crisis Audit) 완화(Mitigation) 과정을 거쳐, 사전대응적이며 모든 가정 시나리오를 상정하여 이에 대한 전략 수립이 구체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CMM)을 작성하고, 모의 훈련(Simulation) 을 통해 사전 대비하여 회복(Recovery) 과정을 거쳐 교훈(Lesson)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게이트 키퍼와 여론 조장의 역할로 지금까지도 큰 힘을 작용하는 언론 관계에서의 위기에 관한 토픽이 나오자 실무에서 직접 언론을 접하고 있는 정치인 및 정부 관료분들이 보다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종에 목숨을 걸어야 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언론의 성격을 절실히 이해하였을 때,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정치인들은 반드시 언론 훈련(Media Training)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끝으로 '정치인의 위기관리 10계명' 이라는 타이틀로 '자신을 마케팅 하는 키워드를 개발해야 한다.'는 4번째 계명을 스스로 실천해 주신 김경해 사장의 얘기 중 특히 실무에서 바로 적용 할 수 있는 정치에 MPR 기법을 도입하여 정치 CEO 가 되어야 한다는 부분에서 특히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략적인 단어 선택을 통해 참신한 메시지를 쉽게 전달하여 정통한 커뮤니케이터가 되어야 한다는 계명에서는 여성흡연이 금지되어 있던 시절 자유의 횃불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여 여권신장의 이미지를 흡연에 심을 수 있었던 에드워드 버네이드의 예를 접할 수 있었는데, 그의 뛰어난 창의력과 전략적 언어구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끊임없는 여론 진단과 스스로의 브랜드와 이미지도를 측정하야 하여 홈페이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하나의 전문 분야를 자신의 브랜드화 시키는 동시에 TV 토론 철저히 준비하고 연습하여 주요 이미지 전략의 수단으로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21세기의 키워드인 신뢰,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계명에 보다 무게를 실어 강의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예시와 핵심을 집어주는 명쾌한 설명으로 위기관리 특강은 뜨거운 열기 속에서 2시간여 동안 진행되었다. 강의가 진행되어 가고 있는 그 순간에도 밖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를 끊임없는 위기들을 직접 관리해 가야 하는 정치인 및 정부 관료들인 만큼 강의가 직후 이어진 질문과 답변 시간에도 질문의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위기관리 전문가의 조언을 얻기 위한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먼저, 무엇보다도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언론관계에서의 위기관리 관련 질문이 들어왔다. 언론기사에서 잘못된 인용보다 부수적인 내용을 제목으로 하거나 편집상 부정적인 내용을 제목으로 뽑는 경우의 위기관리 방안을 궁금했다. 저자는 예를 들어, 'We do not'이 아니라, 'Don't'를 사용하는 전략적인 단어 선택을 통해 언론과의 관계 설정하여 기자가 ‘not'를 놓칠 수 있는 여지를 처음부터 차단하여, 언론이 결정적인 부분에 대해 잘못 인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을 마련/ 관리하고, 기자들이 이러한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하였다.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한나라당이 처한 가장 큰 이미지 위기인 '늙은 당'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실제로 출마예상자 또한 나이 든 후보가 많은 현실을 직시할 때, '젊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공격을 당할 경우, 신체적 나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을 묻는 물음에 대해서 신체적 나이에 관계없이 젊은 메시지를 던져야 된다고 강조하였다. 즉, 신체적 나이를 극복하기위해 선거 캠페인이나 TV토론에서 젊은 이미지, 튀는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전략을 활용하며 이는 특별한 메시지나 이벤트를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유권자와 후보자간 활용 가능 한 미디어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현대에서 가장 좋은 미디어는 홈페이지이므로 유권자와 소통할 수 있도록 적극 활용을 제안하셨으며, 지역구의 오피니언 리더와 이메일, 문자메세지 등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하는 방법도 제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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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년 04월 08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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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해 사장님, CEO 블로그 오픈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에델만 코리아에서 근무하고있는 이중대라고 합니다. 앞으로 블로그를 통해 사장님의 많은 인사이트를 접할 수 있길 기대하겠습니다.
    • 2008년 04월 10일 13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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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대씨, 우리 직원들로부터 이야기 많이 듣고 있습니다.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우리 PR계에 많은 업적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축하 감사합니다.
  2. 2008년 04월 09일 01시 29분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사장님 안녕하세요. 블로그 오픈 축하드립니다. 사용하고 계신 블로그 소프트웨어인 텍스트큐브 개발사인 태터앤컴퍼니 홍보팀의 이미나입니다. 처음 홍보를 시작할 때 사장님께서 저술하신 책들을 보며 공부했었습니다. 이렇게 블로고스피어에서 뵙게 되서 정말 기쁩니다. 자주 찾아 오겠습니다.
    • 2008년 04월 10일 13시 42분
      댓글 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십니까. 직원들의 도움으로 시작은 했지만 아직도 배워가고 있습니다.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3. 2008년 04월 09일 04시 08분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김경해 사장님~ 안녕하세요.
    예전에 신인섭 교수님 소개로 CK에서 인턴했던 서재민이라고 합니다.
    블로그 개설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자주 놀러오겠습니다.
    건강하세요.
    • 2008년 04월 10일 13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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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민씨, 감사합니다. 저희 회사 인턴이셨군요. 어디에서나 우리 직원들을 만나면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4. 2008년 04월 09일 13시 47분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사장님께서 조아라 하시는 봄이 되었습니다. :) 어제 정원에서 꽃을 심고 계시더군요. 비즈니스 할 때의 샤프한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일상에서도 자주 뵙지만 블로고스피어에서 뵙는 사장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실지 기대가 되네요. 자주 놀러오겠습니다. 건강하세요.
    • 2008년 04월 10일 13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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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5. 부산댁
    2008년 04월 09일 15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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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님..블로그 오픈 축하드립니다..
    사장님 팬분들이 많으십니다..^^
    도움이 되는 글들 많이 읽고 몸에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들게 하는 장입니다..
    사장님..배려로 일본 워크샵도 잘 다녀왔습니다..
    짱님이 빠지셔서..조금은 서운했습니다..^^;;
    다음에는 전직원이 함께 할 수도 있었음 합니다...
    • 2008년 04월 10일 1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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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하게 잘들 다녀왔으니 좋습니다. 더욱 힘내서 잘 해 봅시다.
  6. prholic
    2008년 04월 09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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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도 힘든 블로그를 이렇게 오픈하시고, 좋은 글 올려주심 감사합니다. 다치시고는 한번인가, 밖에 회사에서 못뵈었어요. 종종 4층에 올라오셔서 격려의 말씀해주시고, 새까만 후배이자, 직원들 야단도 쳐주세요...
    그리고, 정말로 다음번 워크샵에는 함께 했으면 해요...
    • 2008년 04월 10일 1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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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7. 2008년 04월 10일 14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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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저는 에델만에서 근무하고 있는 황상현이라고 합니다.

    김경해 사장님 블로그 오픈 축하드립니다. '생생한 PR현장 이야기'는 제가 광고회사에서 PR회사로 넘어올 수 있는 계기가 된 소중한 책입니다.

    무례함을 무릅쓰고, 저자 사인을 받으러 CK에 한번 찾아뵙으면 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 2008년 04월 10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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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델만에서는 블로그들을 열심히 하시는군요. 반갑습니다. 황상현씨.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좋습니다.
  8. mark
    2008년 04월 11일 14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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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님의 인기와 PR에 대한 열기가 훌훌 타오르는 것 같습니다. 이제 블로그를 통해 어디서든지 사장님의 큰 생각을 볼 수 있으니 너무나 기쁩니다. 지금처럼 CK직원들 잘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2008년 05월 08일 16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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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대리, 뒤늦게 댓글을 접하게 되어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정부사장이 CK에 다시온 이후 장대리의 얼굴모습이 활짝 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직원들이 똘똘뭉쳐서 PR의 전문인이 되기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계속 열심히 대화나누고 CK를 한국최고의 PR 전문집단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힘을 모아봅시다. 감사합니다.

PR 최고의 가치는 진실

2008년 03월 10일 21시 41분

얼마 전 접하게 된 책 한 권이 우리 PR인들에게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어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그 책은 화보로 스페인을 전 세계에 알리는 두꺼운 페이지의 책자였다. 보통 한 나라를 알리는 화보집을 만들 때 문화적으로 가장 역사가 깊은, 산업적으로 가장 발달해서 세계에 내세울 수 있고, 입에 군침이 도는 일류 요리와 빼어난 자연 경관들을 중심으로 화보가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우리가 한국을 알리기 위한 두꺼운 화보를 제작할 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분명히 경주, 1988년 서울 올림픽, 제주도, 경복궁, 현대 조선, 포스코, 설악산 등을 위주로 책자를 편집할 게 분명하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스페인 소개 책자는 우리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견해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자는 스페인의 1987년 5월 7일 하루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스페인 정부에서는 전 세계의 유명한 사진 작가들을 불러 모아놓은 후 24시간을 준 후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찍게 한 후 120,000 컷트의 사진을 그들로부터 제공받아 공정한 논의를 거친 후 사진을 선정하여 그 사진들을 가지고 'A Day in the Life of SPAIN'(스페인의 하루) 이라는 제목의 화보를 만든 것이었다. 사진 작가들에게 요구한것도 1987년 5월 7일 하루의 스페인의 참모습을 전달해 줘야 한다는 것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작가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었다. 그 책의 사진들을 살펴보면, 꼭 어느 관광지나 유적지를 찍은 사진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사진들에서 스페인의 실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오히려 그 들의 실생활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면서 나는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러 사진 중에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펑크족 머리를 한 학생을 어이없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한 노인부부가 담긴 사진이 있었다. 한국을 소개하는 책자에 과연 그러한 내용이 실릴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 사진을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스페인의 젊은이들은 현재 저런 스타일이구나. 하지만 어른들은 그러한 모습에 호감을 갖지 못하는 구나. 그렇다면 스페인의 대중 문화는 펑크 스타일이겠구나 ..등등의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냥 단지 아름답고 웅장한 사진들을 연속해서 실어놓았다면 아 참 '아름답구나' 혹은 '멋있구나' 라는 생각에서 멈출 수 있겠지만 PR이란 단지 아름답고 멋있는 다시 말해 보기 좋은 것들만 포장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닌 진면목(true picture)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PR인 것이다.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며 특히 그것이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화보라면 더욱 더 진실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간 우리의 해외홍보용 화보는 화려한 모습 일변도로 편집된 것이 사실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기에 정부에서 PR을 담당하고 담당자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살아있는 한국의 모습(다소  부정적인 측면이 있더라도)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인 것이다. 거꾸로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나리의 멋지고 아름다운 장면의 사진만을 본 후 그러한 모습을 상상해 한국에 관광을 온 후 사진에서 본 것과 달라 실망을 했다면 그 후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그것보다는 스페인의 경우에서처럼 자신을 솔직하게 알려주어 정직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스페인에 대한 무한한 신뢰(trust)를 갖게 되고 또 그 화보안에 있는 다른 긍정적인 이미지를 제공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큰 신뢰를 갖게 된다. 이와 같이 PR은 신뢰에 바탕을 둘 때 진정한 설득과 상호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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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회사의 주요간부들은 시간당 청구 금액 (hourly rate)이 있다. 일반적으로 시간 당 청구 금액은 급료와 근무시간 근무일과 직급 등을 고려하여 금액을 정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나 이 금액은 상당히 주관적인 차원에서 결정이 된다.




저자는 시간당 청구 금액을 US$350으로 정해 두고 있다. 이 금액을 인정해 주는 몇몇 관대한 고객도 있지만 다른 고객들은 너무 비싸다고 불평하면서 깍아 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월 고정금액(retainer fee)을 받는 고객과 단순히 한두번 프로젝트로 하는 고객사이에도 시간당 청구금액을 달리 하는 것은 당연하기에 여러 가지 경우에 따라 그 청구 금액이 달라질 수 있다. 필자가 만난 한 나이 지긋한 미국인 컨설턴트는 시간 당 청구금액이 $50,000라고 하였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천문학적인 시간 당 청구금액을 갖고 있는지 큰 호기심을 갖고 그를 만나게 되었다. 겉보이기에는 평범한 한 노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한 한국기업의 인수․합병(M&A)과 관련된 업무를 돕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였고 필자의 회사도 그 일에 관여하고 있었기에 그 미국인 컨설턴트의 방한 첫날 저녁을 같이 하게 되었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고 서로 친밀한 분위기가 성숙했을 때 필자가 그 외국인 노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한시간에 50.000US달러를 청구한다고 하는데 고객이 그것을 인정해주는가?” “김사장,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이 시간당 50,000US달러를 지불하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야 되는지 말로 표현 할 수 없소.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고객에게 10배, 20배되는 가치를 창출해주지 않으면 이런 딜(deal)은 불가능한 것이요.“




시간당 청구 금액은 가장 핵심 전략회의나 실제 상대방과의 가격협상에 참여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하며 그 나머지 미국에서 한국까지의 비행시간, 호텔에 머무는 시간, 왕복교통시간, 식사시간 등은 청구를 하는 시간에서 제외된다. 변호사 친구와 얘기를 한참 하다가 “지금부터 자네와 하는 대화시간은 청구된다”는 얘기를 들은 경험이 있는 분들은 변호사나 컨설턴트들의 청구시간에 대해 정확한 개념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 프로젝트가 다 끝난 후 그 노인은 실제 회의에 참석한 시간을 1주일 서울 체류 동안 10시간으로 청구했다고 한다. 10시간이면 500,000 달러를 청구한 것이다. 약 6억 이다. 10시간에 6억이라는 청구 금액을 받았을 때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면서 “이 날강도 같은 X"라고 욕이라도 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이다. 그러나 그 고객은 기꺼이 500,000달러에다 실경비(OOPs : Out of Project Expense, 호텔과 식대 및 항공료 등의 비용)를 영수증대로 정산해 주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 많은 금액을 지불하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즐거운 마음으로 지불 할 수 있단 말인가?

500,000$를 청구했으나 상대회사와의 가격 협상에 있어서 그 노인의 전문적인 자문에 힘입어 그 회사는  최소한 50억은 더 받게 되었다고 한다.

6억을 투자하여 50억을 벌게 해 주는 것이 컨설턴트의 세계인 것이다. 이 경우 이 노인의 시간 당 청구 금액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계산 할 수 있겠는가? 어느 정도의 기준은 있겠지만 이 노인은 적어도 나의 컨설팅의 가치는 1시간에 $50,000이라고 주장하고 고객이 그 것을 인정해 줄 때 성립되는 것이다.




에드워드 버네이스도 나이 98세(1990년)에도 시간당 청구금액이 1,000US달러였다고 하니 그노인의 두둑한 배짱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우리 PR인들도 시간당 청구 금액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또 고객이 그 금액을 인정해주게 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고객이 기꺼이 시간당 청구 금액을 인정해 줄 때 고객과 PR회사간의 신뢰는 더욱 두터워 지고 PR회사는 고객을 위해 돈을 더 벌 수 있게  매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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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Y
    2008년 04월 09일 16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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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같은 수요일입니다. 투표하기에 딱!이라는 비오는 날씨인데, 해물파전 생각나는건 저만일까요?:)
    어제 CK정원손질에 비지땀을 흘리시는 사장님을 우연히 뵙고 인사드렸었던 김인턴입니다.
    CEO 블로그 오픈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많이 배우겠습니다~:)
    • 2008년 04월 10일 13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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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생이 많습니다. 고맙습니다.

Editorial : 사설? or 기사?

2008년 03월 10일 21시 39분

저자 회사에 근무하는 5년 차 직원이 3개 PR회사를 초청하여 제안요구서(R.F.P.:Request for Proposal)관련 설명회에 다녀와서 저자의 방으로 들어왔다. 물론 그 설명회는 영어로 진행되었다. “사장님, 주요 신문에 사설로 나오게 해야 되는 일이니 아주 힘들 것 같습니다. 우리가 노력한다고 고객의 입장을 옹호하는 사설이 나오겠습니까?” "그래요. 사설의 톤까지 우리가 영향을 미쳐야 한다면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기사도 우리가 객관성 있는 자료를 주면 그것을 가지고 기자들이 균형 있는 기사를 쓰는데 이 고객의 품목이 사설에 나올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것 정말 힘든 일인 것 같군요“ 이런 대화를 약 15분간 나누다 보니 저자는 뭔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Editorial‘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우리는 신문의 사설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단어가 ’기사‘라는 의미로 아주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오로지 사설이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여 이렇게 큰 착오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editorial이라는 단어가 외국인이 사용할 때 그 의미가 뭔지를 앞뒤의 문맥(context)상 정확히 파악하여야 한다.

언론계경험이 없는 학자들이 언론관계 책을 번역하면서 범하는 실수중의 하나가 story를 ‘이야기’로 번역하는 것이다. story는 ‘기사’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기에 이  또한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자료를 가지고 ‘기사화 하다’라는 단어를 ‘editorialize' 혹은 'storify'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기사를 의미하는 또 다른 단어는 'article'이다.




이런 설명을 해주니 그 A.E.는 모든 고민이 해결 된 것이다. 그 잠재고객이 원했던 것이 사설이 아닌 객관적인 기사로 보도되는 것이었다. 많은 외국의 고객을 대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들이 무리스럽게 기사화를 요구하지 않고 균형감각을 갖고 기자들이 기사를 쓰게 도와준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국내 대기업들이 자체 홍보팀을 갖고서 자체적으로 홍보업무를 하고있기에 PR회사의 많은 고객이 외국기업이기에 항상 영어와 씨름을 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영어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필수적이니 이런 착오가 종종 발생한다. 그래도 몇 년전과 비교하면 상황이 많이 좋아진 것이다. 국내 고객들 중 PR회사의 서비스를 받는 회사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아직도 문을 열고 있지 않는 회사들도 주요 프로젝트에 한해서는 PR회사를 아웃소싱하고 있는 일이 종종 있기에 앞으로 PR회사의 잠재력은 더욱더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사설과 관련된 얘기를 한번 다뤄보자.
저자의 회사가 원자력 폐기물 부지 선정과 관련된 위기관리 프로젝트를 맡고 있을 때 원자력 폐기물들이 안전하게 저장될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임시로 발전소옆에 저장되어 있는 것은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신문의 사설이나 방송의 해설기사로 다뤄진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주요 일간지의 논설위원과 주요 방송사의 해설위원들에게 정보를 줄 방도를 생각하고있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도전해보는 것이다. 제주도 세미나를 조직하였다. 원자력 폐기물 처리와 관련된 외국의 사례, 국내의 현황, 한국전력의 앞으로의 사업 방향과 원자력 폐기물 처리장을 지지하는 서울대 홍두승 교수의 발표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세미나를 조직하였다.




처음에 언론인들의 반응이 시큰둥하였으나 세미나 참석 후 꼭 우호적인 사설을 써야하는 부담은 전혀 없다고 얘기하고 주요 세미나 프로그램을 얘기하니 반응이 달라져서 약 15명의 논설위원과 해설위원을 제주도로 초청할 수 있었다.

약 2시간의 프로그램 진행 후 제주도의 싱싱한 회를 즐기면서 식사와 소주로 피로를 풀었다. 그 자리에서 많은 언론인들이 “이렇게 유익한 세미나는 처음이다. 원자력 폐기물 처리장이 왜 필요한지를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고 또 많은 객관적인 자료를 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였다. 이쯤 되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였고 이 세미나를 위해 직접 서울에서 내려온 한전의 최수병 사장도 대단히 만족하였다. 이 제주 세미나 이후 별도로 부탁도 하지 않았으나 3, 4일 후 6개 신문사에서 원자력 폐기물 처리장의 당위성과 현재의 상태는 위험하기에 안전한 원자력 폐기물처리부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설이 나와 원자력 폐기물 처리 부지선정을 책임지고있는 원자력 환경 기술원은 큰 힘을 받게 되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감히 어떻게 사설까지...”라고 생각 할 수 있으나 논설위원들과 해설위원들은 매일매일 사설을 쓰고 해설을 내보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럴 때 객관적인 자료로서 깊이 있게 설명하는 세미나를 개최한다면 위와 같은 좋은 결과도 기대할 수 있는 거이다. 이와 같은 행사의 성공여부는 얼마만큼 객관적인 자료를 많이 준비하느냐는 것이고 거기다 전문가 한사람을 초빙하여 그가 양쪽을 다 짚어 가면서 그의 전문가적인 견해를 밝혀 주면서 간접적으로 원자력폐기부지 선정의 당위성을 설명해주면 큰 도움이 된다. 서울대학교 홍교수는 평소 그가 갖고 있던 원자력 폐기물에 관한 그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발표해주어 큰 힘이 되었다.

기사를 사설로 잘못 오해할 필요도 없지만 또 사설의 톤을 움직인다고 하더라고 전문적인 접근을 하여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한다면 생각지도 못한 큰 수확을 거둘 수도 있는 것이 독특한 미디어의 생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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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한장 차이로 생과 사가 교차

2008년 03월 10일 21시 37분

2002년 어느 봄날, 점심 후 나른한 봄기운을 내 쫒기 위해 시원한 곳에서 저자의 회사의 강형석 부회장(전 서울신문 기자, 주 수단, 말레이지아 및 덴마크 한국대사관 공보관, 국무총리 공보비서관)과 마주앉게 되었다.

언론계 선배로서 해외공보관으로서 외국에서의 많은 시간을 보낸 분이라 재미있는 PR관련 에피소드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얘기를 유도하였다.

한참과거의 경험담을 털어놓다가 말레이시아 공보관시절 전두환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하였을 때의 아웅산 사태를 얘기하는 것을 듣고 PR현장은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정도로 살벌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때 미얀마에는 공보관이 없었기에 대통령이 미얀마 방문 약 한 달 전부터 말레이지사 공보관이었던 강부회장이 현지에 파견되어 그 쪽 언론인과의 관계를 강화하였다고 한다. 한 달 동안의 치밀한 언론관계로 상당히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청와대 공보수석과 아침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 그간 미얀마에서 한 일들을 짧게 요약해달라는 공보수석의 요청을 받고 강부회장은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웅산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미리 기자들이 아웅산 국립 묘지에 가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기에 강공보관이 그 자리에 가서 사진기자들이 사진 찍을 장소를 미리 정하고 모든 점검을 확인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종이 한 장정도로 요약해야되는데 쓰다보니 2장으로 넘어가서 약간 길어져서 그때까지 끝내지 못 하게 되었다. 이것을 본 청와대 공보수석은 원래 이순자 여사를 수행하기로 된 청와대 공보차석을 아웅산으로 가게하고 강공보관은 쓰고 있던 보고서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순자 여사를 수행하게 일정을 바꾼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아웅산으로 간 청와대 공보차석은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강공보관은 그때의 상황을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얘기하면서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저자는 아웅산 사태 이후 재무부차관으로서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했다 목숨을 잃은 분의 부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의 설명에 의하면 전두환 대통령은 수시로 집으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하고 딸, 아들이 결혼할 때는 꼭‘축의금’을 전달하고‘내가 너희의 아버지’라고 격려하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 전두환 대통령의 따뜻한 인간미를 접하기도 하였다.

그때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내각이라고 할 정도로 드림팀이었다. 너무나 환상적인 콤비들이었기에 조물주가 시기가 나서 그런 사건이 벌어지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 정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 사건이 터지자 서울에서는 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어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우선 기사를 써야하는데 당장 객관적으로 입증할 아무 자료가 없었고 심증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 ‘북괴의 만행으로 보이는....’정도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누구도 그 상황에서 정확한 근거를 갖고 기자들에게 브리핑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1분1초를 다투는 것이었다. 이 국가적인 비극을 보도해야 되는 언론과 정확한 범인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의 대 언론 발표 책임자와의 관계에는 서로의 이해 관계가 다르기에 큰 긴장감과 경계심이 조성되게 되어 있다. 그때 누군가 “ 북괴의 소행으로 보이는....”이라고 브리핑을 한다면 언론의 갈증은 해소되고 전단 제목이 하나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추측이 맞아들어가지 않았을 경우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너무도 끔찍해서 생각하기조차 싫은 것이다. 이와 같이 PR현장은 항상 긴장이 고조되고 큰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나가는 하나의 인생살이와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봄날의 나른함을 이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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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18일은 정부의 위기관리에 있어서 역사적인 날이었다. 정부 각 부처와 산하단체의 위기관리 담당 공무원 200여명들이 정부종합청사 별관 강의실에 모여 서로 머리를 맞대고 국가적인 관리시스템 구축과 민간기업의 위기관리 실태에 관한 전문가강의를 듣기 위해 모인 것이다. 저자는 그들 앞에서 '위기관리 없으면 이젠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게 되어 큰 보람을 느꼈고 이 역사적인 '사건'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이번 강연회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위원장 김병준) 주최로 정부중앙종합청사 별관 대회의실에서 3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국가적인 차원의 위기대응시스템 구축을 위한 강연회였으며, 민간기업의 위기관리경영사례가 국가적 위기관리 시스템 구축에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 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었다.




먼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의 김병준 위원장의 소개와 강연에 대한 의의를 이야기했으며, 특히 참여정부의 정부혁신방안과 지방분권에 대한 의의, 위기관리행정에 대해 강조하였다. 김위원장은 학계에서 참여정부에 참여한 실력자이며 그의 위기관리시스템구축에 관한 강한 소신을 여러 차례의 미팅을 통해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저자의 '위기관리 없으면 이젠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강연이 시작되었고, 또한 위기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한 실습도 진행하였다. 각 부처 위기관리 담당 공무원들의 관심이 지대했으며, 강연과 실습 후에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져 위기관리 전반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했다. 위기관리매뉴얼을 어떻게 구축할 지에 대한 질의도 있었다.




정부부처가 강연회를 계기로 해서 위기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위기관리대응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일단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고, 민간기업의 위기관리 전문가를 초청하여 전문지식과 경험을 전달받으려는 긍정적인 기회로 활용되어 참석자들이 뜨거운 호응과 질문을 유도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위기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제고와 필요성, 중요성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의미있는 강연회였다.





강연 후에 실제 모의실습을 진행하면서 강연을 통해 얻은 지식들을 구체화하기도 했다. 각 담당자들이 소속 기관과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 2가지와 왜 그러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 지에 대해서와 두가지 위기를 담당할 위기관리 조직도(팀)를 작성, 두가지 유형의 위기와 관련한 목표 커뮤니케이션 집단 (위기의 이해당사자 집단) 정의, 두가지 위기발생후 첫 대국민 발표용 성명서의 제목과 리드 문장을 작성해보기도 했다.


 


강연회 발표자료를 통해 저자는 그동안의 위기관리 경험과 지식을 집약하여 공조직 위기관리 10계명을 발표하였다. 이에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위기는 사전에 징후(Prodrome)가 있다. 이 징후를 추적, 사전에 위기를 차단해야 한다. 이 작업이 성공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환경모니터링(Environmental Monitoring)이 필요하다.



(2) 위기시 당황하지 않고 체계적으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위기관리 매뉴얼이 필수적이다. 각부처와 지자체는 대형위기 발생이 가능한 곳을 우선 순위를 선정해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각 시나리오에 따른 모의 훈련을 주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위기의 3P(Proactive, Prepared and Practice)를 철저히 인식하게 해서 사전준비와 연습보다 더 중요한 위기대비는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야 한다.



(3) 남의 위기를 보고서 카타르시스만 맛보지 말고 거기서 교훈을 얻으라. 그리고 위기발생시 목표공중(Target Public)을 명확히 정해 그들에게 던질 '핵심메시지'를 정확히 개발하라

- 대구지하철 참사 후 일본의 지하철들이 철저한 안전재점검을 한 것은 남의 위기를 통해  나의 위기를 완화하는 위기관리의 황금률이다.



4) 위기시 대변인의 역할이 위기관리의 중요한 역할을 공보관이 당연히 대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 위기의 성격과 정도에 따라 관련 간부가 대변인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5) 사상자가 있을 때는 최우선적으로 그 가족에게 먼저 통보하라. 그 가족들이 언론을 통해서 알게 하지 말라



(6) 위기관리팀장을 즉각 임명하고 해당장관은 즉시 현장을 방문하라. 그리고 위기관리팀에는 위기관리 전문가를 합류시켜라.



(7) 사고 발생 후 24시간이 위기관리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 시간내에 얼론의 마감시간을 놓치지 말고 그때까지 밝혀진 사실만이라고 정확히 알려주라. 완벽한 보도자료를 내놓기 위해 마감시간을 놓치게 되면 신문이나 방송마다 다른 사고원인과 분석이 나오면 그 자체가 또 다른 위기를 조성하게 된다.



(8) 언론매체를 정보를 숨겨야 할 대상이라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정확한 정보를 내주어 그것을 국민과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채널이 되게 하라 .



(9) 위기시 'No Comment'라는 말을 쓰지 말라. 최대한 언론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고 정직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현재까지 거기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없을 때 'No Comment'라는 표현을 쓰면 뭔가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No Comment'대신에 "현재로선 거기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만 결과가 나오는 대로 즉시 알려드리겠습니다"와 같은 긍정적인 표현을 써야 한다.



(10) 위기를 기회로 바꾸라

사스(SARS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중국 전체를 공포분위기로 만들며 국가적인 비상사태까지로 발전하였을 때의 일이다. 당시 중국에 진출한 대부분의 외국기업들이 공포에 떨고 있을 때 한국의 LG전자는 대담한 위기관리 전략을 채택, 이른바 <'아이 자이 중궈(愛在中國)'>라는 케치프레이즈로 중국인들과 고통을 함께 하고, 사스 예방기금 공익광고도 게재하는 등 중국사랑 켐페인을 벌여 중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고, 그 결과로 매출이 전년동기대비 40% 급증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참여정부의 업적은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저자는 참여정부가 국가의 위기관리 시스템만 하나 잘 구축하여도 역사에 남는 위대한 일을 한 것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위기관리 시스템구축은 국가의 신인도를 높일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다. IMF이후 몇몇 외국인들은 대한민국을 'ROTC'라 불렀다고 한다. 대학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소위로 군에 입대하는 것이 아니고 'Republic of Total Crisis'즉 총체적 위기공화국이라는 것이다. 항공기가 추락하고 국가신인도도 추락하고 전직대통령이 감옥에 가니 위기공화국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위기관리 시스템구축을 위해 관련 공무원들을 교육해야 하며 또 그들이 교육훈련을 통해 효과적인 위기관리능력을 배양할 때 21세기 대한민국의 위상은 더욱더 높아지게 되고 위기공화국(R.O.T.C)이 신뢰공화국(Republic of Total Trust: ROTT)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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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년 05월 26일 20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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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2009년 05월 26일 20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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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3. sndkdnvksljd
    2009년 05월 26일 20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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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슨은 전기,전지를 만들어 살았다
  4. sndkdnvksljd
    2009년 05월 26일 20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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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디슨은 어머니의 머리의 도움을 받아 만들기도 좋아지고 전기제료를 만들어서 그만 손도 다치고 그리고 전기만들기꿈을 버리지 않고 다시 만들었다.
    원래 누구안태 빼았긴 적도 있다.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후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악의 축’에 비유하는 발언이 나오면서 한반도의 긴장관계가 고조되던 시점이었다. 군사전문가이면서 현재는 로비스트(lobbyist)로서 미국의 한 기업을 도와주고 있는 연세가 지긋한 미국인을 사업상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 핵과 관련된 북한 상황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한 후 북한의 핵과 관련해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중국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이 핵으로 무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으니 남한은 한반도의 핵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중국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그 전문가는 분석하였다. 북한이 핵으로 무장하고 되면 일본이 핵으로 무장하고 일본이 핵으로 무장하게 되면 남한도 그냥 있지 않을 것이니 동북아가 핵지뢰밭이 될 것이 틀림없기에 중국은 이러한 불행한 사태를 원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 전문가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악의 축’ 이라고 부른 것에 대해 집중적인 질문이 있었다.




“부시 대통령 머릿속에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서 굉장히 뿌리깊은 선입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부시대통령이 여러정보 채널을 통해 김정일위원장에 대한 독자적인 평가를 갖고 있겠지만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심어준 부분도 크게 작용하였다” 상당히 새로운 이야기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아버지 부시가 CIA국장과 부통령을 지낼 때 아들 부시는 잘 알려진 것 처럼 별로 좋은 아들이 아니었다. 마약과 알콜과 관련된 스캔달이 있는 아들을 불러놓고 나무라는 흔한아버지를 쉽게 연상 할 수 있다. 몇 번이나 아들을 불러 놓고서 좀 착한 아들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아들과 같은 사람(김정일)이 되려고 하느냐?”고 다그쳤다는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여러 번의 충고에서 아들 부시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하면 악의 모델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어서 ‘악의 축’이라는 발언이 나오게 된 발단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었다.




저자도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이런 주입식 교훈을 들은 적이 있다. ‘호랑이나 사자의 입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람의 입이다 호랑이나 사자는 직접 공격해서 물어대는 사람에게만 피해를 주지만 사람의 입은 한번 잘 못 말하게 되면 너무나 많은 주위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더욱이나 그 말하는 사람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을 때는 전 국민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말 한마디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은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저자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두 번 세 번 생각해서 신중하게 하면서 세상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부모가 자식에게 아무 사심 없이 얘기해주는 체험적이고 교훈적인 이야기들은 그 파장이 크다.




많은 사람들은 어릴 때 부모들이 들려준 교훈적인 이야기에 직 ․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살고 있기에 부모는 자식들에게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그들이 평생 살면서 교훈으로 간직 할 만한 메시지를 개발하여 효과적으로 자식들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부모역할을 잘 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집안에 두 명의 대통령이 탄생한 명문가. 그 아버지가 그 아들에게 던진 많은 메시지가 그 아들까지도 미국의 대통령이 되게 만들었지만 아버지가 단순히 더 좋은 아들이 되라고 비유해서 설명한 것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까지 발전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간의 역사는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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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를 움직인다는 미국 맥그로 힐에서 발행하는 비즈니스.위크(Business Week)지에 한국 관련기사가 나오면 자주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의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직접적으로 대우와 관련된 경우에는 당연히 나타나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경우도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형식의 인용문으로 김회장이 등장하는 것이다. 한국의 비즈니스계와 관련해서는 김우중 회장이 압도적인 비중으로 인용되거나 직접 기사로 다루어 져 대우그룹의 국제 신인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저자가 1983년 한국최초로 영문 경제지 비즈니스 코리아(Business Korea)를 발행을 시작하였을 때 그 모델이 비즈니스 위크였다. 그래서 잡지 제호도 비슷하게 지었다. 그때 한 네팔국적의 청년이 기자로 응모하였다. 우리말에 능통하고 경제에 대한 지식을 아주 폭넓게 갖춘 청년이었는데 그의 설명에 의하면 네팔에서 언론인 생활을 하다 정치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써서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에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능력을 검증해 보기 위해 몇 가지 상황을 가상해서 영문기사를 한번 써 보라는 숙제를 내 주었다. 그 기사는 A+ 기사였다. 그래서 그를 채용하게 되었다. 그 기자는 락스미 나까미(Laxmi Nakarmi)였고 상당히 오래 같이 일 하면서 편집국장으로까지 승진하였다. 그때 락스미 편집국장은 비즈니스 위크의 스트링거(stringer)일도 겸하게 되었다. 비즈니스 코리아 업무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비즈니스 위크를 위해 종종 기사쓰는 것은 권할만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비즈니스 위크에서 제공해 주는 정보와 기사를 쓰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의 전문적인 견해가 비즈니스 코리아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때 락스미씨는 취재를 위해 대우의 김우중 회장을 자주 만나게 되고 김회장은 락스미씨를 따뜻한 마음으로 돌봐 주었다. 비즈니스 위크는 기자들이 지켜야할 투철한 윤리 기준이 있었기에 그 범위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서로 친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재벌총수와 인터뷰하게 되면 소위 “촌지”라고 해서 봉투하나 받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으나 외신기자들은 그들의 내부 윤리규정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락스미씨도 저자와의 대화에서 대우 김회장 비서실에서 건 낸 흰 봉투하나를 받았으나 그 안에 돈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4번씩이나 서로 주고 돌려보내고 해서 결국은 돌려보냈고 대우 비서실에서도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후 김회장은 돈이 아닌 따뜻한 인간적인 배려로 락스미씨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다. 사실 외신기자들은 이 낯설고 물 설은 한국 땅에서 계속해서 좋은 기사를 써야한다는 부담을 안고 힘들게 하루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말 한마디만 따뜻하게 해줘도 고마운데 우리나라 최고 재벌 총수인 김회장 같은 분이 조금만 마음을 써줘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락스미씨는 비즈니스 코리아에서 사내 결혼을 하였다. 이대 정외과를 졸업한 여자기자와 결혼식을 힐튼호텔에서 거행하였다. 그때 김우중 회장이 직접 참석하기도 하여 그 친분 관계가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락스미씨의 얘기에 의하면 사람의 손이 안으로 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이슈에 대해 재벌 총수의 인용을 집어 넣어야 할 경우 다른 총수들에게 접근한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 었으니 가장 쉽게 접근하고 항상 협조적인 김우중회장의 얘기가 나 올 수밖에 없더라는 것이다.



 

광고도 아닌 객관성이 생명인 기사 속에 자주 김우중 회장의 이름이 나오고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 기사에서 김우중 회장을 대하게 되면 그것이 대우에 미치는 광고효과는 천문학적이다. 몇 번은 대우 김우중 회장을 표지의 인물로 정해서 커버스토리로 기사화 되기도하여 비즈니스 위크가 대우의 김우중회장을 세계적인 인물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세계경영을 하는데 있어 세계적인 경제잡지의 지원을 받을 수 만 있다면 받아야 한다. 대우 김회장의 이런 발빠른 움직임을 이해한 비서실과 기획실의 간부들도 락스미씨와 자주 등산도 가고 그와 비공식적인 모임을 가져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외신기자들과 친해져 비윤리적이지 않는 범위에서 그들을 감동시켜 더욱더 많은 우호적인 기사가 나올수 있다면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것이다. 홍콩에서 발간되는 파.이스턴.이코노믹 리뷰(Far Eastern Economic Review)지의 심재훈 서울 지국장은 일본기업과 한국 기업의 외신기자 다루는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얘기하는 것을 저자가 직접 들었다. “일본기업은 외신기자들의 정보 요구에 융단 폭력을 하고 있으나 우리 기업들은 외신기자가 전화 걸기만 하면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 있어서 접촉하는 줄  알고 사시나무 떨뜻이 떨고만 있다.”




외신기사들을 분명한 윤리기준을 갖고 있기에 좋은 기사를 써서 높이 평가받아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다. 그때 그들을 가끔 따뜻이 대해주고, 기자회견시에도 그들을 위해 따로 사내에서 영어 잘하는 사람을 시켜 영문보도 자료를 준비한다든지 임원들이 구체적 상황을 영어로 설명하게 해주면 그들이 힘들게 한국 신문에 난 것을 번역하지 않아도 되고 또 영자신문에서 그대로 인용하지 않아도 되기에  그들은 아주 고마워하게 된다. 이 지구촌 시대에 외신이 어떻게 보도하는지가 이제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외신의 보도는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김우중회장에 대한 평가는 각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업인으로서 외신기자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역할을 하고 나선 것은 높이 평가 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비록 대우뿐만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의 신뢰도를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김회장은 미국 방문시도 비즈니스 위크나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의 고위 편집국간부들과 식사를 자주 하였다. 언론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소에 투자해둬서 그들을 “동맹국”으로 만드는 (ally-building)작업이 중요하다. 어려울 때 S.O.S를 친다고 먹히지 않는 것이 언론계의 현실이다. 이 모든 언론대응법을 완전히 터득한 김우중 회장은 지금 현재 해외를 떠돌아 다니면서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지금 과거에 그 화려했던 시절을 비즈니스 위크의 과거 잡지를 훓어보면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과 코멘트가 다 기사화 된 것을 보면 과연 어떤 심정일까? 아마 쓴 웃음을 지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거기서 강력한 하나의 메시지를 얻을수 있다. “외신기자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못하는 기업총수는 CEO의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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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현장 24시는 항상 긴장감이 고조된다. 문제가 있는 곳에는 PR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저자와 친하게 지내온 홍콩의 한 PR회사의 대표가 “삼호의 조봉구씨를 아느냐? 조봉구씨가 김대중 정부를 통해 과거의 억울한 사연을 세상에 알리려고 하는데 법적인 일과 대미관계는 미국에서 담당할텐데 한국의 언론에 그 실상을 알리는 일을 좀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아파트붐 초기 방배동의 삼호 아파트를 지었고 중동진출을 하여 삼호의 이름을 국내외에 떨치다가 어느날 갑자기 소리없이 사라진 삼호건설의 창업자 조봉구씨! 1997년의 어느 봄날 아침, 시중에서는 조봉구씨가 사라진 것을 하나의 미스테리로 여기고 있었고 저자도 언론인으로서 의문투성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참에 조봉구씨 사건을 접한다는 호기심반, 평소 저자의 회사에 꽤 많은 비즈니스를 연결시켜줬고 오랜 기간 사귄 친분 반으로 그의 부탁을 수락하고 일에 착수하게 되었다.




조봉구씨는 서울 강남에 부동산 개발붐이 한창이던 70년대 무렵, 부동산 업계에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테헤란로 주변의 역삼동, 도곡동, 방배동 일대에 수백만평의 땅을 소유하였고, 강남 일대는 물론, 제주도 땅까지 근 백만 평이나 소유하고 있어 한국 최고의 부동산 재벌로 뽑혔으며, 그가 살던 방배동 집은 국내 재산세 1위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1974년 건설업체 삼호를 설립하였으며, 강남 일대에 자신의 땅에 1천 세대 이상의 대규모 아파트를 지었다.




저자는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여러 사정들을 밝힐 자료도 없을뿐더러 그런 의도도 없다. 다만 5공 군사정권 때 일이기에 입도 뻥긋하지 못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후 이제 때가 되었다고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그 문제를 ‘정의’(justice)차원에서 규명하고 조봉구씨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고 나선 사람은 미 국무성의 고위 공무원 제프 씨브라이트(Jeff Seabright)씨, 그는 조봉구씨의 딸 조영애씨의 남편이었다. 로스앤젤리스에 있는 씨브라이트씨의 법대 동창이 운영하는 대형 법률회사에서 LA카운티 수피리어 코트에 대림건설등을 상대로 20억 달러 상당의 재산 반환 청구에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을 요약하면 삼호 건설의 조봉구 회장은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을 하자마자 삼호는 부실기업 정리 대상에 올라 모든 재산을 몰수당한 후 1984년에 사라져버렸다. 그 이후 그의 동정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죽은 줄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랬던 그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가슴에 묻어둔 할말을 하고 진실을 백일하에 드러내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는 로스앤젤리스와 워싱톤의 한국 특파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삼호가 부실기업이었다면 주거래 은행에서 부도를 내고 기업주를 구속하는 게 정상적인 절차인데, 이런 절차도 밟지 않고 하루아침에 삼호를 타 기업에 넘긴 것은 위법이라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삼호가 합병한 것은 예정된 각본에 따른 것으로, 은행을 통해 삼호에 자금압박을 가한 뒤 강제로 위임장을 받았다고 말했다.




저자는 월간조선의 한 탐사기자가 로스엔젤리스에서 조봉구씨를 만나 인터뷰하는 것을 주선하였다. 그 기자는 취재 후 아주 긴 원고를 작성하였으나 어찌된 사연인지 월간조선에 기사가 게재되지 않았다. 다시 시사저널의 기자를 접촉하여 저자회사의 부사장과 같이 로스엔젤리스의 조봉구씨를 인터뷰하였다. 그 결과 3페이지에 달하는 심층보도가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1984년에 일어날 일들을 13년이 지난 시점에 문제제기는 언론의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로스엔젤리스에서 조봉구씨를 만난 두기자에 의하면 조봉구씨는 정말 어렵게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는 겨우 17평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으며, 미국 정부가 주는 연금을 받아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정은 시사 저널과 로스앤젤레스 특파원들이  인터뷰한 내용으로 신문에 기사화 되면서 그의 억울했던 과거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저자의 관심은 그 사건 자체보다는 조봉구씨의 기막힌 인생역정이 더 큰 관심사였다. 한국최고의 갑부였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서 미국 정부의 연금을 받으면서 17평의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면 아마 자살을 생각 할 수도 있지 않았을 까 생각해봤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여 생활하는 법을 잘 터득한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두 한국 기자들의 로스앤젤리스 방문 후 저자는 조봉구씨의 사위인 씨브라이트와 딸 조영애씨를 만나기 위해 워싱톤을 방문하였으며 그때 조봉구씨도 워싱턴으로 오게되어 조봉구씨를 만나게 되었다. 어떻게 모습이 변했고 그 기막힌 인생역정을 어떻게 견디어 냈을 까하는 호기심으로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차분히 과거 얘기도 하면서 긴박했던 1984년을 털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분명 악에 북받친 사람이 아니고 편안한 마음으로 큰 용광로에 증오와 분노를 녹이면서 그 기막힌 사연을 남의 얘기처럼 얘기하였다. 그에 비하면 그의 사위인 씨브라이트씨는 정의(justice)는 살아있다고 강조하면서 장인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이 그의 사명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것이었다. 조봉구씨는 처음 딸이 미국인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별로 찬성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미국인 사위가 한 노인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앞에 나서게 된 지금 저 노인의 마음에는 만감이 교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R인이 과연 이런 일에도 개입되어야 하는가? 이일을 맡으면서 PR인의 서비스 범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고객이 정당한 주장을 할 때 그 ‘진실’을 밝히는 작업에 PR은 분명 그 역할을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정리를 하게 되었다. 약 6개월 동안 이 사건과 관련 PR업무를 하였고 그 이후는 예산상의 문제로 로스엔젤리스에 있는 법률 회사가 소송을 진행하고 저자의 회사는 손을 떼게 되었다. 이 법률 회사도 소송에서 이기는 경우에 ‘성공불’(success fee)을 받는 조건이었다고 하였다. 그 이후 소송이 어떻게 결론났는지 정보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인간 조봉구씨와 몇시간을 지내면서 저자가 느낀 생각은 또 다른데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은 후의 조봉구씨. 그는 불운하였지만 현재 불행하지 않고 오히려 더 높은 행복지수를 누리고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재벌로서 매일 무거운 짐 속에서 편안한 날이 없는 ‘무거운 짐 진자’의 생활을 보내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새로운 삶은 사는 조봉구씨. 얼굴모습에서 분명 그는 다 잃어 버린자가 아니었고 많은 것을 얻은 자의 모습이었다.




지금 조봉구씨는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살아있다면 84세의 노인으로 미국 정부의 연금을 받으면서 작은 아파트에서 과거를 잊고 조용히 인생을 관조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무거운 짐을 버리고 최고의 “행복지수”를 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조사를 보니 행복 지수는 GNP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질적으론 가난하지만 정신적인 만족감이 큰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 1위, 필리핀이 세계 5위, 대한민국이 24위 미국과 일본이 훨씬 뒤에 있다고 한다. 지금도 아마 17평 아파트 주위를 바쁘게 산책하고 있다면 그의  행복지수는 상당히 높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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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장, 이사실은 전세계에서 8명만 알고 있는 일이오. 당신이 그 8명안에 들어 있으니 얼마만큼 보안을 철저히 해야 되는 일인지 알겠죠.”


2001년 10월말 어느날 새벽2시경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 케피탈(New Bridge Capital)을 자문해주고 있는 미국인 컨설턴트인 모리씨가 제일은행장 월프레드 호리에씨의 전격적인 경질이 곧 있을것이라고 알려주고 거기에 관한 전략을 상의하기 위해 걸은 국제전화였다. 이틀 있으면 제주도에서 국내주요신문사들의 논설위원과 방송사의 해설위원을 대상으로 제일은행의 앞으로의 사업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서강대학교 김병주교수가 금융산업의 국제화에 대해 강연도 하고 또 그 이후에는 신선한 제주회를 즐길시간이 마련되어 모든 확인 작업과 호텔과 항공기예약이 완벽하게 다 끝난 시점에서 갑자기 걸려온 전화는 무척 당황스러운 내용이었다.



“호리에행장, 새로 취임할 코헨 행장, 나와 당신의 4명을 제외하고서 뉴브리지의 최고책임자들 4사람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 당신 부인에게도 이 이야기는 건네면 안 됩니다. 서울에 있는 제일은행내의 누구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지금부터 여기에 관한 이야기는 당신과 내가 오로지 국제전화를 통해서 일을 진행 시킬테니 잘 협조해주기 바랍니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새벽2시에 걸려온 전화는 청천 벽력같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우선 일차적으로 제주도 세미나는 그래도 진행하는데 합의하였고 세미나에 참석할 논설위원들에게 엠바고(embargo)를 부쳐서 그 내용을 알려 줄것인지, 말 것인지 아니면 off-the-record 로 정보를 줄 건인지가 주요 현안이었다. 우리 둘은 쉽게 행장교체에 대한 내용을 제주도에서는 일체 밝히지 않으며 공식 발표 후에 세미나에 참석한 논설위원들과 해설위원들에게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때 미리 알려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 사과의 편지를 보내도록 결정했다.




제주도 세미나에는 제일은행의 홍보부장, 부행장과 주요 임원들이 참석했다. 원래 세미나 첫날 호리에 행장이 참석하게 되어 있었으나 마지막순간에 참석을 못하게 되었다고 알리고 그때까지 미국에 머물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임원들이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느끼고 그간 저자가 뉴브리지의 본사와 깊이 업무를 진행해온 것을 알고 저자는 뭔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목을 조여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집사람에게도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으니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뭔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들을 멀리하고서 호텔방에 들어와 다시 미국에 전화를 해서 발표할 보도자료내용을 팩스로 서로 주고받으면서 최종정리를 하고 호리에 행장과 신임 코헨 행장의 기자회견에 대해서 전체적인 진행을 협의하였다. 그 이튿날 공식 보도자료가 나가고 기자회견까지 진행되니 제일은행임원과 그때 같이 갔던 몇몇 언론인들은 저자를 원망하면서 섭섭하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해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호리에 행장의 1년 10개월은 막을 내리게 되고 코헨 행장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1년 10개월 동안 호리에 행장은 무척 많은 일을 하였다. 호리에 행장 취임 초기 뉴브리지의 컨설턴트 모리씨가 한국에 와서 저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롯데호텔 커피숍에서 차 한잔하자는 전갈이 와서 나가니 예상치도 못하게 그 자리에는 호리에 행장이 나와있었다. 행장으로서의 계획과 앞으로 역점을 두고 진행할 사업과 몇몇 언론들이 외국자본에 대해 비우호적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좀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후 계약이 급속히  진행되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두 번째 만남은 호리에 행장 방에서 이루어졌으며 배석자 없이 단 둘이 만나게 되었다. 만나자마자 제일은행 카렌다가 걸려 있는 곳으로 저자를 안내하면서 카렌다 안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일반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이 은행달력에 들어가는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국민학생들이 그린 것 같은 아주 아마추어적인 그림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는 “김사장, 내가 부임 초기 카렌다 제작하는 일반관례를 이야기 들어보니 유명화가들에게 의뢰하여 비싼돈을 주고서 그림을 구입해서 카렌다에 그림을 넣고 그리고 그 그림들을 정부나 다른 쪽에 선물하는 것을 보고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소. 그리고 어느 날 직원들의 자녀들중 그림에 재주가 있는 소년, 소녀를 모아서 그림을 그리게 하고 전문가가 12개를 뽑아서 이렇게 카렌다가 된 것입니다. ” 놀라운 일이다. 화가에게 그림을 부탁하면서 많은 돈을 쓴 것을 절약했고, 정부나 다른 쪽에 그 그림을 일종의 뇌물로 바치는 부패의 고리를 차단하였고, 또 직원들이 이제 우리 아들, 딸의 그림도 은행 카렌다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여 애사심을 높인 그 조치들은 돈으로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직원들과 고차원적인 커뮤니케이션(employee communication)을 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PR인들도 쉽게 생각하지 못한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기법이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2001년 호놀룰루 마라톤대회에 단체로 참가한 호리에 행장과 제일은행직원들의 이야기이고 그때 참석한 직원들은 호놀룰루마라톤대회를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에 비유하기도하였다. 제일은행이 많은 문제를 안고 외국에 팔렸기에 따가운 국민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데 한가롭고 사치스럽게 18명씩이나 해외마라톤대회에 참가시키느냐라는 비난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시점이었으나 호리에는 과감하게 참여를 결정한다. 호리에 행장은 호놀룰루마라톤대회 내내 대회에 참가한 직원들의 후원자 역할을 하였다. 그는 대회 중에는 주로 32km 지점쯤에서 오렌지를 썰면서 자원봉사자로 참가하였다. 태극기와 제일은행 깃발을 텐트에 걸고 밴드도 동원하여 열심히 응원하였다.



호리에 행장의 부인도 참가자들에게 물을 나눠주며 열심히 봉사하였다. “마라톤에서 가장 힘들어지는 30km 이후 지점에서 행장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을 보는 제일은행 직원들의 마음에 밀려올 감동이 얼마나 클지 저는 직원이 아닌데도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고 선주성 마라톤 컬럼니스트는 회고하였다. “저와 같이 갔던 일행들은 모두 완주 후에 호텔로 향했습니다. 호텔로 호리에 행장의 전화가 왔습니다. 대회 결승점이 있는 카피올리니 공원 한 쪽에 간단하게 점심을 준비했으니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호리에 행장이 일일이 직원들의 밥을 떠주며 완주한 직원들을 개선장군처럼 대접하고 있었습니다. 쇼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눈빛과 손길, 그리고 호리에 부인의 따듯한 말씀, 이 모든 것은 직원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진심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주성씨의 이야기다.




호리에 행장은 연봉 34억원의 사나이였다. 연봉 34억원은 물론 큰 액수이다. 그러나 그가 CEO로서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은행의 이미지를 개선한 것을 돈으로 평가한다면 34억보다는 휠씬 큰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계 경제를 움직인다는 미국 맥그로 힐에서 발간하는 비즈니스위크지는 “한국 금융시스템을 개혁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호리에 행장이다”라고 호리에 행장을 평가하였다. 호리에 그는 분명 사내직원 커뮤니케이션(employee communication)과 이문화 커뮤니케이션(intercultural communication) 의 최고 전문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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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MPR전략수립과 실행시 제일 중요한 작업의 하나가 목표공중을 정확히 찾아 각각의 공중들에게 가장 설득력이 있는 핵심메시지를 개발하는 것이다. 주요공중들을 위한 핵심메시지가 확정이 되면 그 다음단계로 거기에 맞는 실행 MPR프로그램을 짜는 것이다. 미국의 스타키스트(Starkist) 참치 사례를 기본으로 해서 저자 나름대로의 핵심메시지와 MPR프로그램을 작성해 보았다. 이러한 작업은 한국실정에 맞게 응용될 수 있다.




먼저 사건의 발단은 통조림으로 가공되는 동태평양의 참치들은 돌고래의 배 밑에서 헤엄치는 습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그 동안 참치 어획 과정에서 수많은 돌고래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데서 시작되었다. 환경 보호 단체들은 돌고래가 지능적인 동물이며 인간과 유사하고 상어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이로운 동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무분별한 어획을 중지하도록 정부에 요청했다. 또한 각 참치 통조림 회사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으며, 1972년에는 해양 포유 동물 법안(Marine Mammal Act)을 재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돌고래 포획을 일부 허용하고 있어 환경 보호론자들은 만족하지 못했고, 계속해서 돌고래 보호에 대한 여론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노력했다.





때마침 1988년 지구 섬 연구소라는 환경 단체의 해양 생물학자인 사무엘 루버디가 참치 선박의 요리사로 가장해 참치 어획 과정에서 수백 마리의 돌고래가 죽어가는 생생한 모습을 촬영해 공중들에게 영향력 있는 영상물을 확보했다. 그는 총 5시간 동안 돌고래 포획과 도살장면을 촬영했다. 루버디의 비디오는 많은 대학 및 협회 등에서 상영되었고, 돌고래 보호에 대한 공중의 지지와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환경 보호론자이자 A&M 레코드사의 공동 설립자인 제리모스의 부인은 돌고래의 참상을 알리는 특별행사에서 배우 ㆍ 프로듀서 ㆍ영화 ㆍ 감독 등에게 이 필름을 공개했으며, 그 결과 러셀웨폰Ⅱ라는 영화에까지 어린 아이들이 참치 샌드위치를 거부하는 장면이 나와 돌고래 보호 운동의 절정을 이루게 되었다.





이후 A&M 레코드사의 사장이자 역시 환경 보호론자인 제리 모스는 스타키스트의 모회사인 하인즈의 회장 오라일리와 기업 PR 담당자인 테드 스미스를 직접 만나서 돌고래 보호에 대한 시민들의 입장을 전했다. 당시 제리 모스는 보통의 환경 보호론자들처럼 강경하거나 자신의 생각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았으며, 시종 일관 예의 바르고 호감 있는 태도를 견지했다. 회담에서는 돌고래를 보호하겠으며, 또한 돌고래를 죽이지 않고 참치를 잡는 방식은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등의 내용이 거론되었다.





모임 후에 제리 모스는 오라일리 회장에게 메일을 보내서 신속한 활동을 촉구했다. 이후 이 사건은 점차 확대되어 국회에서까지 논의되었고, 연예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참치 보이콧 운동에 참여했다. 또한 학교 급식에서 참치가 빠지기 시작했고, 불매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으며 국민의 60%이상이 이 사건을 알게 되었다. 이에 따라 스타키스트의 매출액이 급속도로 떨어졌고, 회사 이미지도 손상되었다. 이 위기에서 탈출하여 회사를 정상적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위기탈출 MPR’전략이 필수적이다. 스타키스트는 먼저 공중을 8개로 분류한다.
 


 스타키스트의 8개 목표 공중들


1) 환경보호론자 : 참치 보이콧을 조장하고 여러 정보를 폭로하는 환경 단체들.

2) 소비자 : 참치를 직접 구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시 참치 제품을 사도록 해야 하는  소비자.

3) 어린이 : 부모에게 참치 제품을 사지 말라고 조르는 아이들.

4) 주주 : 주가 하락으로 주식을 매도할 주주들.

5) 소매업자 : 참치를 상점에 비축하지 않으려는 소매상들.

6) 종업원 : 참치 산업과 그들의 직장에 대해 염려하고 있는 종업원들.

7) 어부 : 직접적으로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을 두려워 하는 어부들.

8) 통조림 제조업자 : 참치 소비 위축으로 피해를 입게 될 통조림 제조업자들.


8개 공중들은 각각 이해관계를 달리하고 있기에 각 공중들을 향한 핵심메시지는 달라야 한다. 다음은 저자가 생각해 본 핵심 메시지와 그 이후의 실행 MPR프로그램이다.




핵심메시지


1) 환경보호론자 : 돌고래를 보호하는 스타키스트

2) 소비자 : 스타키스트는 돌고래를 다치면서 잡은 참치는 팔지 않습니다.

3) 어린이 : 우리는 여러분처럼 돌고래를 사랑해요. 이제는 스타키스트는 돌고래의 친구입니다.

4) 주주 : 이제 안심하십시오. 우리는 정확하게 참치만을 잡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것입니다.

5) 소매업자 : 스타키스트는 소매상 여러분들과 함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가겠습니다.

6) 종업원 : 스타키시트는 포유동물을 잡는 단체와의 관계는 버려도 가족은 버리지 않습니다.

7) 어부 : 돌고래를 보호하는 어획방식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8) 통조림 제조업자 : 참치 통조림은 미국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가장 사랑 받는 식품입니다.




1) 8개 목표집단 대상 공동 프로그램 :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스타키스트에서 독자 개발한 음파를 이용해서 돌고래를 격리 한 이후 참치만 잡는 기계장치를 활용한 참치잡이 모습을 비디오로 제작해서 광고로 적극 활용함과 동시에 주요 언론사에 보도자료로 배포




2) 환경보호론자 대상 참치잡이 참여 프로그램 :

환경보호론자들을 참치잡이 할 때 배에 동승하여 새로운 시스템에 의해 전혀 돌고래에 대한 희생과 피해가 없음을 직접 확인토록 하며 이들로 하여금 더 이상의 돌고래 희생이 없는 안전한 참치잡이 방식이라는 제 3자인증(Third-Party Endorsement)을 유력 언론 기고로 이끌어 낸다.




3) 소비자 대상 ‘돌핀 세이프’ 판촉 프로그램 :

새로운 참치잡이 방식에 의해 생산된 ‘돌핀 세이프 튜너’(Dolphin-Safe Tuna) 제품을 시판하면서 돌핀과 튜너의 호감이 가는 캐릭터를 개발해서 친근감을 소비자들이 갖도록 하며 새로운 제품을 일정량 이상 구매할 경우 등급에 따라 캐릭터가 인쇄된 티셔츠를 제공하거나 추첨을 통해서 희망자에 한 해 직접 참치잡이를 견학할 수 있도록 한다.




4) 어린이 대상 ‘Ocean Adventure' 체험 프로그램 :

어린이들 경우 성인처럼 직접 해양에 나가 새로운 시스템으로 참치 잡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어린이 대상으로 새로운 기계장치에 의한 참치잡이 모습과 어린이에게 교육적으로 유익한 해양생태 체험 학습관을 운영을 통해서 스타키스트에 대한 호의도가 높아지도록 한다. 그리고 모든 방문 어리인들에게 귀여운참치와 돌고래가 등장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배지, 티셔츠 등 각종 기념품을 제공한다.




5) 주주 대상 참치잡이 신기술 설명 Reception 프로그램

주주들을 호텔 연회행사에 초청하여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새롭게 개발하여 활용중인 기계장치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후 이 장치로 돌고래들에 대한 피해없이 참치잡이 하는 장면의 비디오를 상영하여 스타 키스트 참치잡이의 안전성과 수익성 증대, 그리고 신뢰성을 부각시킨다. 아울러 설명회 이후에 곧 출시 예정인 참치를 소재로 한 다양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인다.




6) 소매업자 대상 참치잡이 신기술 설명 Reception 프로그램

소매업자들을 호텔 설명회에 별도 초청하여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새롭게 개발하여 활용중인 기계장치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후 이 장치로 돌고래들에 대한 피해없이 참치잡이 하는 장면의 비디오를 상영하여 스타 키스트 참치잡이의 안전성과 수익성 증대, 그리고 신뢰성을 부각시킨다. 아울러 설명회 이후에 곧 출시 예정인 참치를 소재로 한 다양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인다.




7) 종업원을 대상으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New Start, New Mind' 캠페인 프로그램

종업원 전체를 대상으로 회사대표가 직접 지난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새롭게 개발하여 활용중인 기계장치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 장치로 돌고래들에 대한 피해없이 안전한 참치잡이를 통해 향후 수익성 증대등 회사의 비전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롭게 거듭 나는 스타키스트사로서의 윤리강령 등을 발표한다. 아울러 이번 사태를 통해서 심한 고통을 겪은 종업원 가족들에게 가정마다 편지를 발송하여 가족들이 회사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8) 어부 대상 참치잡이 경진대회 프로그램

새롭게 개발한 기계장치에 대한 상세한 설명 이후 사용방법을 교육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각 선박 별로 돌고래들에 대한 피해없이 안전을 전제로 한 참치잡이 경진대회를 실시한다. 물론 이 대회를 통해 입상하는팀에게는 크루즈 유람선을 타고 30일간 세계 여행 할수 있는 특전을 제공한다.




9) 통조림 제조업자 대상 참치잡이 신기술 설명 Reception 프로그램

제조업자들을 호텔 Reception Room으로 별도 초청하여 대형 스트린을 통해서 새롭게 개발하여 활용중인 기계장치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후 이 장치로 돌고래들에 대한 피해없이 참치잡이 하는 장면의 비디오를 상영하여 스타키스트 참치잡이의 안전성과 수익성 증대, 그리고 신뢰성을 부각시킨다. 아울러 설명회 이후에 곧 출시예정인 참치를 소재로 한 다양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인다.

앞에서 ‘위기탈출 MPR'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가장 성공적인 MPR전략들은 기업이 위기에 직면하여 그것을 탈출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는 과정에서 나오게 되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MPR은 이제 좋을 때 가장 신뢰할 만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마케팅을 활성화시키고 또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전략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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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년 04월 09일 14시 35분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한국 PR업계의 선구자이신 김경해 사장님의 블로그 개설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물론 가까이서 모시고 있지만 업무상 어려움을 느낄 때 직접 여쭙거나 책을 통하는 것보다 손쉽게 사장님의 문제해결 방식을 참고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앞으로 온라인 매체를 통해 사장님의 오랜 경험과 통찰력이 더욱 많은 홍보인들에게 전해질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네요. 그동안 담아 두신 많은 이야기들을 꺼내 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 2008년 04월 10일 13시 47분
      댓글 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MPR의 전술들

2008년 03월 10일 21시 25분
MPR에서 전개할 수 있는 전술적 방법들은 다양하다. 광고가 기본적으로 4대 매체에 국한되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에 반해 PR은 그런 제한이 없다. 다음에 소개하는 것들은 신제품이건 기존제품이건 간데 소비자나 미디어의 주목을 끌기 위해 이용하는 전술들을 알파벳 순서로 나열한 것이다. MPR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A에서 Z까지 토마스 해리스 교수가 정리한 것을 소개한다.


 (시상) 기업이 주최하거나 후원을 하여 관심을 끌만한 상을 제정하여 수여하는 것이다. 해외토픽에서 연말에 베스트 드레서를 뽑는 잡지의 경우가 친숙한 경우일 것이다 가장 대표적이 사례는 입술 트는 것을 방지하는 크림인 블리텍스 일 것이다. 수상자의 사진과 함께 수상이유를 설명하여 전국 매체에 실리도록 유도하는데 수상자들 중에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Eddie Murphy(코미디언) “가장 쉴 틈 없는 입술”

Margaret Thatcher(전 영국수상) “가장 굳은 입술”

Wayne Gretsky(전 하키 선수) “가장 많이 얻어 터진 입술”

Sylvester Stallon(영화배우) “가장 제멋대로 억지부리는 입술”

Ronald Reagan(전 미대통령) “가장 외향적인 입술”




블리텍스의 임원들은 영국, 캐나다, 호주 등지의 언론사들과 인터뷰를 하여 블리텍스를 마케팅하였으며 일본의 유통업자로부터 이 행사가 상표를 인지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평을 받게 되었으며 수상자로 선정되었었던 조안 콜린스나 엘리자베스 영국여왕, 부시 전 미대통령의 부인인 바바라 부시 여사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기도 하여 그것이 또 미디어에 반영되었다.



 (책) 회사에 대해 주목을 끌기 위한 방법으로 책을 만드는 것이다.  회사 역사나 기업주의 철학이나 경영관, 또는 자전적 내용, 미래에  대한 비전등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상표와 관련된 내용으로 어떻게 상품을 이용할 것인가 하는 내용을 만들 수도 있다. 상표와 관련된 책으로는 식품회사 제너럴 밀즈사가 만든 ‘베티 크로  커의 요리책’(베티크로커는 상표이름이지만, 상표를 의인화한 캐릭터의 이름이기도 함)과 세탁기 회사 메이 태그 ‘세탁 백화사전’일 것이다. 이 책들은 제품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만든 책자인데, 제품을 이용하면서도 생활에 도움을 주는 수백가지의 생활요령이 담겨 있다.



 (대회) 재미있고 제품과 직접 연결되는 콘테스트를 여는 것으로는 프록터 앤 갬블사의 ‘샤워하며 노래부르기 전국 경연대회’같은 것이다. 이대회는 지역 예선을 걸쳐 본선까지 있다. 지역 예선은 쇼핑몰에서 이루어지면, 2분 짜리 아카펠라여야 하는데 샤워할때는 반주없이 노래하니까 우승자를 뽑는 기준은 독창성, 연기 또는 샤워모습, 즐거운 정도 세가지를 기준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이다. 최종 본선은 뉴욕의 ‘라이도시티 뮤직홀’에서 열릴 정도로 큰 규모였다. 지역 예선은 지역 신문과 방송이, 전국 본선은 전국 네트워크가 다룰 만큼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조사결과 이 행사에 참여한 사람의 87%는 상표를 인식하고 있었고 76%는 행사를 통하여 제품을 구입했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대회가 가능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연히 상품판매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느냐 하는 것이 아이디어의 선택 기준이다.


 (실증) 실제로 제품을 사용해 보이는 것인데, 제품이 판매되는 상점, 쇼핑몰 등 회사의 판촉 사원들이 움직일 수 있는 장소는 어디든지 가능하다. 요리기구를 이용한 요리시범, 백화점에서의 화장품 시범들은 가장 잘 알려진 방법이다.




 (전시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상설전시관을 만들 수도 있고 이동전시회를 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로 유명한 것은 시카고의 과학, 산업 박물관내에 있는 레고 전시관이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레고 블록으로 다양한 장난감을 만들어 볼 수 있고 레고 블록으로 유명한 건축물들을 볼 수도 있다. 이동 전시관을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한 것은 대체 감미료 회사인 ‘뉴스트라 스위트’이다. 여름철 동안 전국 각 지역에서 열리는 마을 축제에 참여 한시적인 전시회를 한다. 방문객들에게는 뉴트라스위트를 첨가하여 만드는 음식의 요리법이 적힌 소책자와 작은 선몰, 쿠폰, 제품의 샘플 등이 담긴 가방을 받게 되는데, 축제 동안 그 가방은 움직이는 광고판 역할을 한다. 매년 여름에만 200만 명 이상이 이 전시회에 참가한다.



 (팬클럽) 유명연예인들만이 팬클럽을 가졌겠지만 지금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제품들을 중심으로 팬클럽이 생긴다. 어린이들의 바비인형 팬클럽, 어른들의 무스탕 자동차 팬클럽이 그런 것들이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폭스바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임이 있다. 상품의 팬클럽일 경우, 회사는 회원카드, 회원증 등을 발행해주며 뉴스레터나 소책자를 보내 주기도 하며 팬클럽의 미팅을 주선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인터넷의 웹사이트를 마들어 정보를 공유하고 게시판을 통하여 의견을 나우는 활동을 할 수도 있다.




 (축제) 페스티발은 다양한데, 적당한 것이 없을 경우 기업이 스스로 페스티발을 만들기도 한다. 기업이 스스로 만든 페스티발로 유명한 것은 허쉬 초코릿 회사의 ‘Great American Chocolate Festival'이다. 페스티발은 지방 행정 당국이 관광객을 끌어 모아 지역의 경제 발전을 꾀하면서 중복되지 않게 다양하게 마들 수 있다. 그래서 공장이나 본사가 속한 지방의 자치단체는 많은 지원을 하여 그 지역의 관광 상품으로 발전시키기도 한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 사회와의 우호적인 관계 활동을 위해서 활용 될 수도 있다. 이천의 도자기 축제나 부천 영화 축제등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개점식) 개점을 축하하는 리본 커팅부터 자동화 공장의 착공식이나 기공식, 상량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백화점의 개점 행사가 가장 흔한 형태인데 미디어의 관심을 끄는 기회가 된다.




(직통전화) 미국에서는 수신자 부담 전화번호가 800으로 시작된다. 한국에서의 080클로버 전화서비스와 같다. 아마 미국에서 잘 알려진 번호 중 하나는 육가공 생산업체인 버터볼의 ‘칠면조 핫라인’ 일 것이다. 칠면조를 저녁 성찬으로 준비하려고 새로운 요리방법이나 더 나은 방법을 문의하려는 소비자들을 위해 만든 전화로서 연간 20만건이나 된다고 한다. 이 전화는 버터볼   의 주요한 마케팅 수단이 된지 오래되었다.


 (인터뷰) 최고 경영자가 회사 제품에 대한 주의를 끌기 위해 인터뷰를 하는 것은 주목율이 높다. 크라이슬러의 아이아코카 전 회장은 차를 판매하기 위해 인터뷰를 자주․잘 이용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위기 상황을 관리하는 경우 주로 인터뷰를 이용하게 되는데 미디어의 직접적인 관심이 모여지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직접적인 관심을 끌만한 내용이 있을 경우에도 인터뷰가 적합하다.




 (시찰)공장견학이 대표적인 것이지만, 연수회, 산업 시찰 등도 포함된다. 식품회사의 공장 견학 프로그램은 일반적으로 잘 이용되는 방법이지만, 미디어를 대상으로 개발할 수 있다.





 (사회적 이슈) 회사가 회사의 입장이 아니라 소비자의 입장에 서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을 바라보고 그에 대한 견해를 유지한다면 회사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는데 도움이된다. 자사의 웹사이트에서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한 기업의 견해를 올리기도 하는데, 기존의 방법보다는 첨삭과 게재가 용이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 효과가 있으므로 웹사이트에서 유용하다.



 

(오찬회) 기자들을 불러서 회사와 언론매체와의 관계를 보다 가깝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회의) 세미나, 심포지움, 연석회의, 화상회의 같은 것들을 회사가 주선한 것이며, 업계 추세, 조사결과 발견된 사항들 회사의 제품이나 소비자에 대해서 토의한다.





 

(박물관)‘허쉬와 같은 초콜릿 회사나,‘안호이저 부쉬’와 같은 맥주회사들은 자체내 박물관이나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상설전시이며 특정 주제가 있기 때문에 연중 방문객으로 끊이지 않는다. 1990년 코카콜라사는 아틀란타에 3층짜리 박물관을 세웠는데 박물관의 이름이 'The World of Coca Cola'이다. 연중 50만 명 이상이 관람한다고 하며, 1천가지 종류이 전시물과 영화관, 물이 아니라 콜라를 지상 20미터 정도로 쏘아 올리는 최첨단 분수도 있다. 회사측에서는 이 분수를 지금까지 만든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난 콜라 사인이라고 자랑한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코카콜라 박물관은 판촉용 수단으로 기업의 역사를 전시한 것으로는 가장 훌륭한 것이며 가장 자신에 넘친 것이라고 소개한 바 있으며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회사이면 브랜드임에도 이 박물관은 대중들에게 도달하려는 참신한 시도이며, 마케팅과 교육과 재미를 잘 교차시킴으로서 일반 대중을 관광객 이상으로 바꾸어 버리는 매력이 있는 곳이라고 칭찬한바 있다.




 

(공식인증) 정부 단체로부터의 공식인가, 권위 있는 기관으로부터의 인정 등은 제 3자(전문가)를 이용한 추천, 권유 등에 사용할 수도 있고 제품의 포지셔닝에도 사용할 수가 있다. 얼마 전 영국왕실은 ‘헤로드’백화점을 왕실 전용 백화점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그 동안 영국 왕실에 상품을 공급해온 백화점으로서의 포지셔닝이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같은 가공 농산물일지라도 농협에서 만드는 것들에는 농협마크가 붙게 마련이다. 그 마크 자체만으로도 따로 광고나 판촉을 할 필요 없이 판촉의 효과를 볼 수 있음은 당연하다.




 (제품배치)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제품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ET초콜릿 ‘M&M's'브랜드가 제작비를 투자하며 제품을 등장시킨 이래로 꾸준히 발전해 왔으며, 이후로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할 만큼 커졌습니다. 텔레비젼 프로그램에 협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텔레비전 산업의 속성상 협찬하는 것에 그치게 되므로 제품에 대한 메시지도 나타내지 못하는 등 적극적이지도 못하다.




그러나 영화는 다르다. 영화에 상표를 등장시키는 것은 사실 오래전부터이지만 산업으로 등장한 것은 ET부터이다. ET에 등장하는 M&Ms는 그전의 방법과 달랐다. 허쉬는 1백만 달러를 영화제작에 투자하면서 얻은 권리로 영화내용상 한 줄거리로 등장시켰다. 주인공인 엘리엇이 ET를 유인하는데서 M&M's 초콜릿을 이용하는 장면이었다. 그것으로도 M&M's 초콜릿의 판매가 늘어 났음에도 그것에 그치지 않고, ‘ET'가 가장 좋아하는 캔디’라는 슬로건과 ET티셔츠, 제품을 구입하면 주는 무료 ET포스터, 나중에는 주주에게 보고하는 연례 사업 보고서 표지에도  ET를 등장시키는 등 폭넓게 이용하였다. ‘러셀웨폰 2’에는 ‘렘지스’ 콘돔이 등장한다. 미국에서는 콘돔류는 텔레비전에 광고를 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콘돔은 그냥 비우어 지는 정도가 아니라 줄거리의 한부분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게 처리되어 있다. 뉴스위크는 영화사가 ‘러셀 웨폰 2’의 로고를 넣은 콘돔을 전국 댄스 클럽에 배포하는 것을 보고 아직도 마케팅 활동이 계속 되고 있다고 지적한 적도 있다. 우리나라 영화 쉬리에서는 20개가 넘는 제품의 PPL이 있었다.




(입장발표) 회사가 공중들이 관심을 갖는 이슈나 주제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확인시키는 데에 사용되는 방법이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동시에 겨냥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업이 광고주이기에 사회적 이슈나 주제에 대한 공식 입장을 전달할 기회를 주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슈나 주제도 다양하다. 문학적 주제도 있고 국제적 관심사도 있고 입양아 문제도 있고, 화재 조심에 대한 것도 있을 수 있다.



(설문조사지) 마케터는 가치있는 소비자 정보를 찾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MPR활동의 결과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미디어가 관심을 갖는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질문지를 이용해 조사하는 경우가 많다. 패션에 대한 성향 좋아하는 음식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조사할 수 있다.


 


(지방순회)지방순회는 뉴스헤드라인에 올라올 마큼 뉴스성을 살릴 수 있다. 크라이슬러 자동차의 ‘로저 스미스’회장은 크라이 슬러를 GM기술보다 앞선 자동차 회사로 재 포지셔닝 시킴으로서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MPR캠페인을 직접 지휘하였다. ‘오늘과 내일을 위한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자동차 전국 순회를 하였는데,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였기에 처음 시작한 뉴욕에서 언론의 평가는 대단한 것이었다. 회장의 이름을 따서 “Rogerama"라고 불릴 만큼 성황리에 끝났고, 순회전시회는 시카고, 로스엔젤레스, 달라스, 아틀란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이루어졌다. 전시회의 구성은 신형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이루어졌다. 전시회의 구성은 마지막으로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이루어졌다.
전시회의 구성은 신형 자동차와 트럭을 전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시를 구성하여 클라이슬러의 기술력과 팀웍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기술력과 새 자동차의 성능을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대단원을 내리는 마지막 도시 디트로이트 전시회에서는 자동차 딜러들, 주주들, 종원들, 노동조함, 협력업체, 언론사, 업계 인사, 정부 인사, 대학 교수, 예술가 등 다양한 공중들을 초청하여 회사가 미래에 대해 얼마나 자신감에 넘쳐 있는 가를 보여 주는 ‘팀웍과 기술(Teamwork and Technology)'이라는 쇼도 만들어 진행하였다.

 2년후 아이아코카가 회장에 취임하였는데 그도 6개 도시 순회전시회를 계속 하였다. 미국 최고의 비즈니스맨답게 순회공연도 새롭게 발전시켰던 것이다. 'Chrysler in the 90's'라고 명명된 순회전시회에서 크라이슬러 상표들인 ‘닷지’, ‘크라이슬러-플리머드’‘지프-이글’등의 신제품 자동차 모두를 소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다음해에 나올 미니밴과 컨셉트카를 미리 선보일 만큼 자신감에 넘쳤다. 당시로는 획기적이었던 에어백을 장착한 자동차와 신형 엔진을 전시하는 크라이슬러 기술 센터도 만들었다.




 (심볼)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보면 크리스마스가 떠오른다. 산타클로스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상업적으로도 많은 상징들이 있다. 맥도널드 햄버거는 로날드(Ronald), 집에서 요리해 먹을 수 있는 빵 반죽을 파는 필즈버리사는 '빵 반죽 소년(Doughboy)', 캠벨 스프 회사는 '어니 앤드 케브러'라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캐릭터는 회사를 형상화된 하나의 개인으로 나타내므로 개성을 가질 수 있고, 그 개성을 통해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접근하기가 쉽다.



 (서명식)서명식, 인수식, 계약 체결식 등을 보다 확대시켜 이벤트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가장 흔한 경우는 운동 선수들의 입단식이나 계약 체결식 등이다. 그러나 문화 단체의 후원을 약속하는 행사나 후원금을 전달하는 행사도 가능하다. 기업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가를 보여 주는 좋은 방법이고, 그 관심에 동조하는 타깃 오디언스에게 호의를 얻는 방법이기도 하다.
 



 (비디오 보도 자료)뉴스 릴리즈를 비디오로 하는 것을 말한다.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편집을 해서 좋은 부분만을 보낼 수도 있고(A-roll), 방송사가 편집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내용을 그대로 보낸 주는 경우(B-roll)도 있다. 제품 뉴스나 이벤트 행사의 경우 방송사가 촬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이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다. 미국의 경우, 닐슨 조사에 따르면, 지역 방송국의 75%가 이 비디오 보도 자료를 정기적으로 받아서 이용한다고 한다.





 (주간 선포)무슨 무슨 주간으로 선포하여 행사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소비자의 주목을 끌려고 하고, 미디어로부터 제품과 관련된 뉴스를 전달하는데 이유를 만들려고 하는 목적이 있다. '짚 락(Ziplock)'은 샌드위치를 담는 비닐 봉지를 생산하는 회사인데, 샌드위치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자는 '짚 락 전국 샌드위치의 날'이라는 행사를 한 적이 있고, 캠벨 스프 회사는 '전국 스프의 달'이라는 행사를 한 적이 있다. 모두 다 뉴스거리였다.



 (전문가 칼럼) 매체에 고정 칼럼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회사의 이름이나 상표에서 따온 특정인을 설정하고, 그가 제품에 대한 고정 칼럼을 쓰는 형식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잔디 깎기 기계를 생산하는 '존 디어(John Deere)'라는 회사는 '디어 존(Deere John)'이라는 칼럼에서 잔디 깎기 요령이나 잔디 관리 요령, 집안의 화단 가꾸기 등 사업이나 제품과 관련된 질문들을 독자들로부터 받아서 그에 대한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운영하였다. 안경 체인점인 '펄 비전(Pearle Vision)'은 눈의 건강과 시력, 안경 고르는 오령과 안경의 패션성 등에 대한 시리즈를 내면서 '펄 박사에게 물어봅시다(Ask Dr. Pearle)'이라는 칼럼을 만들었다. 실제로 독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글이기도 하지만, 예상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만들어 운영할 수도 있다.



 (신세대 대상 활동) 젊은이들은 미래의 시장이다. 젊은이들은 관심도 다양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래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 과학 경진 대회나 미술 경진 대회, 글짓기 대회 같은 것들이 그런 것들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미국 보이스카웃은 영화 촬영 기법을 재미있게 소개해주며 그것을 들은 아이들에게 배지를 달아주는 행사는 파나소닉과 스티븐 스필버그가 후원한다.




(지역 대상 활동) 아주 세분화된 특정 지역에서 그 지역의 관심사, 그 지역 시장의 특성에 맡는 활동, 이벤트 등으로 프로모션하는 것을 말한다. 헤리스교수가 살았던 '글렌 뷰'는 생긴지 95년이 된 작은 도시인데, 95주년 기념 퍼레이드를 벌이면서 이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크라프트'와 같은 세계적 식품  회사 뿐만 아니라 개인 치과의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후원을 받아 진행 하였다. 그리고, 헤리스교수가 다닌 노스웨스턴 대학이 있는 에반스톤에서는 일년에 한 번씩 벼룩 시장이 열리는데, 이것을 관광 상품화하여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에반스톤에 본부를 둔 로터리 클럽 같은 것뿐만 아니라, 지역의 수많은 상점들이 많은 후원을 한다. 시카고 남쪽 차이나타운에서는 구정에 차이나타운 퍼레이드를 벌이는데, 볼만한 구경거리라서 주변의 인디아나, 미시간, 위스콘신 등지에서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행사의 후원은 물론 중국 상인들이고, 그들을 시장으로 겨낭한 미국 내 장거리 전화 회사들도 적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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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R은 PR의 꽃

2008년 03월 10일 21시 21분

코카콜라가 문화예술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예술가들의 조각작품을 후원하여 좋은 조각작품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 조각 작품명이 ‘코카콜라 마시는 여인’이었을 경우를 한번 가상해 보자. 기업이 예술 사업을 지원하는 참신한 이미지와 그것까지도 최종적으로는 기업 이미지 제고의 일환으로 이용하는 경우 코카콜라는 ‘복합메시지’ (Hybrid Message)를 통해 두가지의 서로 다른 내용을 동시에 공중에게 전달하려고 하고 있으며 주로 이런 현상들은 마케팅 PR(MPR)수행과정에서 일어난다. 미국 PR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가 천재적인 MPR기법들을 도입하여 그의 고객들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였지만 ‘스핀의 아버지’(Father of Spin)라고 불린 것은 그가 앞에 내세운 대의 명분과 결국은 고객이 돈을 벌게 한 두가지의 복합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2장 참조)




그간
한국의 기업풍토에서 오랜 모순은 마케팅 부서와 PR부서가 서로 상호 보완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경쟁관계에 있었다는 것이다. 두 부서가 서로 힘을 합치게 되면 상승효과(synergy)가 나타날 수 있는 데도 이런 노력이 부족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등장한 MPR개념(PR의 기법을 통해 마케팅을 활성화하는 노력)이 서서히 도입되면서 PR부서와 마케팅부서의 협조가 원활해지기 시작하였다. 최근 PR이 홍보(publicity)의 개념을 초월하여 MPR과 위기관리와 같은 전략적인 부분이 강조되면서 MPR에 대한 기업의 노력이 더욱 더 다양해지고 있다. MPR의 최대의 강점은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고(cost-effective) 또 신뢰면에서 광고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IMF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기업들이 엄청난 TV광고를 할 예산이 줄어들었을 때 제한된 적은 예산을 가지고 대량 TV광고를 시행 할때와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 MPR기법을 도입하기 시작하였고 이런 실천을 통해서 MPR의 약효를 몸으로 터득하게 되었다.

기업의 CEO들이 1억을 투자하여 10억의 효과를 내주는 기법이 있다고 할 때 그것은 가장 매력적인 마케팅의 도구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MPR은 그 기법과 공중을 향한 메시지 전달 정도에 따라 투입(input)대산출(output)이 10배 20배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MPR의 개념을 처음 체계적으로 주창한 사람은 토마스 해리스이다. PR회사를 운영해본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노스웨스턴 대학의 IMC학과에서 MPR을 강의하면서 MPR에 대한 책을 꾸준히 낸 해리스는 MPR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MPR이란 소비자들의 필요와 욕구, 관심, 이해를 상품이나 회사에서 발견하도록 신뢰성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거나 노출시킴으로서 소비자의 만족과 구매를 증진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집행하고 평가하는 과정이다.

이 정의는 1991년도에 소개한 것인데,“MPR이란 독립된 기능을 갖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수단들이 통합되어야 하는 환경에서는 새로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1999년 새로운 정의를 소개하였다.

MPR이란 마케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PR전략과 전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MPR의목적은 인지도를 높이며, 구매를 자극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며, 소비자와 기업과 상표간에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MPR은 신문이나 방송프로그램과 같은 신뢰적인 채널을 통해 회사와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를 얻고자 하는 전략이다. 물론 MPR은 미디어 이외에도 소비자의 이벤트 직접참여나 시연, 구전(口傳)과 같은 채널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미디어를 이용하는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MPR이란 광고를 하지 않고 제품과 회사에 관한 뉴스거리를 만들어 이를 미디어에 실리도록 만드는 전략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미디어는 사회적 공기로서 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주지 않는 만큼 이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매우 특별한 노하우와 주의가 필요하다. 신문, TV, 라디오, 잡지의 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광고보다는 미디어의 기사나 프로그램을 통해 회사나 제품을 알리고 판촉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지면과 프로그램의 증대는 자연히 기업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정보 및 뉴스 제공, 전문지식 제공, 프로그램 및 캠페인 공동제작 등 여러면에서 기업의 미디어 참여기회는 늘어나고 있다. 기업으로서도 가능만 하다면 비싸고 거부감 있는 광고보다는 신뢰성 있는 뉴스나 프로그램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미디어를 이용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소비자들의 세분화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이제 소비자들의 성향이나 취미는 매우 세분화되었으며 이에 맞추어 다품종 소량생산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기에게 맞는 매체를 이용한다. 대중적인 광고로서는 세분화된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는 맞춤 정보를 제공할 수가 없다. 전문화된 매체들을 통해 광고가 아닌 기사나 프로그램을 통해 제품의 정보를 공급할 수 있다. 모든 매체는 그 자체가 마케팅의 수단이 된다. 영화 쉬리를 통해 잘 알려지게 된 삼성의 애니콜과 포카리스웨트 PPL(Product Placement, 영화나 연속극 중에 특정회사제품을 보이도록 만드는 기법)기법도 MPR의 예이다.




연세대학교 한정호 교수는 한국PR기업협회 세미나에서 MPR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광고에 대한 비판과 효과에 대한 불신도 MPR출현의 중대이유이다. TV와 신문의 광고비는 계속 증대하는 반면 광고의 혼잡도도 커지고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담배나 주류는 물론 의약품에 대한 광고의 규제도 크게 강화되고 있다. 이제 광고는 안정적인 마케팅의 수단이 되기가 어렵다. 광고대행사와 PR대행사의 합병이 활발해 지고 있는 것도 MPR증대의 이유이자 근거이기도 하다. 광고주에 대한 종합서비스를 위해 광고대행사 안에 PR부를 두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참여에 대한 시대적 요구도 중요한 원인이다. 기업 시민정신(corporate citizenship)은 이제 기업도 조직체적 시민으로서 사회적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가운데 사회적인 여러이슈들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기업의 활동이 공개되고 사회적 봉사가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대의명분 마케팅이나 지역 및 특정목표인을 대상으로 하는 관계마케팅이 활기를 띤다. 자연적 MPR은 이러한 도구가 된다.




게리 아치손(Karry Archesson)은 미디어의 뉴스가치와 소비자의 흥미를 두 축으로 하여 MPR전략의 기준을 마련했다. 이를 흔히 헤리스 그리드 (Harris Grid)라고 부른다. 이 헤리스 그리드는 제품의 성격에 따라 어떤 MPR전략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정해준다.




헤리스 그리드에서는 4가지 영역에 따라 MPR의 전략을 마련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아래표에서 보듯이 ⓐ의 영역은 미디어의 뉴스가치와 소비자의 흥미가 다 같이 높은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가시성이 높은 MPR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화 배트맨의 판촉을 위해 대대적인 배트맨 선풍을 불러 일으켰다. 뉴스 및 기사거리의 제공, 배트맨 가면이나 망토등 판촉품의 유행 배트맨 만화의 히트, 영화 중인공의 방송 등장으로 전국이 배트맨 열풍에 쉽싸이게 한다. 새로운 자동차나 컴퓨터 모델의 등장시에도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영역은 미디어의 뉴스가치는 높으나 소비자의 흥미가 떨어지는 제품인 만큼 큰 제품에 대한 새로운 뉴스거리를 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캠벨 숩(Campell Soup)사는 일상생활에 수프의 여자가지 좋은 점을 아스피린 계열의 제약사들은 약의 진통뿐만 아니라 심장병에도 좋은 새로운 이유를 미디어의 기사 등을 통해 알려지도록 해서 매출을 크게 신장시켰다.




ⓒ영역은 소비자의 흥미는 있으나 미디어의 뉴스가치가 떨어지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는 스폰서 전략을 통해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여야 하는데 흥미 임차전략(borrow-interest strategy)을 동원한다. 맥주회사인 버드와이즈사는 롤링 스톤즈 30주년 기념 투어 행사를 가졌으며 펩시콜라는 마이클 잭슨의 대규모 행사를 해당 광고와 오디오 음반과 같이 연계해서 개최하여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마이클 조던을 이용한 나이키사도 같은 방법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의 영역에서는 미디어의 뉴스가치도 떨어지고 소비자의 흥미도도 떨어지는 경우인 만큼 특별한 전략이 필요하다. 자기회사나 브랜드 이름의 대회와 같은 이벤트를 창출해야 한다. 예를 들면 담배를 법적으로 광고하지 못하는 담배제조 회사들을 윈스톤 컵 조정경기나 버지니아 슬림 테니스 컵 대회를 개최하여 회사의 지명도와 이미지를 고양시키고 있다.



 <Harris Grid 모델과 마케팅의 예>


             


미디어

뉴스가치가 높은 경우

뉴스가치가 낮은 경우


흥미가 높은 경우

ⓐ의 영역

컴퓨터/자동차/오락물

ⓒ의 영역

맥주/청량음료/운동화

흥미가 낮은 경우

ⓑ의 영역

수프/시리얼/아스피린

ⓓ의 영역

담배/자동차/머플러/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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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R은 모든 경우에 가능하나 특별히 효과를 발휘하거나 꼭 요구되는 상황들이 있다 PR컨설턴트인 다니엘 에델만(Daniel Edelman)은 MPR이 좋은 마케팅의 무기로 사용될 경우들을 다음 9가지로 요약했다.


- 제품에 확실히 뉴스거리가 될만한 것이 있을 경우

- 회사가 너무 작아서 광고예산을 마련하기 힘든 경우

- 까다로운 규제 때문에 TV광고하기가 불가능하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내용 면에서)

- 기업경영환경이 부정적이라 빠르 반전이 어려울 경우

- 기존제품이지만 새로운 흥미거리를 만들어 낼려고 할 경우

- 제품의 배포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 제품의 광고는 성공했으나 제품에 대한 인지도는 여전히 떨어져 있는 경우

- 제품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기에 시간이 너무 걸릴 경우

- 회사나 제품을 어떤 좋은 성분(IMF탈출 등)과 병합시킬 수 있을 경우



또한 헤리스는 특별히 MPR이 잘 적용되는 13가지의 제품 및 서비스를 설명했다.



- 책 : 방송이나 신문에 쉽게 화제의 책이나 저자로 소개될 수 있음

- 자동차 : 새로운 모델은 항상 소비자 및 일반인의 관심거리 언론도 주목함

- 패션의류 : 그 해나 계절의 유행 패션 자체가 뉴스거리. 전문잡지의 이용이 수월함

- 식품과 요리재료 : 새로운 요리법이나 음식은 쉽게 뉴스거리가 됨. fusion 음식이 예.

- 건강식품 : 세인의 관심거리. 특히 성인들의 관심거리로 쉽게 회자됨

- 스포츠와 운동제품 : 에어로빅이나 수영, 길거리 농구 등은 이와 관련한 제품들을 쉽게 퍼블리시티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

- 약 : 새로운 약. 기존 약의 새로운 효용, 약의 사용법과 건강관리법 등은 관심가진 사람들의 뉴스거리가 되기에 충분함

- 광(狂)제품(buff products) : 골프 스키, 오디오, 컴퓨터 게임 등의 제품들은 광제품으로서 전문잡지 등을 통해 MPR이 가장 적합한 제품들임.

- 다용도 제품들 : Ziploc bag과 같이 기존제품의 다양한 용도를 계속 알리고 개발하고 아이디어를 모을 만한 가치가 있는 다용도 제품들에 적합함

- 예술과 오락 : 영화, 비디오, 음반, 미술공예전, 등은 일반 언론과 미디어, 전문 미디어의 지속적인 관심거리임. 전속 기재코너가 마련되어 있음

- 여행과 레저 : 새로운 여행지, 여행패키지 등은 그 자체가 뉴스거리가 풍부함

- 유행제품들(trendy products) : CD Player, VCR, 디지털 카메라 등 그 시대나 시기에 모두가 가지고 싶어하는 제품으로서 새로운 제품 출시 등은 화제와 뉴스거리가 됨

- 히트유행제품(fads) : 훌라후프, 만보기, 다마고찌 등 히트제품들은 확실한 뉴스거리가 됨.




한정호 교수는 MPR의 부상은 이제 시대적으로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 되어 가고 있다고 강조 한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통합 마케팅의 구분이 없어지고 이 모두를 기업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이름으로 통칭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MPR은 저널리즘의 영역을 침해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문제를 야기 시키기도 한다. 언론이라는 사회적 공기를 마케팅에 이용한다는 발상 자체를 언론인이나 언론학자들은 매우 우려하고 있다. PR의 사회적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여론을 조작한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따라서 광고에 대한 규제만큼이나 MPR의 일부 관행에 대해서도 규제가 필요없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방송의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기업이나 제품을 등장시키는 ‘복합 메시지’ (Hybrid Message)전략들에 대해서는 그러한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한교수는 “현대사회의 미디어 환경, 소비자 환경, 기업환경, 사회 문화적 환경의 변화를 고려할 때 MPR은 피할 수 없는 추세로 보인다. MPR은 마케팅, 미디어, PR광고의 관행을 동시에 변화시키는 중요한 실체이다”고 한국PR기업 협회 세미나에서 결론적으로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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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는 이제 한국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고급 자동차 이름이 됐다. 또한 인지도 면에서 뿐만 아니라 판매에서도 두드러진 약진과 인기를 보이고 있다. 불과 몇 년 만에 이러한 돌풍을 일으키며 한국 내 수입차 업체들의 벤치 마킹 대상으로 떠오른 렉서스에 대해 그 성공 비결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글이 여러 곳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2000년 한국 법인을 설립하고 2001년부터 렉서스를 판매하기 시작한 한국토요타자동차는 첫 해 수입차 시장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며 점유율 10.8%, 판매 4위를 기록하고 그 이듬해인 2002년에는 벤츠를 제치고 18.9%의 시장점유율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렉서스의 성공요인에 대해 한국토요타 측은 ‘우수한 품질’과 ‘뛰어난 애프터서비스’를 꼽고 있고 다른 수입차 업체들은 ‘적절한 가격’과 ‘성공적인 문화 마케팅’에 더 큰 무게를 두기도 한다. ‘콘서트나 자선사업 등 한국 정서에 맞는 마케팅을 활발히 전개한 것도 렉서스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효했다’고 평가하기도 하며,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토요타의 타겟 마케팅이 큰 성공을 거뒀다’고 인정하기도 한다.

 

모두 다 중요한 요소들이며 빼놓을 수 없는 요인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 한국 정서에 맞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은 한국토요타 만의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그리고 매우 효과적인 프로그램으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한국토요타 설립 당시부터 PR을 담당해온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역시 이 부분에 주목하며 늘 강조해오고 있다.

 

국내에서 ‘인문학의 위기’로 학술 연구의 어려움을 토로할 시기 한국토요타는 국내 학술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학술지원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또한 한일간 우호적인 관계를 도모하기 위한 한일청소년교류프로그램, 매해 가을 한국 출신의 세계적 음악인과 협연하는 토요타 클래식, 어버이날 효 캠페인 등 연간 진행되는 많은 프로그램에서 한국 문화와 정서를 담고 있다. 올해부터는 중요한 산학 협동의 일환인 T-Tep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국내 대학에 자동차 관련 연구를 지원하고 졸업생들에게 토요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제공한다.

 

올해 부임한 오기소 이치로 대표이사는 이러한 한국토요타 만의 인터컬쳐럴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부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비록 한국어 음을 외워 발표했지만 한국어로 첫 인사를 해 참석한 기자단을 놀라게 했는데, 그 이후 한국어학교를 매주 이틀 씩 꼬박 출석하며 하루가 다르게 유창한 한국어 구사로 직원들과 주변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하고 있다. 한 기자는 최근 뉴 LS430 신차발표회에서 오기소 사장의 능통한 한국어 연설을 듣고 무척 감동 받았다는 진심을 전달하기도 했다. 오기소 사장은 우리말 공부와 관련해 “한국과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래야 한국 고객이 원하는 것을 더 잘 파악하고 더 나은 서비스와 고객 만족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고 동기를 밝히고 있다. 정말 철저한 토요타맨이며 글로벌 기업의 지사장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최근에는 역삼동으로 사무실을 확장 이전하여 업계 및 관계자들을 초청했다. 그 자리에서 오기소 이치로 사장은 한국식 고사를 지내며 돼지 머리 앞에서 절을 했는데, 기대치 않은 글로벌 기업의 이전 기념식에 참석한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라는 말이 있다. 오기소 사장과 토요타자동차 모두 이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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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도요타의 오기소사장이 전통적인 한국고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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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컴퓨터와 MPR

2008년 03월 10일 11시 58분

우리는 가끔 일순간에 일약 스타가 되어 돈방석에 올라서게 된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밖에 사람들이 보기에는 일순간에 그런 일이 벌어진지 모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힘든 견딤과 힘든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벤쳐붐 훨씬 이전 1989년경에는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개 발은 많은 언론이 관심을 가졌던 분야이고 운이 좋게도 그때에 좋은 소프트웨어가 하나 나오게 되면 언론이 앞장서서 보도하다보면 따로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좋은 사례하나를 소개한다.

 

1989년 서울대학교 공대 전자계산학과 4학년생이던 이찬진을 비 롯한 몇몇의 학생들이 아래아 한글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것이 시중의 화제가 되었다. 일반인에게 컴퓨터 하면 당 시 용어로 퍼스컴(PC)이라는 하드웨어만 있는 줄 알고 있던 때 에 이찬진씨(현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드림위즈' 사장)가 개발한 아래아 한글은 소프트웨어가 있어야만 하드웨어가 제 구실을 한 다는 점을 알려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언론은 이찬진씨가 만든 워드프로세서가 유명한 컴퓨터 회사가 만든 제품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더구나 배우는 학생의 신분으로 이런 훌륭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이찬진의 아래아 한글을 연일 대서특필했다. 이찬진에 대한 인물소개부터 제품에 대한 소개와 제품 개발과정 등 이찬진과 아래아 한글에 대한 것은 거의 모든 내용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순수한 기사만으로도 이찬진과 아래아 한글을 모르면 간첩이 될 정도로 기사화의 위력은 대단했다. 당시로서는 쓸만한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너무 없었기에 가뭄에 단비 만난 격의 타이밍도 적절했지만 순수한 학생의 신분인 '이찬진'과 그가 만든 '아래아 한글'의 신기할 정도의 우수성은 여러모로 높은 뉴스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언론의 스폿 라이트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신문, 잡지, 방송에서 다양한 언론 매체가 발표하는 기사 그 자체는 광고보다 몇십배 몇백배의 위력을 발휘했다. 대학생들의 한낱 습작품에 불과할 수도 있었던 아래아 한글을 이와 같이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소개하자 이에 힘입어 이찬진씨는 1990년에 아래아 한글을 개발, 판매하는 '한글과 컴퓨터'를 창립하여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다. 이 '한글과 컴퓨터'가 IT벤처 기업의 효시로도 자주 언급되는 것은 당시 '이찬진'이라는 네임 밸류와 '한글과 컴퓨터의 아래아 한글'이라는 제품의 유명세 때문인데 이는 여타 마케팅 활동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언론에서 기사화하여 준 덕택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학생이 광고를 할 여력 있었던 것도 아니고, IMF이후처럼 IT벤처 대한 투자 붐이 당시에 일어났던 것도 아니므로 프로모션 할 비용도 없었던 상황이었음에도 오로지 제품하나 제대로 만들었고 이를 언론에서 인정하여 기사화를 통하요 홍보(마케팅 PR)를 대신 해줌으로써 큰 비용 없이도 회사설립이후 한때 벤처 신화로 인정받는 사세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한글과 컴퓨터의 아래아 한글의 신화의 이면에는 한국 언론이 끼친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는 점에서 마케팅 측면에서 언론 기사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게 하는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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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의 토마스 모나간(Thomas Monaghan)은 130억 달러 규모의 시장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피자 체인점인 도미노 피자를 설립했다. 모나간이 이끄는 도미노 피자는 1981년의 매출액 1억 7천9백만 달러에서 1990년대 초에는 2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달성함으로써 미국에서 두 번째로 빠르게 성장하는 프랜차이즈 회사로 발돋움했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났지만, 모나간은 이제 수백만 달러가 넘는 자동차를 수집하고, 디트로이트의 야구팀인 타이거스를 샀으며,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사회적 위치에 올라섰다.



도미노는 300개 점에서 10년 만에 약 5,000개가 넘는 지점을 운영하게 되었으며 연간 약 2억 3천만 개의 피자를 판매해왔다. 도미노의 성공은 단순히 창업자의 노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피자를 주문한 고객이 30분 이상을 기다리지 않게 한다는 회사 방침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만약 30분이 넘으면 그 고객은 3달러의 할인을 받거나 무료로 피자를 받는다는 회사방침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도미노 피자의 이 서약은 한편으로 회사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했다. 7만 명 내지 8만 명의 배달 운전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도미노피자의 30분 방침이 무모한 사고 및 죽음을 초래한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1989년 6월 인디애나주의 열일곱 살 난 도미노 배달원이 운전사고로 죽는 일이 있었다. 비 때문에 미끄러운 도면에서 그의 소형 픽업트럭이 미끄러지면서 기둥에 부딪혀 사고가 났던 것이다. 그 배달원의 어머니는 도미노의 30분 방침이 바로 도로교통법을 어기라는 것과 같다고 말하며 30분 안에 배달하기 위해 무리하게 속도를 냈기 때문에 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인디애나주의 상원의원인 리처드 루가(Richard Lugar)는 회사측에 30분 배달 방침을 재검토할 것을 서면으로 촉구했다. 또 피츠버그에서는 도미노 배달차가 한 가게 앞에 세워져 있던 승용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 차에 타고 있었던 피해자는 도미노피자의 매니저가 사고현장에 달려와 피자를 배달해야 하니 빨리 협상을 끝내자고 했다며, 이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 해 9월 시카고에 있는 전국 작업환경 안전기관(National Safe Workplace Institute)은 보고서를 통해 최소한 10명의 아르바이트 학생인 도미노피자 배달운전자가 배달 중 사고로 사망했으며, 10명의 사상자를 낸 100건 정도의 교통사고에 연루되었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에서 도미노의 초고속 배달 방침을 철회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보험업계에서는 그 방침이 젊은 운전자들로 하여금 과속하게 하므로 각 체인점들의 30분 방침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츠버그 사건을 담당한 법률전문가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사고를 당하고 있다. 이 배달원들은 30분 이내에 피자를 배달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멈춤' 표지판을 그냥 지나치거나, 과속을 하고 혹은 불법회전을 하게 된다. "

 

하지만 도미노는 전국적인 거센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 30분 방침을 철회하지 않았다. 회사 측은 배달시에 발생되는 과속문제는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주로 피자체인점 부근에서 일어났으며, 이는 '지각의 문제(Perception Problem)'라는 입장을 밝혔다. 피자는 몇 분 이내에 만들어져 배달원들에게 전달되므로 안전하게 배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도미노는 30분 방침이 배달원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들에 대해 대대적인 광고와 PR을 통해 방어전을 펼쳤다. 도미노의 전국적인 PR캠페인은 다음과 같다.

 

(1) 수백만 개의 피자 배달상자에 도미노 사장의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붙였다. "30분 배달방침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안전한 배달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도미노의 배달시스템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배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약 2마일도 안 되는 평균 배달거리는 우리 배달원들이 여러분들의 집까지 배달하기에 충분한 18분 거리입니다. 수백만 번의 안전한 배달경험으로 우리는 그 시간이 넉넉하다는 것을 압니다."

 

(2) 수신자 부담 전화 '1-800-DOMINOS'가 개설되어 일반인들이 난폭한 배달운전자들에 대한 불만을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3) 도미노 피자의 사진과 함께 '멈춤' 표시 및 수신자 부담 전화번호를 넣은 대형 포스터를 제작, 배포했다.

 

(4) 도미노는 언론에 공격적으로 안전을 강조하는 퍼블리시티를 했다. 도미노는 자사의 모든 배달 운전자들이 필수적으로 회사에서 마련한 8시간 운전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는 점을 알렸고, 또한 일부 도시에서는 좀더 강력한 운전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홍보했다. 도미노는 전국 5,000개 매장의 3분의 1 정도 되는 체인점에서 일하던 열여덟 살 미만의 배달운전자들을 교체했다.

 

(5) 도미노는 자사의 안전기록을 솔직하게 밝혔다. 도미노는 연간 약 20명의 직원들이 배달사고로 숨졌다고 밝혔다. 이는 약 1천1백5십만 개의 판매된 피자당 1명이 목숨을 잃은 셈이며, 물론 이들 사고가 모두 배달 중 발생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도미노는 배달 운전자들이 30분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았으며, 그 시간을 지키지 못했을 경우 고객들에게 제공한 3달러는 그 배달원이 아닌 회사가 지급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도미노는 항상 제일 늦게 배달하는 직원에게 주었던 "지각 왕" 배지 수여식을 공식적으로 폐지했으며, 최고의 운전 배달원들에게 인디애나폴리스 500(도미노가 후원하고 있었던 자동차경주 대회)의 여행권을 상으로 주기로 했던 계획을 중단하고, 대신 최소 5,000시간의 안전운행 시간을 보유한 배달원을 포상하는 계획을 새로 세우기로 했다.

 

(6) 도미노는 인쇄매체 광고를 통해 자사의 안전성 확보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을 강조했다. "우리는 12분만에 맛있는 피자를 만들어냅니다. 안전하게 배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 "

 

도미노에 대한 인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던 부정적인 언론기사들이 잠잠해지고, 그에 맞추어 모나간 회장은 30분 방침이 아닌 다른 기사거리로 언론 노출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도미노의 새로운 주력 메뉴를 발표했다. 낙태반대 단체에 기금을 내고, 미시건주의 리조트 시설에 35층짜리 '기울어진 피자빌딩' 건설을 계획했다. 곧이어 피츠버그 사건의 재판관은 30분 방침에 대한 소송의 무효를 선언했다. 도미노의 대변인은 재판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도미노의 배달문제가 법정에서 제기되었다면 도미노의 안전운전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을 더욱 널리 알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실망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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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수프 판매고가 최고조에 달하는 추운 기후가 계속되는 수개월 동안 캠벨 수프(Campbell Soup)에 관한 소비자의 관심을 높이고 구매량을 늘리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먼저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수프의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고 있지만 겨울 판매고는 몇 년 동안 답보상태였다. 조사연구에 의하면 목표 소비자는 여성이고 연령분포는 18˜80세로, 젊은 엄마에서 할머니에 이르는 분포였다. 또한 그 연구를 통해서 목표 소비자는 수프를 기본적인 건강식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커뮤니케이션 센터는 기존 마케팅 연구결과를 점검하여 PR계획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될 데이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1월은 전통적으로 수프의 소비가 가장 많은 달이다. 둘째, 모든 소비자들은 건강에 좋다고 생각되는 식품에 가장 높은 관심이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전역에 걸쳐서 지역적으로 특징적인 요리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미디어에 상표를 부각시킬 기회를 찾아보았다. 두 가지 가능성이 나타났다. 그 회사의 건강한 인상을 제공하는 상징이다. 아직도 널리 인정받고 있는 캠벨 아이들(Campbell Kids)이 1984년에 80살이 되었다. 그리고 판매고가 가장 높은 두 가지 수프인 버섯크림과 닭국물 국수가 1984년에 50살이 되었다.

 

커뮤니케이션 센터는 주요 목표를 다음과 같이 설정했다.

첫째 겨울 동안 최대의 자극을 유발하기 위하여 이 모든 정보를 통합할 이벤트를 찾는다. 둘째 판매고가 높은 기간에 이러한 반복된 자극과 상품의 배치를 통하여 목표 마켓에 접근한다. 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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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기네스(Guinness)맥주, 1955년 레버(Lever)사의 도브(Dove)비누, 1960년 롤스로이스 자동차와 쉘 정유사, 1962년 시어스(Sears)백화점, 1971년 메릴린치, 1975년 영국관광청, 1987년 허쉬(Hershey)초콜릿, 1996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1997년 이코노미스트 잡지, 1998년 코닥 필름, IBM 및 포드 자동차 위의 고객들은 광고대행사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최상급 광조주들이다. 마흔살이 되어 뒤늦게 광고회사를 차린 광고계의 전설적인 인물 오길비 앤 마더의 설립자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 1911-1997)가 영입한 감동적인 고객 리스트의 일부이다.

 

오길비가 불혹의 나이에 ‘오길비 앤 마더’라는 광고회사를 설립하였을 때 그 회사는 무려 3천개의 대행사와 경쟁을 해야하였다. 이러한 치열한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그는 마케팅 PR 즉 MPR의 귀재였다. 전설적인 광고인, 광고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존경할만한 광고인을 꼽으라면 항상 일등을 놓치지 않는 광고인 오길비. 그가 MPR의 귀재라니 놀라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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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비의 MPR전략의 시초는 아주 작은 일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우선 무명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최초의 작업 목표로 삼았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첫 번째로 광고업계지 기자10명 정도를 점심식사에 초대하였다. 그는 無로부터 큰 대행사를 만들려는 그의 야심을 그들에게 털어놓았다. 그 후 그들은 오길비가 보내는 자료들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기사로 다루어 주어 그의 이름은 빠르게 전 광고인과 광고주들에게 각인 될 수 있었다.”

 

오길비의 발언은 무엇이라도 당시 서울의 충무로에 비교되는 뉴욕의 메디슨가의 위대한 기라성들을 자극하도록 만들어졌다. 그것 중에 하나는 아트 디렉터즈 클럽에서 그가 한 말이다. 청중인 아트 디렉터 전원에게 좋은 레이아웃을 만드는데 39개의 원칙이 적힌 리스트를 나누어주었는데 그때의 고전적인 원칙은 오늘날 메디슨가에서도 통용되고 있을 정도로 그들에게는 하나의 ‘바이블’ 이 되었다.

 

그 다음은 대학에서의 광고 관련 강의의 몽매함을 고발하고 실제로 사용될 수 있는 자격증을 수여하는 광고대학을 만들기 위해 1만 달러를 내놓을 것을 제안하는 그의 발언이었다. “이 바보 같은 제안은 신문의 1면을 장식하였다.”고 오길비는 회상하였다. 뉴스매체의 특성을 이해하고 기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 가를 파악한 제안이었다.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예상 고객 600명에 대해 광고업무관련 뉴스레터를 정기적으로 송부하였으며, 이 자료는 많은 광고주들에게 읽히게 되어 고객개발에 큰 힘이 되었다. “나의 이러한 자기 PR법이 지나쳤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내가 점잖았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를 거두는데 아마 20년이나 걸렸을 지도 모릅니다. 나는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무명이었기 때문에 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고 어려운 옛시절을 오길비는 회고한다.

 

그는 오길비 앤 마더를 마케팅하여 새로운 광고주를 끌어들이고 회사를 키우는데 이처럼 PR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그는 PR의 힘을 알며, PR을 하기 위해 언론 매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가를 꿰뚫어 보고 있었으며, 그는 또 책의 위력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가 쓴 몇 권의 책들도 아마 이러한 PR 작전의 일환으로 출판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의 책은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는 광고의 마술사라는 언론 특유의 자극적 표현으로 『타임』지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그가 고객을 영입하는데 있어서의 기본 철학은 언론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그와 오길비 앤 마더의 주가는 계속 상승하였다. 그의 MPR전략이 빛을 발하게 되어 그의 사업은 더욱 더 번창하게 되었다.

 

그는 대행이 끊기면 경영에 곤란을 느낄 것 같은 큰 클라이언트에는 욕심을 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혹시나 그 클라이언트가 떨어져 나가지 않을 까 전전 긍긍하면서 지내야 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포드의 승용차인 에드셀(Edsel)의 프리젠테이션을 포기했다. 그는 포드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귀사의 어카운트는 현재 우리회사의 취급고의 반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당신들에게 솔직한 조언을 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부담입니다." 라고 쓴 그의 편지는 또다시 언론의 화제가 되었다.

“나는 클라이언트를 선택하는데 매우 주의를 기울인다. 나의 이상(理想)은 2년에 1개 사씩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확보해 나가는 것이다 너무나 성장이 빠르면 우리들은 수련이 부족한 직원을 쓰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새로운 클라이언트의 캠페인 제 1탄을 위해 우리들이 지닌 최고 직원을 동원함으로 말미암아 종전의 클라이언트에 대한 서비스를 소홀히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10가지 기준으로 클라이언트를 구하였으며 이 원칙은 또다시 언론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다.

 

1) 그 회사의 제품이 우리들이 광고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여러 번은 아니지만 우리들은 우리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제품을 취급하여 실패한 경험이 있다.

변호사는 자기로서는 유죄임을 알고 있는 살인범에 대해서도 변호해야 할 때가 있겠지만 광고란 직업의식만으로 할 수 없다.

2) 우리가 맡기 이전에 일을 했던 대행사 보다 일을 더 잘할 자신이 없으면 절대로 맡지 않는다. 뉴욕 타임스가 그에게 광고를 맡아 주도록 요청했을 때 그는 거절했다. 뉴욕 타임스가 지금까지 해온 빛나는 광고보다 더 잘할 자신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3) 장기간에 걸쳐 매출이 감소되고 있는 제품은 피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경우에는 대부분 그 제품이 본질적으로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련한 외과의 같으면 환자를 수술대 위에서 죽게 해도 최선을 다했다면 비판의 대상은 되지 않지만 젊은 외과의가 그런 재난을 만나면 일생에 큰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4) 클라이언트가 우리에게 이익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살핀다.

그는 클라이언트를 백만장자로 만들기 위해 그 자신은 빈털터리가 될 만큼 희생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클라이언트에 대한 지나친 서비스로 문을 닫게 되든가 아니면 서비스 부족으로 그 고객을 잃게 되든가 그 균형을 유지하는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5) 큰 이익은 주지 못해도 훌륭한 광고를 만들게 해주는 고객을 택한다.

기네스 맥주나 롤스로이스처럼 큰 이익은 주지 못했어도 좋은 광고를 만들게 해서 우리들에게 황금의 기회를 주게 한 광고주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대행사의 존재를 광고하는데 이것은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위험한 것은 소규모의 대행사가 크리에이티브에는 능하지만은 조사나 마케팅에는 약할 것이라는 억측을 받기 쉬운 점이다.

오길비 자신도 좋은 카피라이터로 인정은 받았지만, 타 부분은 인정받지 못해서 그것을 원통스럽게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전문은 카피보다는 오히려 조사였다. 그는 갤럽 박사의 여론조사연구소 출신이었다.

6) 클라이언트의 경영자와 대행사와의 관계는 환자와 주치의의 사이와 같이 친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카운트를 맡기 전에 그 클라이언트와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타진해 봐야 한다. 그러므로 예정 클라이언트가 처음 나를 만나기 위해 오면 그가 왜 대행사를 바꾸려고 하는가를 나는 잘 알아본다. 변덕스런 고객을 얻는 것은 얻지 않는 것만 못하다.

 

7) 그는 광고가 마케팅믹스(Marketing Mix) 중에서 부수적인 것으로 경시하는 클라이언트를 피한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위해 현금이 필요하게 되면 광고비로 책정해 놓은 것에 손을 대는 나쁜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대행사에게 대체로 가장 유리한 어카운트는 단가가 싸지만 널리 일반에게 사용되는 소비제로 빈번하게 구매되는 상품이다.

고가의 내구 소비재보다는 이 일반 소비재야말로 보다 많은 예산과 광고테스트를 위한 많은 기회가 있는 것이다.

 

8) 오길비는 연구소에서 생산되는 신제품이 아니면 신제품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런 신제품이 아니면 이미 타사에서 전국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이다.

신제품은 테스트 마켓에서 10중 8까지 사멸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9) 만약 우수한 캠페인을 만들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결코 협회나 연맹과 같은 연합된 클라이언트의 광고를 맡아서는 안된다.

그는 어떤 대행사와 레이욘 회사 연맹이라는 어카운트를 얻기 위해 경합한 일이 있었다. 그 연맹의 수뇌들은 그를 거대한 회의실로 초대한 다음, "오길비 씨, 우리들은 많은 대행사를 만나고 있습니다. 당신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15분간입니다. 시간이 되면 이 벨을 울리겠습니다. 벨을 울리면 다른 대행사가 들어오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는 그 고객에게 세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들이 캠페인해야 할 제품은 몇 개입니까?"

답은… 자동차 타이어, 가구재료, 산업용재, 여성의복, 남성의복.

"얼마나 쓸 수 있습니까?"

답은… 60만불.

"광고의 OK는 몇 사람이 해야 합니까?"

답은… 12명의 위원과 12개 회사의 대표들.

"벨을 눌러 주십시오."

그는 밖으로 나왔다. 너무나도 많은 주인, 너무나도 많은 목적, 너무나도 적은 금액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10) 때로는 그들이 광고를 운영하는데 꼭 필요한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을 고용해 주어야 한다는 조건부로 광고를 맡기겠다는 클라이언트는 사양하였다.

그는 그의 조건에 맞지 않는 어카운트를 거절한 일이 5, 6회 있었다.

저 유명한 스위스의 시계회사에서 그에게 광고를 맡기겠다는 것을 그는 거절했다.

그 이유는 그 광고가 스위스에 있는 수뇌진의 승인이 필요할 뿐 아니라 미국 수입업자의 OK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주인에게 시중을 든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어카운트를 거절할 때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 수수료를 25% 낼 수 있으면 맡겠다고 제의하자 그 쪽에서 거절해왔다. 새로운 대행사를 물색하고 있는 회사가 후보에 올라있는 대행사의 명단을 신문에 공개하는 일이 있다. 이럴 때 그는 그 경합에서 물러난다.

만약 탈락했을 때 그것이 알려지면 그의 회사의 위신을 위해 매우 불리한 일이기 때문이다.

흔히 대행사에서 예정 클라이언트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대행사의 사장은 부하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고 그 부하가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되지만 그는 언제나 그 자신이 프레젠테이션을 하였다.

 

대행사의 선택을 최후로 결정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클라이언트의 사장이다.

대장을 설득하는 것은 대장이어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경험이 많은 어카운트는 인간 전람회에 절대로 속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많은 대행사 리더의 솔로에 더 많은 신뢰를 주고 있다." 오길비의 경험담이다.

 

1949년 뉴욕 메디슨가에 오길비 앤 마더사를 창립하였다. 그 후 그는 매우 독창적인 광고들을 선보였고 창의성과 여론조사를 통한 광고도입, 기업 이미지 광고(브랜드 광고)의 중요성을 알려 현대 광고를 발전 시켰다.

 

‘MPR, 광고 보다 강한 PR'의 저자 정해동․박기철씨는 오길비가 가장 존경받고 가장 사업적으로 성공하게 된 배경을 4가지고로 설명하면서 그의 MPR기법을 오길비가 있게 된 결정적 이유로 지적하고 있다.

첫째, 오길비는 광고를 제대로 안 사람이었다. 되지도 않는 크리에이티브로 허풍떨기 쉬운 메디슨가의 광고 바닥에서 그는 광고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효과가 있는지 알고 그것을 자기 일에 철저히 적용시킨 사람이었다. 그는 크리에이티브란 끔찍한 말이라며 자기 회사 직원들이 함부로 사용하지 말도록 했다. 그가 말한 브랜드 이미지가 광고란 흔히 생각되는 감성적으로 뽀시시한 소프트 광고가 아니라 지속적 ․ 일관적으로 동일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광고다.

 

둘째로 오길비는 올바른 광고 대행사 경영의 모범을 보여준 사람이다. 광고 대행사가 어떻게 일해야 하며 어떤 마케팅을 하고 어떤 직원교육을 해야 할지 그는 정확한 맥을 짚고 회사를 성장 ․ 발전시켰다. 이걸 실감하려면 그의 책에 담긴 광고 대행사 경영과 관계된 통찰을 육안(肉眼)이 아닌 지안(智眼)으로 읽어야 한다. 육안으로는 활자만 보이지 그의 통찰력이 절대 안 보인다.

 

셋째로 오길비는 광고뿐만이 아니라 통합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IMC)의 선구자였다. 그는 브랜드 이미지 광고의 창시자라기 보다는 데이터베이스 마케팅을 바탕으로 하는 IMC의 선구자였다. 오길비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같은 세대를 살았던 광고인 들 중에서 오직 그만이 유일하게 소비자로부터 직접적인 행동 반응을 얻는 일의 중요성과 가치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넷째로 오길비는 PR의 귀재였다. 그것도 MPR의 귀재였다. 이게 ‘오길비’가 된 결정적 이유이다. 오길비 앤 마더 광고 대행사는 1992년 세계광고대행사 중 매출 7위를 기록하였다. 오길비는 1911년에 태어나 몹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힙겹게 에딘버러에 있는 학교와 옥스퍼드에서 공부하였다. 대학졸업뒤 대공항으로 수습요리사와 난로 외판원등을 하면서 어렵게 보내다 마티앤 크로더 광고대행사에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미국에서 영국정보부와 영국대사관직원으로 일한 경험도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그의 헤더웨이(Hathaway)셔츠 광고를 기억하고 있다. 116년 된 헤더웨이 의류회사에게 순식간에 매출이 증가하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당시 1950년대 미국에서 대량 생산, 유통되던 와이셔츠 시장에 헤더웨이만의 맞춤화를 브랜드 컨셉으로 내세우고, 광고에서는 에꾸눈을 한 모델을 써 사람들에게 뭔가 있어 보일 것 같은 감성적 호기심을 자주 하여 소비증대에 한 몫을 하였다.

 

그의 롤스로이스 광고의 카피는 더욱 더 유명하다.

‘시속 60마일에서 당신이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소음은 전자시계소리’(At 60miles an hour the loudest noise in the new Rolls-Royce comes from the electric clock) 항상 그 스스로 앞장서서 전략을 개발하고 미디어에 과감하게 노출시켜 자신과 자신의 회사를 MPR기법을 동원하여 마케팅하여 사업면에서 가장 성공한 광고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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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SARS 중증급성 호흡기 증후군)는 중국 전체를 공포분위기로 만들며 국가 적인 비상사태로 발전하였다. 특히 중국 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에게는 커다란 위 기로 효과적인 위기 관리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한국의 LG전자는 고통을 겪고 있는 중국인과 함께 하고 사스 예 방기금 공익광고도 게재하여 중국인들에 게 깊은 인상을 심어 매출이 전년동기대 비 40% 급증하였다. 그간 성공적인 위 기관리 사례에 관해 얘기할 때마다 적절 한 한국 사례가 없었으나 이제 LG전자 의 사례를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스 기간에 ‘아이 자이 중궈(愛在中國)’를 캐치프레이즈로 중국 현지화에 박차를 가한 LG전자는 중국 전역에 17개 공장이 있어 이미 2003년 3월 중순부터 사스 대책 위원회를 가동해 만반으로 준비했으며 사스 파문이 예상보다 커지면서 중국 전체가 흔들릴 때 명실상부한 현지 기업이 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였다. LG전자는 사스 기간에 전직원이 일심동체가 되어 사스 예방 조치를 취한 결과 에어콘, 냉장고 등 여름 성수기 제품 수출 납기를 맞출 수 있었다.



LG는 한 발 더 나아가 위기에 처한 중국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베이징시 50개 주요 병원에 살균 전자렌지, 세탁기, 청소기 등 450대(1억 5천만원 상당)를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성금과 사스 예방 기금 공익광고를 실었다. 또 베이징~텐진 고속도로에서 소독면을 나눠주고 전 직원차량에 하트 모양 ‘아이 자이중궈’ 스티커를 부착하는 등 ‘아이 자이중궈 캠페인’을 전개해 현지 언론 등에서 각광을 받았다. 중국 업체도 생각지 못한 참신하면서 중국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발상이었다.

 

“선양에 LG 전자 공장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랴오닝성 선양시 장싱샹 서기말이다. 사스가 한창일 때 LG전자 선양 현지법인을 방문한 장싱샹 서기는 사스에도 불구하고 시설을 증설하고 전직원이 차질 없이 공장을 가동하는 모습에 감격해 했다. 톈진 공장을 시찰했던 장리창 톈진시 당서기는 철저한 예방대책으로 환자가 한 사람도 발생하지 않고 생산과 수출에 차질 없이 가전 공장을 운영하는 LG전자에 감사를 표했다.

 

사스 발생 기간에 LG전자 공장을 방문했던 중국 지도자뿐만 아니라 현지 언론도 LG전자 ‘중국사랑 경영’을 잇달아 보도하였다. 베이징 신보와 차이나 데일리 등 현지 언론은 ‘사스로 기업 실력과 사회적 책임감을 경험한다.’는 제목으로 LG의 사회적 책임과 유연한 마케팅 전략 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같은 중국인 감동 경영이 알려지면서 LG전자 매출도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LG전자의 중국 지주회사 노용익 부회장은 “사스 발생기간에 생산 판매 모두 전년 대비 30~40% 성장을 기록했다.” 며 “이번 사스 위기는 LG의 현지화가 뿌리내리는 데도 좋은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LG 전자 중국 지주회사에는 중국 전역에서 직원 2만 3천명이 근무하고 있다. 사스가 번진 3월 중순부터 LG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전직원에게 마스크와 체온계를 나눠줬다. 또 사스 예방을 위해 비타민이 함유된 과일까지 배급해 환자가 한 사람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모든 생산 시설도 정상 가동했다. 이와 함께 외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사스 예방기금 마련을 위한 공익 광고를 게재하면서 중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 마케팅을 활성화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존슨 앤 존슨의 타이레놀이 언급되고있다. 존슨 앤 존슨은 언론과 공중에게 모든 정보를 공개하여 신뢰를 얻게 되어 위기 관리에 성공했지만 LG전자의 위기관리는 철저한 준비와 전략적인 기획이 빛을 본 하나의 사례이다. 외국 진출 기업이 그 나라의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여 인터컬츄럴 커뮤니케이션(Intercultural Communication)을 효과적으로 하지 못하고 위기에 봉착하는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특히 LG전자의 사례는 외국 진출국에서의 전국가적인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여 진출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인터컬츄럴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하여 단단한 현지화를 이룩한 경우이다. 한 기업의 성공적인 해외에서의 위기관리가 국가의 이미지까지 바꾸게되기 때문에 LG전자의 위기 관리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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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하나 양자하십시오"

2008년 03월 10일 11시 48분

1983년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을 전후하여 미국을 강타한 양배추인형 붐을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양배추 인형을 개발한 콜레코(Coleco Co.)사는 주어진 마케팅 예산으로는 효과적인 TV광고가 불가능하여 PR전문대행사인 리처드 와이너사에 의뢰하여 MPR기법을 동원하여 승부를 걸기로 했다.



콜레코사의 양배추인형은 포근했고, 품 안에 쏙 들어왔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특했다. 이 사랑스러운(또는 보는 이에 따라 징그러울 수도 있는) 양배추 인형은 미 조지아 주의 한 조각가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콜레코(Coleco Co.)사는 양배추 인형의 마케팅을 위해 MPR에 거의 대부분을 투자했는데, 그 첫 단계로 PR 컨설팅 회사인 리차드 와이너(Richard Wiener Inc.)를 고용했다. 와이너사는 우선 심리학자를 고용해서 이 인형의 어떤 점이 아이들에게 어필했는지 조사했다. 밝혀진 사실들 중 하나는 인형의 신체적 형태가 아이들의 아기 돌보는 본능을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인형을 돌본다는 컨셉이 양배추 인형의 특성과 잘 맞아 떨어졌다. 이 조사 결과에 대한 포지션 페이퍼가 작성되어 양배추 인형 프레스 킷(press kit)과 함께 매체에 배포되었다. 그에 더하여 "양배추 인형 돌보는 법"에 간한 지침서가 인형과 함께 포장되어 판매됐다.

 

이 조사결과에 바탕을 둔 PR 계획이 다음과 같이 실행되었다.

* 마침 임신 중이던 '투데이(Today)'쇼의 진행자 제인 폴리(Jane Pauley)에게 양배추 인형을 보냈다. 운좋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녹화중에 진행자가 관중 속으로 던진 양배추인형이 카메라에 잡혀 전 미국 시청자들에게 노출되어 순식간에 큰 인기를 모으게 되었다. 양배추 인형은 5분 30초 가량 '투데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파를 탔다. 와이너사에 의하면, 이것이 바로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투데이'쇼는 제3자(Third-Party)로서 양배추 인형의 신뢰도를 높여주었다...이는 광고효과를 크게 능가한 것이다."고 와이너사의 책임자는 말한다.

* 1983년 10월에 양배추 인형 홍보 사절단이 미국의 15개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각종 TV와 라디오의 뉴스 및 토크쇼에 출연하여 널리 알렸다.

* 보스톤에서 대대적인 양배추 인형 행사가 진행됐으며, 초청된 아이들은 무료로 인형을 받았다.

* 양배추 인형 프레스 킷이 전국의 주요 언론매체에 배포되었다. 신기술에 관심 있는 매체 특성을 고려하여, 프레스 킷에 매 분마다 인형 얼굴을 변경시켜 똑같은 표정의 인형이 없게 만드는 컴퓨터로 작동되는 생산장비를 부각시켰다.

* 통신사들에게 양배추인형이 전국적으로 동이 날것을 알렸다.

* 많은 물량을 각종 자선단체와 병원에 선물로 배포한 끝에 마침내 와이너사는 당시의 영부인 낸시 레이건여사로 하여금 미국에 심장병 수술을 받으러 왔던 두 한국인 어린이들에게 양배추 인형을 선물하도록 마련했다.

 

또하나 언급될 수 있는 주요전략은 ‘양자(Adoption)개념을 도입하였다는 것이다. ’양배추 인형 하나 사십시오‘가 아니라 ’가련한 양배추 인형하나 양자하십시오‘라는 판촉전략이 소비자들에게 먹혀 들어간 것이다 연말을 보내면서 마지막으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나 해야겠는데 적당한 것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양배추 인형하나 양자해서 뿌듯하게 연말연시를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MPR전략을 통해 연말연시 미국주요 백화점에서 양배추인형을 하나 ‘양자’하기 위해 긴줄을 서게되었으며 양배추가 매진되어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사과문을 낼 정도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콜레코사는 짧은 시간에 돈방석에 올라앉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마케팅 환경이 열리고 있다. 광고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마케팅 활동이 이제 그 위력을 잃어가오 있다. 광고만으로는 다양하고 복잡한 환경에서 세분화되는 공중을 설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제 마케팅 관리자는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롭고 비용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을 발굴해야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마케팅PR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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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에 처음 소개된 예쁜 인형의 대명사 바비 (Barbie) 인형은 1999년 탄생 40주년 기념행사를 가지면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 인형을 만드는 회사 마텔(Mattel)은 항상 바비 인형에 쏠려있는 일부 사람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신경 쓰여 했었기 때문이다. 21세기에도 끊임없는 바비 신화를 이어가기 위해 마텔은 이러한 바비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해야 했다. 그 때 마침 바비 탄생 40주년을 맞게 되었고 마텔은 이 기회를 맞아 기존 바비의 이미지를 새로운 이미지로 다시 포지셔닝하는 MPR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먼저 마텔은 500여명의 여성들과 3~11세 연령층의 딸을 가진 엄마들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를 실시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바비에 대한 이미지는 "풍만하다" "운동을 해서 날씬하다" "독립적이다"등과 같이 비교적 긍정적인 이미지였다. 다만 그들은 바비가 이러한 이미지에 더해 "지적이고" "목표지향적'이며 "다정다감한' 느낌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바비 인형을 가지고 노는 자신의 딸들이 하나의 롤 모델로 삼을 수 있는 보다 완벽하고 훌륭한 여성상을 바비에게 원했던 것이다.

 

또 한가지 마텔이 놀란 것은 바비 브랜드가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자선활동들을 조사대상인 여성들이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텔은 언론매체를 대상으로도 별도의 미디어 오딧을 실시했다. 기자들은 바비에 대해 직접적 소비자인 여성들보다 약간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여성의 성적 매력만을 너무 강조하고 있다", "의존적이고 나약한 여성상의 상징이다" "차갑고 쌀쌀 맞은 느낌이다"등의 의견이 많았다. 그들 또한 기존에 시행중인 바비 브랜드의 자선 및 사회 공헌 활동들에 대해서는 깊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텔은 '바비' PR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여성들의 사회적 성공과 비전의 실현을 지원하고 있는 다양한 조직들도 조사했다. 미국 걸스카웃 협회, 걸스 인코포레이티드 (Girls Incorporated), 걸스 파워(Girls Power)등과 같은 여성 조직들이 바비의 이미지 재 포지셔닝 프로그램에 관심을 나타내는 곳들이었다.

 

마텔은 바비 탄생 40주년을 맞아 바비가 '소녀들의 꿈을 키워주는 가치를 제공한다'는 이미지를 특별히 부각시키는 야심찬 MPR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바비 이미지인 "예쁘기만 한 수동적, 의존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목표지향적이며 지적이고 다정다감한' 바비상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바비가 제공하는 핵심메시지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Be Anything)"로 소녀들에게 미래에 대한 용기를 심어주는 의미였다. 목표공중으로는 여성 전체로 현재 또는 미래에 엄마가 될 모든 여성이 주요 대상이었고 물론 언론 매체들도 포함되었다.

 

먼저 마텔은 당시 소녀들에게 "강하고, 현명하며, 용감하라"는 메시지를 제공하면서 활발하게 여성운동을 실행하고 있는 조직인 걸스(Girls. Inc)와 전략적인 제휴를 맺었다. 이 조직과 마텔은 10명의 유명 여성으로 구성된 '꿈의 바비 대사(Barbie Ambassadors of Dreams)'들을 조직했다. 이 대사들은 로시 오도넬과 같은 유명 여성 앵커로부터 과학자인 카트리나 가넷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맹렬 여성들이었다.

 

1999년 1월 1일 마텔의 CEO인 질 바라드는 1999년 한해를 바비 브랜드 테마의 해로 정했다. 뉴욕 장난감 박람회에서 마텔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Be Anything)"는 바비의 새로운 브랜드 테마를 발표하면서 걸스(Girls. Inc)에게 여성 교육 활동을 위해 사용하라며 150만불을 기부했다. 또한 '꿈의 바비 대사들'로 뽑힌 유명 인사들을 발표하여 바비를 소녀들의 미래를 가꾸어 줄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하는 인형으로서 포지셔닝했다. 행사의 프레스킷에서 마텔은 바비가 여성의 사회적인 역할을 대변하고 있다는 취지로 당시까지 40년간 바비 인형이 대표 했었던 약 75종의 다양한 직업군들을 보여주었다.

 

바비의 실제 탄생일인 3월 9일 마텔은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대형 생일 파티를 개최했다. 바비의 이미지를 비즈니스적 성공과 연계 시키는 전략이었다. 마텔은 월스트리트를 하루동안 '핑크' 빛으로 물들였다. 거리 도로와 벽에 분홍색 커튼과 카펫으로 도배를 했던 것이다.

 

증시 장의 A개장과 폐장을 알리는 벨 데스크에 분홍색 생일 축하 케익을 올려 놓았다. 개장 버튼을 누르기 위해 바비 인형의 창시자인 당시 84세의 루스 핸들러 여사가 단상에 올랐다. 개장 버튼을 누른 후 핸들러 여사는 분홍 케익 위에 켜진 40개의 촛불을 불어 껐다.

 

마텔은 뉴욕증권거래소 행사를 마친 후 바로 걸스 (Girls. Inc)와 함께 "파워 브랙퍼스트" 이벤트를 시작했다. 약 30여명의 비즈니스 우먼들을 초청해 아침식사와 함께 이벤트에 참여한 소녀들과 여성들에게 예산 구성 방법, 재무 상식 및 비즈니스 커리어 관리등과 같은 교육을 실시했다.

 

이날 오후에는 루스 핸들러 여사가 뉴욕의 초대형 완구 배장인 FAO 슈워츠에서 생일 축하 케익의 촛불을 끄는 행사가 있었다. 바비의 살아있는 어머니로 불리는 핸들러 여사는 약 800여개의 수집용 바비인형에 직접 서명을 해 바비 팬들에게 선물했다.

 

마텔은 1999년 일년 내내 걸스(Girls, Inc)와 함께 꿈의 바비 대사들에 대한 언론홍보와 더 나아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실시 해 나갔다. 또한 "일하는 여성 바비' 인형을 제작 판매하기도 했다.

마텔은 이러한 일련의 MPR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완벽한 실행을 위해 마텔의 모든 임원들을 대상으로 언론훈련을 실행했다. 또한 루스 핸들러 여사를 세계에서 가장 큰 완구 제조사인 마텔을 창시한 인물로 적극 노출 시켜 메시지 전달에 활용했다.

 

마텔은 1999년 내낸 여러 여성 단체들과 소녀들의 엄마들로부터 수많은 감사편지를 받았다. 그 내용들은 거의 모두 "바비가 소녀들과 여성들을 위해 보여준 비전에 동감하고 마텔에 감사한다'는 내용이었다. 약 70%의 언론 매체들이 바비 MPR 프로그램의 핵심 메시지들을 정확하게 전달했으며, 약 50%의 언론매체들로부터 '바비가 소녀들에게 영감을 주는 모델'로 치하 받았다.

 

바비의 이 프로그램은 미국 외에도 총 25개 국가에서 기사화 되었다.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Times, USA Today, The Hollywood Reporter 등과 CNN에서도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았다. 199년 1년간 약 1700여 개의 바비 관련 기사들이 다양한 매체들에서 게재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하나의 제품을 문화적인 상징으로 포지셔닝하는 데 성공한 사례다. 기존의 냉소적인 공중들의 바비에 대한 이미지를 마텔은 공격적인 MPR을 통해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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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자상거래(e-commerce)라는 말은 미국에서도 낯선 단어 중 하나였다. 지금은 일반화 된 '커뮤니티'라는 의미도 당시는 이웃이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정도로서의 의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반스앤노블 같이 대형 서적 판매 회사가 점차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 업체들에게 도전을 받고 있던 당시만 해도, 주요 소비재 회사들은 선뜻 온라인 사업에 나서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조금만 두고 보자 하는 생각으로 누가 먼저 나서 온라인의 힘을 한번 검증해 주었으면 하는 분위기였다.

 

청바지 리바이스는 90년대 후반 언론으로부터 이미 "한물간" 브랜드로 취급 받고 있었다. 최대 고객층인 10대들도 리바이스를 '고리타분'해 했다. 역사를 자랑하며 노후된 이미지의 리바이스에게는 10대들을 열광하게 할 그 무엇이 절실히 필요했고, 그 도구는 곧 인터넷이었다.




리바이스 청바지 회사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세계적인 PR 회사인 켓첨과 야심찬 온라인 이벤트를 계획했다. 10대들 중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당시 전자상거래는 초기 상태인데 비해 대학생들의 인터넷 사용시간은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그들의 온라인 구매 경험 또한 약간씩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이러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마침내 '리바이스 온라인 챌린지'라는 이벤트를 발표했다. 이 이벤트는 인터넷과 전자상거래에 익숙한 대학생 3명을 선발해 한학기 약 20주동안 리바이스 스트라우스측에서 용돈을 제공하고, 그 용돈으로 인터넷상에서 온라인 구매를 통해 모든 생활을 해결 하는 서바이벌류의 MPR 이벤트였다. 단 그들은 이 이벤트에 참가하면서 가끔 리바이스의 제품들을 구입하고 평가 해야 했다.

 

 

 

각종 언론에서는 "어떻게 사람이 온라인에서 생활을 할 수 있을까?'하면서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 여세를 몰아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전국적으로 대학이 군집해있는 29개 도시를 대상으로 리바이스의 온라인 이벤트에 참여할 대학생을 모집했다. 모집 개시 일주일 만에 약 500여명의 대학생들이 지원을 했다.

 

지원자들의 인터넷 활용 능력과 전자상거래 경험 등을 다방면으로 심사한 후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3명의 대학생을 이벤트 참가자로 선정했다. 이들은 선발 직후부터 전국 언론 매체의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은 언론사 기자들을 몰고 다니며 리바이스 스트라우스의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벤트 참가를 위한 3일간의 특별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리바이스 온라인 챌린지 프로그램이 시작되자 이들은 자신이 생활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온라인으로만 구입하면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리바이 스트라우스의 온라인 스토어 사이트인 Levi.com내에는 이들 세 명의 홈페이지가 만들어졌고, 각각의 홈페이지에 그들이 구입한 물건들과 매일매일의 일기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속속 게시되기 시작했다. 평범했던 3명의 대학생들이 사이버상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수많은 팬들이 프로그램 참가 대학생들 각자의 홈페이지에 접속 하기 시작했고, 3명의 대학생들이 온라인 구매를 통해 소비하는 제품들을 따라 구매하기 시작했다. 또한 팬들의 관심사는 '과연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 남아 승자가 될 것인가?'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쯤 되어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아예 일주일에 한번씩 이 3명 대학생들의 일상생활을 생방송으로 보여주는 온라인 방송을 시작했다. 20주동안 매주 한번 Levi.com 사이트를 통해 3명의 대학생들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사이트 방문자들과 팬들의 대화방을 운영했다. 그들이 온라인상에서 구하지 못한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 정보를 제공하는 팬들까지 생길 정도였다.

 

프로그램이 막바지에 다다를 때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Levi.com에 접속하는 방문자 1인 당 1달러씩을 에이즈 퇴치기금으로 조성하여 관련 모임에 기부하는 자선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다시 한번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본 프로그램을 주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로서 '한물간' 브랜드였던 리바이스는 10대들이 열광하는 브랜드로 다시 자리잡게 되었다. 온라인 이벤트를 시행하기 전 Levi.com의 하루 방문객 수는 3천명 정도였다. 그러나 이벤트 실시 후에는 매일 13만 명의 10대들이 사이트를 들락거리게 되었다. 20주간의 이벤트 기간동안 Levi.com 사이트에는 총 1억 명 이상의 방문객 수를 기록했다.

 

또한 오프라인상에서도 CNN, USA Today, The New York Times, The Wall Street Journal 인터넷 판, Women's Wear Daily, Investor's Business Daily, The Industry Standard, Promo Magazine, Forbes Magazine, MSNBC.com 등과 40 여 개 이상의 방송사들과 신문 및 라디오들이 트렌드 기사로 리바이스 온라인 챌린지 이벤트를 크게 다루었다.

 

이후 이 프로그램은 MSN이나 USA 투데이 같은 '젊은 고객'을 지향하는 회사들에 의해 재현되기도 했을 정도로 성공한 MPR 프로그램이었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도입되어 초기 전자상거래 시장에 관한 붐을 조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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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회사인 맥스웰 하우스는 지난 100년동안 '한방물까지 좋다" 또는 "미국의 커피"로서 건실한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브랜드 포지셔닝 전략은 1996년 커다란 위협을 받게 되었다. 특정지역에 기반을 둔 원두커피와 개인 브랜드들이 늘어나면서 지방 곳곳에 특유의 커피점들이 속속 들어섰다.

 

이런 상황속에서 맥스웰 하우스는 자체 프랜차이즈를 보호하기 위해서 PR대행사인 케첨(Ketchum)을 고용하여 통합적인 마케팅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는 맥스웰 하우스가 지역사회 지향적이면서 소비자에 관심을 갖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하며, 그리하여 구매의지를 형성하고,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케첨은 가치를 공유하는 사회공헌적인 활동들이 맥스웰 하우스 브랜드에 활력을 불어 넣어 소비자들의 구매의욕을 자극해서 최종적으로 판매를 촉진할 것이라 판단했다. 리서치 결과가 이와 같은 주제를 입증해주었다.

 

1997년 콘/로퍼 레포드(Cone/Roper Repod)의 조사결과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고객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브랜드 충성도를 공고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1996년 로퍼 스타키(Roper Starch)의 연구는 소비자 세명 중 두명이 상표를 선택할 때 기업시민정신을 고려한다고 결론지었다.

 

중요한 조사 결과로 첫째 신뢰도는 일반대중 이벤트를 통해 가시화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소비자들은 영향력이 가시적이고 지역 색채를 띌 때 반응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통합적 마케팅이 소비자 도달과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기반으로 판매 형성과 정서적 연결을 위한 빈곤퇴치운동 같은 모델 프로그램들이 검토되었다.

 

문헌과 브랜드 자산에 대한 연구들을 통해 그 결과가 적절한 파트너쉽의 이미지 구현하는데 사용되었다. 맥스웰 하우스가 내쉬빌에서 유래된 오랜 유산과 수세기에 걸친 전통적 미국과 가족, 가정에 대한 지속적인 기여들로 이미지 분석되었다.

 

케첨은 14개의 전국적인 자선단체와 비영리 단체에 대해 조사했으며 이로써 맥스웰 하우스와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적극 활동하고 있는 헤비타트 사랑의 집 짓기 운동(Habitat운동)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역시 남부에서 시작된 사랑의 집 짓기 운동은 지역사회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서 곤경에 처해있는 가족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운동이었다.

 

파트너쉽은 미국인 가족들이 자신의 집을 소유할 수 있는 꿈을 현실화하도록 도와줌으로써 미국 가정의 생활이 현저히 달라지게 만들었으며 그것이 바로 진정한 맥스웰 하우스의 가치이기도 했다.

 

경쟁 시장 분석과 리서치 결과들을 통해 세가지 목표를 설정하 였다. 첫째, 소비자들로 하여금 맥스웰 하우스가 남을 보살피며 지역사회 지향적인 브랜드라는 인식을 획득하는 것. 둘째, 구매 의지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브랜드 가시도를 제고하는 것. 셋째,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본 PR 캠페인의 목표공중은 미국 전역의 25세에서 54세까지의 저학력과 저소득층의 커피음용자로 정했다.

 

캠페인 전략은 첫째, 소비자들을 움직여 내고장사랑 정신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계할 것. 둘째, 언론매체에 적절하면서 지속적인 뉴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범국가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셋째, PR과 광고, 마케팅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맥스웰 하우스 브랜드 관리를 위해 책정된 예산 범위내에서 집 짓기 운동의 사명에 충실하는 것이 도전적인 요소였다. 맥스웰 하우스는 집 짓기 운동이 100채의 집을 짓는데 필요한 2백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 통합커뮤니케이션 캠페인을 위해 수백만 달러가 집행되었다.

 

케첨은 "미국의 집 짓기"(BUILD A HOME AMERICA, BAHA)라는 캠페인 개념을 창안해냈다. 이는 사회공헌 마케팅 프로그램으로 100주간 안에 100가족과 함께 100채의 집을 짓기 시작하는 것이다. 소비자들과 관련업계, 언론매체에게 적극 호소할 수 있는 목적 지향적인 노력을 다한다는 것이었다.

 

집 짓기 행사는 맥스웰 하우스를 미국인 가족의 생활 속에서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 되는 상표로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여러 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에 의한 수백시간의 노동으로 고귀한 땀을 흘려 집들이 지어졌다.

 

케첨은 일반 국민들이 주도적으로 자원 봉사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게 기획했으며 맥스웰 하우스가 기부한 금액과 같은 규모의 2백만 달러의 자금을 조성하도록 했다. 그래서 집 짓기 운동의 기금은 4백만 달러로 증가했다. 전국적으로 소비자들은 집 짓기 행사 수신자 부담 무료전화에 통화하면서 자신의 시간이나 특기와 자원들을 자발적으로 제공하도록 했다.

 

케첨은 전략적으로 37개 도시에 사랑의 집 짓기 운동 투어를 기획했다. 이 곳들은 사랑의 집 짓기 운동 지부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맥스웰 하우스의 핵심적인 판매시장으로 겨냥하는 곳이었다. 덧붙여서, 맥스웰 하우스 소비자들의 8%에 달하는 스페인(히스패닉)계의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케첨은 영어와 서반아어를 구사할 수 있는 대변인을 훈련시켰고, 스페인어 언론자료들을 적절하게 작성해서, 맥스웰 하우스의 핵심시장에서 히스패닉계의 언론매체를 목표로 했다.

 

1997년 7월 8일에 맥스웰 하우스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본부와 공동으로 행사의 야심찬 전국적인 집 짓기 운동을 공표했다.

 

PR대행사인 케첨과 광고대행사인 오길비앤마더(Ogilvy & Mather)는 소비자들에 대한 도달과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각각 유사한 언론매체를 접촉했다. 인간미 넘치는 내용을 담은 기획기사 소재, 사랑의 집 짓기 운동이 이뤄지는 지역지도, 혜택을 입은 가족들의 인적사항과 사진들이 전국적으로 인쇄매체와 방송매체의 기자들에게 배포되었다.

 

언론의 관심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사랑의 집 짓기 운동이 37개 도시의 각각에서 지역사회 행사와 연계가 되고, AP통신사 기자들도 초청되었고, 집 짓기 행사를 각 지방별 맥스웰 하우스 판촉활동과 라디오 스케줄에 맞추었다.

 

가장 감동적인 축하행사는 새로운 집의 첫 번째 담벽을 세우는 의식이었다. 이때는 집을 소유하게 된 가족들과 집 짓기 행사 자원 봉사자들, 사랑의 집 짓기 운동 대표들, 지역 맥스웰 하우스 담당자, 지역정부 공무원들이 참석했다.

 

핵심 판매시장에서 다양한 특별 행사들이 언론의 관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연출되었다. 남서부 지방의 무더운 여름의 열기를 피하기 위해서 전격적으로 12시간 동안 야간작업을 실시한다 던가, 여성들만 참여하여 집을 짓는 다거나 맥스웰 하우스의 공장 근로자들이 집 짓기를 한 것이 대표적인 행사들이었다.

 

마지막 세 채의 사랑의 집 완성을 위해서 다른 97채 집을 소유한 가족들의 대표들이 각지에서 비행기로 로스엔젤레스에 날라 와서 98번째 집과 99번째 집, 마지막 100번째 집을 완성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마지막으로 100번째 집이 완성되면서 모든 참가자들은 사랑의 집 짓기 운동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을 축하했다.

 

2년 동안의 캠페인 동안에 케첨의 자료제공을 통해 오길비앤마더가 제작한 4개의 감동적인 전국용 TV광고는 집 짓기 운동의 정신을 폭 넓게 전달했다. TV 광고는 사랑의 집 짓기 운동 초기에는 자원 봉사자들로부터 시작해서 후반기에는 집을 갖게 된 가족들의 인물묘사로 전개되었다.

 

집 짓기 행사는 전국을 여행하는 맥스웰 하우스 상표가 있는 두개의 이동카페에 의해 더욱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이동카페는 식료품 소매점을 찾아 다니며, 집 짓기 행사장에서 자원 봉사자들이 마실 수 있는 커피를 제공했다. 이동카페는 무료로 맥스웰 하우스 커피를 제공하고, 할인쿠폰과 제품 견본을 나누어주었다.

 

또한 이동카페는 사랑의 집 짓기 운동 관련 자료를 배포하고, 감동적인 비디오를 상영하면서 사랑의 집 짓기 운동을 위한 정보센터로서의 역할도 담당했다. 맥스웰 하우스 판매 담당자들은 식료품 소매점주들을 집 짓기 행사에 참여하도록 초청하고 사랑의 집 짓기 운동 시 먹을 음식을 기증하게 하고, 집 짓기 행사를 알리고 직통전화 번호도 알려주었다.

 

모든 내부와 외부의 마케팅 채널은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에 대한 맥스웰 하우스의 투자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활용되어졌다. 프로그램들은 공공서비스정보(PSAs), 인터넷 웹사이트, 일간지에 끼워 넣은 광고지, 소매점 쿠폰, TV와 인쇄매체 광고, 라디오 판촉활동, 퍼블리시티(publicity), 판촉물과 내부직원 커뮤니케이션 등이었다. 또한 집 짓기 운동과 수신자부담 무료전화에 대한 정보가 맥스웰 하우스의 모든 커피 캔에 부착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