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PR'에 해당되는 글 65건

  1. 2008년 10월 31일 9. 나의 PR이야기 (1)
  2. 2008년 10월 31일 8. PR주변이야기 (3)
  3. 2008년 10월 31일 7. 언론과 윤리
  4. 2008년 10월 31일 6. PR이렇게 해야한다.
  5. 2008년 10월 30일 5. 위기관리 PR
  6. 2008년 10월 30일 4. 한국형 커뮤니케이션의 4개 모델
  7. 2008년 10월 30일 3. PR현장 24시 이야기
  8. 2008년 10월 30일 2. 돈벌어 주는 PR이야기(MPR)
  9. 2008년 10월 30일 1. PR의 핵심은 전략적 사고(Strategic Thinking)
  10. 2008년 03월 10일 PR 최고의 가치는 진실
  11. 2008년 03월 10일 Editorial : 사설? or 기사?
  12. 2008년 03월 10일 종이한장 차이로 생과 사가 교차
  13. 2008년 03월 06일 확대되는 PR 영역, 변화하는 PR인의 자세
  14. 2008년 03월 06일 ACX 테크놀로지사의 성공적인 IR활동
  15. 2008년 03월 06일 쿠어스맥주사의 소비자관계 PR :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쿠어스 왕국
  16. 2008년 03월 06일 웨스트 플로리다 대학의 안전을 위한 내부 커뮤니케이션 “Just 2 It
  17. 2008년 03월 06일 미국 부시 부통령과 CBS 앵커맨 댄 레이더의 한판 승부
  18. 2008년 03월 06일 독수리 보호에 나선 조지아 퍼시픽사
  19. 2008년 03월 06일 영국 유노칼사의 위기상황에서의 언론대응
  20. 2008년 03월 06일 페리어(Perrier), 전 세계에 걸친 리콜 단행
  21. 2008년 03월 06일 쿠어스 맥주캔 속에서 생쥐가 튀어나오다
  22. 2008년 03월 06일 클린턴 대통령의 의료제도개혁안 : 무엇이 실패의 원인이었던가?
  23. 2008년 03월 06일 평범한 것에 PR의 진리가 있다
  24. 2008년 03월 06일 미국PR협회 공인 자격증(APR)에 도전하다
  25. 2008년 03월 06일 세계 최고급 스위스 시계를 사세요
  26. 2008년 03월 06일 스포츠 마케팅을 배운 서울 올림픽
  27. 2008년 03월 06일 “전 사원을 PR인으로”
  28. 2008년 03월 06일 실수를 털어놓은 뉴욕타임즈 발행인
  29. 2008년 03월 06일 동경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광란의 도가파티
  30. 2008년 03월 06일 관광 PR의 진수

9. 나의 PR이야기

2008년 10월 31일 11시 23분

 운명을 바꾼 한 순간의 만남으로 기자에서 PR인으로! 

내가 1987년 1월 초 동경에 상주하면서 한국에 자주 들리는 한 외신기자에게 한국의 정치, 경제 상황에 대해서 브리핑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서울의 한 호텔에서 저녁자리를 같이 하게 됐다. 비즈니스 코리아 발행인 겸 편집인 시절이었으며 동경에 상주하는 그 특파원은 로이터 통신 특파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다. 

약 2시간 정도 한국의 정치, 경제 상황에 대해서 나의 견해를 얘기해주고 막 일어서려고 하는데 그 외국인 친구가 맥주 한잔만 더 하러 가자는 것이다. 날씨도 비가 와 술 한잔 생각이 나서 가까운 생맥주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그 친구가 말하기를 "PR업에 손대보라. 일본은 PR산업이 크게 발전해있지 않으나 미국을 보면 앞으로 동양에서 크게 잠재력이 있는 것이 PR산업이다. 당신은 정부측에서 친한 사람도 많고, 경제계에도 친한 사람이 많고 또 동료 기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으니 PR분야를 개척하기에 한국에서 최적의 인물이다." 느닷없이 속사포처럼 던지는 말이기에 밤중에 홍두깨로 한방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곧이어 그 친구의 미국 PR산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뒤따랐고 세계적인 주요 PR회사는 어떤 것이 있으며 당시 한국과 관계를 맺고 있는 힐앤놀튼에 대해서 설명해주면서 현재 큰 광고대행사 중의 하나와 업무 제휴를 맺고 있으나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동경에서 들었다는 얘기까지 덧붙였다. 사실 나는 그때 힐앤놀튼의 이름을 처음 들었으며 PR에 관한 이해를 깊게 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개의 다른 채널을 통해서 PR산업의 현황에 대해 자료도 수집하고 국제적인 동향도 파악하게 됐으며 아직은 시기적으로 완전히 성숙하지는 않았지만 이 분야에 선구자가 되어 이쪽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서둘러 투자를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1987년 여름 홍콩의 힐앤놀튼 아시아 태평양 지역 사장과 시간 약속을 하고서 홍콩을 방면했다. 

사실 PR경험은 전혀 없이 단순한 언론계 경험과 어느 정도 완전한 영어를 구사하면서 그들과 잘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능력만 갖고서 호랑이 굴에 뛰어든 것이다. 약 세 시간 수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솔직히 PR에 대한 깊은 지식이 전혀 없었고 실무 경험도 없었기에 그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 하나 한 것이 없었다. 다만 솔직하게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으나 언론계, 정부 및 경제계에 폭넓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 주고 국제적으로 비지니스 하는 관행은 철저히 이해하고 있으니 앞으로 잠재력을 인정해서 힐앤놀튼과 업무 제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얘기했다. 묵묵히 듣고만 있어 그들이 그 세 시간의 만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격식을 갖춰서 외교적으로 곧 자기들의 입장을 정리해서 연락하겠다는 말만 듣고 힐앤놀튼 홍콩 사무실을 떠났다. 초조하게 그들의 답신을 기다렸다. 

약 2주일이 되는 어느 날 국제 전화가 걸려왔다. 잠재력을 인정해서 당신 회사와 업무 제휴를 할 테니 최선을 다해 일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날부터 12년이 넘는 세월 동안 힐앤놀튼의 한국 내 독점 업무 제휴사로서 수많은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그들과 일하는 동안 책에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우고 서서히 PR전문가로서 자리를 잡게 됐다. 

그간 국내에서 수많은 외부 강의 요청을 받고서 언론계의 산 경험을 곁들여 PR실무를 얘기하면 가장 도움이 되는 강사로 자리를 잡게 됐고 외국의 PR지침을 한국 실정에 맞게 변형하기도 했으며, 특히 위기관리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히 깊이 있는 발표도 하여 우리 기업들이 21세기 위기 관리에 철저히 대비할 수 있게 방향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제2대, 제3대 한국PR협회 회장직을 맡았을 때는 한국 최초의 PR교실도 만들어 업계와 학계가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장도 마련하게 된 것을 지금도 큰 보람으로 알고 있으며, PR일을 하면서 느낀 진한 경험들을 후진들을 위해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 곰곰히 생각해 보면 1987년 초 한 외국인 친구와의 짧은 대화가 나의 인생 진로를 크게 바꾸어 놓은 셈이다. 매 순간마다 진지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미국 협회의 APR인증에 도전

나이 오십이 넘으면 욕심을 내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PR업계에 몸 담으면서 꼭 하나 욕심 나는 것이 있었으니 미국PR협회(Public Relations Society of America ; PRSA)의 APR(Accredited in Public Relations)인증서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 미국PR협회의 회원으로 PR 관련 자료를 받아오면서 한국 PR산업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미국PR협회의 전문성을 배워야 하며 그것을 배울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APR 인증을 획득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험이 하루종일 치러지며 문제의 수준도 아주 높아 영어로 완벽하게 다 답해야 합격한다고 하니 겁부터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강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또 세계 최대의 PR대행사인 힐 앤 놀턴의 전문가들과 10년 이상 같이 일했으니 나 같은 사람이 합격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합격한단 말인가 하고 자만심을 갖고 첫 시험에 대비하였다. 

1997년 3월 뉴욕에서의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약 2개월 전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험 준비에 꼭 필요한 "Accreditation Sourcebook"과 "PRSA Accreditation Study Guide" 책 두 권을 구입은 해놓았으나 자만심으로 차 있었고 또 회사 내적으로 경쟁 프리젠테이션이 많아 제대로 공부하지도 못하고 미국에 갔다. 필기 시험 하루 전날에 APR 인증을 취득한 3명의 미국인 심사위원이 약 두 시간 동안 구두 시험을 실시했다. PR의 다양한 케이스를 얘기하면서 관련 질문을 했고 단답형 질문과 PR 현장에서 느낀 다양한 경험담을 털어놓게 유도하였다.  

두 시간 동안의 구두시험은 자신 있게 치르고, 오랜만에 미국에 있는 처형과 처남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에 같이 온 집사람에게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다양한 필기 시험을 치렀다. 앞에서 언급한 두 권의 책을 샅샅이 훑어 보지 않고서는 대답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상당히 많이 출제되었고, 특히 윤리와 관련된 문제는 전체 필기 시험 문제의 약 30%를 차지하였다고 기억된다. 이처럼 PR이 하나의 산업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강조되며 전문성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윤리적인 측면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3월에 시험을 치르고 7월 중순에 시험 결과가 도착하는데, APR 인증을 얻게 되면 집으로 결과를 통보하는 우편물의 이름 뒤에 APR이라는 표시가 있을 것이고 불합격하면 APR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사전에 안내해주었기에 7월 중순부터 이름 뒤에 APR이 있기를 기원하면서 우편물 오기를 학수고대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친구들과 어울려 술 한잔을 하고 늦게 귀가하였는데 아내가 PRSA에서 온 봉투 하나를 내미는데 거기에는 Mr. Kim Kyong-Hae 뒤에 APR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사무 착오일 것이라 생각하고 봉투를 열어보고는 합격선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참 흥분된 마음을 가누지 못하다가 공부하지 않고 자만심으로 가득찬 결과라고 생각하고 1년 후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단, 구두시험은 합격했으니 다음 시험에서는 필기 시험만 합격하면 된다는 내용도 편지에 잘 설명되어 있어 1년간 철저히 준비해야 겠다고 결심하였다.

1997년 8월부터 1998년 3월까지 약 6개월간 책 두 권을 거의 완벽하게 마스터하고 필기 시험중 오후 시간에 치르는 논문식 사례분석(Case Study)도 철저하게 준비한 후 시험을 치렀다. 1998년부터 시험을 치르기 위해 미국에 가지 않고 한국에서 치르게 되어 아주 편리했으며 시간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1998년 시험에서도 역시 윤리와 관련된 문제가 많이 다루어졌으며, 오후 시간에 치르는 PR사례 관련 응용 문제는 더욱 더 복합적이고 광범위하였다. 1998년 7월 드디어 한국에서 세번째로 APR 인증을 얻게 되었다. APR 인증을 획득한 그날 나이 50이 넘어서 새벽 2-3시까지 공부하면서 쌓인 모든 피로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고 이 APR 인증으로 한국 PR 업계 발전에 더욱 더 크게 기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처음 미국에서 APR에 도전했을 때 옆에서 같이 시험 친 36살 된 미국인 친구는 컴퓨터 회사의 PR부서에서 근무하는데 APR 인증을 획득하면 회사에서 30%의 급료를 인상해준다고 해서 APR시험을 치르게 되었다고 아주 실용적인 배경을 얘기해 주었다. 

현재 국내에서 PR업을 지망하거나, PR업에 종사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APR 도전을 권유하고 싶다. 우리의 PR산업도 이제 하나의 전문 산업으로 정착되어가고 있는 이때 전문성과 윤리성이 제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APR 인증을 받는 젊은 인재들이 더욱 더 많이 나오게 되면 PR산업은 더욱 더 빨리 발전하게 되며 21세기의 최고 인기 있는 분야가 될 것이다. 21세기에는 APR 인증을 받은 젊은 인재가 상당히 우대 받는 시대가 오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자사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최대의 목적인 방어적인 PR(defensive PR)관행에서 벗어나 광고업무는 외부 광고대행사에게 맡기듯이,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PR업무를 수행하기보다는 외부 전문 PR대행사에게 용역을 주게 되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지금현재 프로젝트 별로는 PR회사의 서비스를 받고 있다. 21세기는 전문가의 시대다. APR은 PR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상징하기에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한국 최초의 영문경제지 '비지니스 코리아' 

1983년 한국에 영문 경제지가 전무한 상황에서 최초의 월간 영문 경제잡지 비즈니스 코리아(Business Korea)를 창간하기로 마음먹었다. 대학 시절부터 영자신문 편집국장 일을 해온 것에 언론사 경험도 있기에 자신있게 시도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때 많은 관련 인사들이 한국에서도 이제야말로 국제적 수준의 영문 전문 경제지가 탄생했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모두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의 경제 상황을 정확히 알릴 수 있는 영문 경제지를 자랑스러워했다. 사실 국내 상황을 전세계에 신속히 알리는 일은 국가홍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이는 신속하고 정확한 국내외 뉴스를 전하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번은 미국의 무역규제가 한창이던 그 시절 미국국제무역위원회(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ITC) 대표와의 인터뷰를 성사시켜 미국의 정확한 입장을 알리는 기사를 낸 적이 있다. 이는 곧 국내 주요 일간지에 기사화되었는데, 비즈니스 코리아에서 다루는 기사내용의 질과 그 신속성을 보여주는 예이다.  

비즈니스 코리아의 또하나의 강점은 아무래도 최신의 광고마케팅이다. 외국 매체의 광고 세일즈를 대행하는 미디어 랩(Media Representative) 업체를 전 세계에 걸쳐 지정 계약한 것이다. 전 세계로부터 들어오는 광고 덕분에 창간 후 3개월부터 흑자가 나기 시작했다. 낙후를 면하지 못하던 한국 잡지업계에 하나의 “기적”이었다.  

나의 광고 수주 전략은 “광고를 숫자로 팔았다” 데 있다. 비즈니스 코리아에 광고를 게재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이득이 있는가를 아주 숫자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광고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는 심도있는 독자층 분석을 통해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개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국제전선 사장은 흔쾌히 1년 광고를 약속하기도 했다.“김 사장, 창간 1년간이 가장 어려우니 내가 힘이 되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세요.” 지금도 내 귓전을 울리는 그 음성은 힘이 들 때마다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이러한 도움들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회사에 침대를 하나 마련했다 오해를 받기도 했다. 집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지만 야전사령관이 되지 않고서는 바쁘게 돌아가는 새로 시작한 사업을 감당해낼 수 없었다. 밤새워 영문기사 쓰고, 교정보고 하던 일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일이 좋아서, 너무나 좋아서가 아니라면 해낼 수 없었던 일들이다. 핏속에 흐르는 피보다 진한 인쇄잉크 때문에 내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아니 내가 기꺼이 받아들인 운명이었다. 난 일이 곧 내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만난 잊지 못할 얼굴들이 있다. 현 CNN 손지애 지국장과 이병종 뉴스위크 특파원이다. 이 둘은 비즈니스 코리아의 창간 초창기에 가장 성실한 기자였다. 비즈니스 코리아 기사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이 두 사람은 결국 사내결혼을 했다. 지금은 뉴스위크 주한 특파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병종 씨는 한편으로는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출강하면서 PR을 강의중인데 매사에 열심이다. 언론과 PR은 어쩔 수 없는 이웃사촌이다. 손지애 특파원은 당시 고등학교만 나왔어도 나이가 1살만 더 많으면 ‘언니’ 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해주었다. “앞으로 큰 일을 할 사람”이라는 평을 받았었는데 CNN의 한국 지국장으로 일은 당차게 하면서도 늘 겸손한 그녀를 보면 기분이 좋다. 외국에 출장 가서 CNN을 틀면 한국 뉴스가 나올 때 “CNN 손지애 Seoul"라는 말을 들으면 언제나 자랑스럽다. 요즘도 가끔 찾아와 옛날 얘기를 하면서 “아 옛날이여(good old days)"에 대해 읊조리곤 한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한 이들이라 허물없고 더욱이 힘이 된다. 손지애 국장은 최근에는 서울 외신기자클럽회장의 중책도 맡게 되어 그의 영역이 더욱 더 넓어지고 있다. 최근 손지애 국장은 외신기자 클럽 활동의 활성화 방안으로 기업이나 정부의 주요인사들을 초청하여 외신기자들에게 정보를 활발히 전해주는 장을 마련하고 있어 더욱 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비즈니스 코리아와 함께 빼놓지 말고 언급해야 할 사람이 있다. 락스미 나까미 편집국장이다. 네팔인으로서 한국의 경제전문가보다 한국 경제의 흐름에 정통한 기자였던 그는 광고를 매개로 나를 방문하여 알게 된 네팔의 “천재” 언론인이다. 한국 경제의 흐름에 관해서라면 그의 머릿속에는 모든 숫자가 다 들어있어 특급 정보를 기사로 쓰는데 특히 대우의 김우중 회장이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던 기자였다. 비즈니스 코리아의 기자 생활에서 쌓인 노하우를 오랜 기간 동안 세계 최고의 경제잡지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의 한국 특파원으로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최근 아시아 위크(Asiaweek)의 주한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 역시 이화여대출신의 여기자와 사내결혼하여 행복한 한국식 보금자리를 꾸미고 있다. 강한 자기 주장과 신념으로 한층 더 수준 높은 책을 만들어 보겠다고 불철주야 노력해준 그에게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는 현재 국내 비즈니스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피트 엥가디오. 그는 저널리즘의 명문대학인 미주리 대학교의 저널리즘 스쿨 출신으로 코리아 헤럴드에서 일하다 비즈니스 코리아로 옮겨서 탐사기사(investigative reporting)를 많이 썼다. 국방부의 무기도입과 관련된 오프센 프로그램( offset program)에 관해 탐사기사를 쓰다 보안사의 감시도 받고, 나도 편집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상당한 조사를 받았으나 미국인 기자에게 그 뒷이야기를 다 말해주지는 못했다. 기자로서 한국 보안사가 언론활동에 간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좋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은 비즈니스 위크의 아시아 총괄담당 중견 언론인이 되어있는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연락해 맥주라도 한잔 하곤 한다. 힘들었지만 보람있었던 시절을 음미하면서.  

 

김경해의 장학생이 아니면 외신기자 아니다’ 

‘김경해의 장학생이 아니면 외신기자 아니다.’ 이 말은 외신기자 사회에서 돌아다니던 얘기다. UPI, AFP, 로이타 통신, 이코노미스트(Economist), CNN, 뉴스위크(Newsweek), 아시아위크(Asiaweek),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등 상당수의 외신기자들이 모두 비즈니스 코리아 출신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PR 일을 하면서 외신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Communications Korea)는 외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 단적인 예로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가 주관하는 행사는 항상 가장 많은 기자들로 북적대곤 하였다. 그 모두가 비즈니스 코리아를 발행하면서 얻은 큰 자산이었다. 또 그들로부터 얻은 생생한 정보는 PR비즈니스를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곤 했다. 외국 클라이언트(client)들로부터 ‘김 사장을 만나면 항상 알찬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 모두가 비즈니스 코리아의 옛 동료들에게서 얻은 정보라는 것을 나는 꼭 밝히곤 한다.  

나의 오랜 친구들은 가끔씩 사업 정보도 알려준다. 외신기자들은 어느 기업이 한국에 진출한다는 등 최신의 업계정보를 제일 먼저 접하기에 정보를 얻게 되면 그들 스스로 생각하는 ‘친정’에 알려줘서 사업상 큰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다. 지금도 그들이 한국 외신기자 사회의 주류로 훌륭한 언론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비즈니스 코리아 창간의 보람을 새삼스레 느끼곤 한다. 지금 비즈니스 코리아는 박정환 사장이 양도하여 잘 운영하고 있으며, 나는 PR인으로서 길에 매진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만을 운영하고 있다. 아무튼 옛 친구들은 손에 익은 악기나 오래된 포도주처럼 익숙하면서 한편으로 반갑고 흐믓하며 나름대로의 멋이 있어 난 그들과의 만남을 무엇보다도 즐긴다.

 

한국PR협회의 탄생과 PR교실 

국내 PR산업의 신장은 대개 PR전문회사들이 선진 대형 PR회사와의 업무제휴를 통해 최신의 PR기법을 도입하여 PR의 업무영역을 넓혀가고 있는데다, 몇몇 외국회사들은 직접 한국에 진출하여 활발한 PR서비스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서 엿볼 수 있다. 이에 한국 PR의 발전을 도모하기 이한 전문인들의 모임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1989년 한국PR협회가 설립되었다.

초대회장으로 현 나라기획 조해형 회장이 추대되었다. 탁월한 국제감각과 폭넓은 인간관계로 한국PR협회가 이 땅에 뿌리 내리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일년 후 제2대 회장으로 선임된 내가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PR교실이다. 이는 1991년 1월부터 매월 정기적으로 PR 업계와 학계의 관련인사들이 모여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장이다. 80-100여명 정도의 PR 관련 인사들이 서강대학교에 모여 늦은 저녁시간까지 PR강의를 듣고, PR에 대한 최근 이슈를 논의하며, 관련 정보나 견해를 주고받는 이 모임을 통해 PR인들끼리의 희로애락조차도 나눌 수 있어 좋다. 또 학계와 업계 인사들이 함께 참가하는 이 PR교실을 통해 학계는 업계의 생생한 얘기를, 업계는 학계의 깊이 있는 연구를 접할 수 있어 모범적인 산학협동의 한 예가 되고 있다. 

초창기 PR교실의 제목과 강사들을 살펴보면 PR교실이 한국PR업계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때는 모두 배우겠다는 자세로 PR교실에 참여하였으며 발표 후에는 진지한 토론도 이루어졌다. 주로 대학 강의실이나 소강당을 이용하여 PR교실이 개최되었으며 모든 참석자들은 밤늦은 시간에 PR교실을 마치고 대학 캠퍼스를 나오면서 학창시설을 생각하는 여유도 갖게 되었다.

제2대 PR협회회장에 취임하면서 발족시킨 PR교실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

 

PR인의 집을 열다 

2002년 5월30일은 나 개인으로 볼 때 기억 할 만한 아주 의미 있는 날이다. 1987년 PR업에 뛰어 들어 15여년 만에 아담한 5층 사옥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마련하여 ‘PR인의 집’으로 명명하였다. 

지하 1층에 5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을 마련하여 PR인들이 언제라도 무료로 사용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최근 젊은 PR인들의 모임을 PR인의 집에서 개최하여 앞으로의 한국PR의 방향과 젊은 PR인들의 역할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였다는 얘기를 듣고 'PR인의 집‘을 열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PR인의 집에서는 또 한국PR연구원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PR연구원은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의 부설 연구기관으로 주로 교육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 위기관리 인증프로그램과 ‘PR사관학교’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 PR인들에게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강의 프로그램을 개발할 생각이다. 

2002년 가을 한국PR협회의 전임회장들과 임원들을 모시고 조촐한 ‘잔치’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이제 우리업계도 자체 사옥을 하나 갖게 될 정도로 성장하게 되어 기쁘다”고 필자를 축하해주었고 이것이 출발이 되어 앞으로 우리 PR업계도 더 큰 성장을 하기를 바란다.

초창기 PR회사라고 문을 열었을 때 어느 신문에 기사하나 게재하게 하는데 얼마나 필요한지 경멸조로 문의를 받을 때와 지금은 PR회사의 기능이 전략적이고 기업의 경영에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기업들이 갖고 있는 것을 비교하면 정말 괄목할 만한 내․외적인 성장을 한 것이 틀림없다. 

우리의 대기업들이 이제 PR도 아웃소싱을 하게 되면 우리 PR업계도 버젓이 자기 사옥을 갖고서 안정된 비즈니스를 할 때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이 다 퇴근한 회사에서 혼자 남아 뒤처리를 하고서 뒤늦게 문을 잠그고 정리하면서 PR인의 집을 우리 PR업계의 발전을 위한 하나의 산실로서 더욱 더 발전시켜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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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년 11월 04일 2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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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저는 정보보호 업무를 하는 사람인데 블로그를 하면서 PR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블로그도 PR에 한 종류일테니까요

    PR에 대하여 무지한 사람이지만 사장님께서 적으신 글을 읽고 있노라면 PR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사랑이 눈에 보입니다. 앞으로 좋은 글 자주 부탁드립니다..

8. PR주변이야기

2008년 10월 31일 11시 18분

현대 미국 PR의 아버지 아이비 리(Ivy L. Lee) 

1990년대 초 등장한 미국의 PR대행사 파커 애 리(Parker & Lee)의 창업자 중 한사람이 아이비 리((Ivy L. Lee)는 "현대 미국 PR의 아버지"라고 불려지고 있다. 1990년대 초 개혁과 항의를 외치는 여론으로 수세에 몰린 기업들은 PR을 수단으로 대처하고자 했지만 대부분이 저직 기자였던 초기 PR인들은 언로대행술(Press Agentry) 즉, 확대․과장하는 선전기법을 주로 하는 PR기법으로 사실의 호도를 일삼았다. 그러나 아이비 리는 뚜렷한 PR원칙을 선언하고 "원칙"에 의한 PR활동을 수행한 결과 언론대행술은 퍼블리시티로 발전했다.

프리스턴 대학을 졸업한 리는 "월드" 잡지 기자로 업계를 담당하는 동안 당시 기업이 당면한 문제점을 파악했다. 1903년 그는 5년간의 기자생활을 청산하고 PR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후 1934년 그가 죽을 때까지 거의 30여 년간 여러 가지 PR 원칙과 기법을 창안하고 실천함으로써 미국 PR계에 우뚝서는 존재가 됐다. 

리는 1904년 역시 전직기자 출신인 조지 파커(George F. Parker)와 동업하여 미국에서는 세 번째로 PR전문대행사 "파커 앤 리"(Parker & Lee)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PR계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가 원만치 않아 큰 실적을 쌓지 못했고, 4년 후인 1908년 리가 펜실베이니아 철도사의 홍보부장이 되면서 해체됐다. 이 기간 중 리는 기업주로 하여금 그의 신념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기업이 숨기고 알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대중으로부터 의혹을 사게 되는 소지라고 믿었으며, 기업은 모든 사실을 정직하게 알려야 하며 그 입장을 명백히 드러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리는 1906년 한 무연 탄광의 파업사건에서 탄광업자인 배어사(George F. Bear & Associates)를 PR고객으로 하여 일할 때 "원칙의 선언"(Declaration of Principles)을 발표했다. "공중에게 알려야 한다"(The public be informed)는 원칙을 기초로 하여 그의 PR관을 피력한 것이 바로 "원칙의 선업"이다. 기업은 전통적인 관념대로 공중을 무시해서는 안되며 언론대행 기법으로 속여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시 모든 언론사 사회부장들에 선포한 "원칙의 선언"은 현재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원칙적인 것이나 그 당시 시대상황으로는 아주 혁명적인 것이었다. 

"우리 회사는 비밀 신문국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모든 일은 공개적으로 행해집니다. 우리들은 뉴스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우리 회사는 광고대행사가 아닙니다. 만약 우리들의 자료가 당연히 광고국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쓰지 마십시오. 우리들의 자료는 정확합니다. 우리가 제공한 자료의 주제에 대해 더 필요한 세부사항은 즉시 제공될 것이며, 어느 편집자도 관련된 사실을 직접 확인함에 있어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중략)... 요컨대 우리의 방침은 기업과 공공 단체를 위해 솔직하게 터놓고 말하여, 공중에게 가치있고 흥미로운 주제로 관한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미국의 신문과 공중에 제공하는 것입니다." 

라는 이런 원칙 아래 문제가 된 무연탄광 파업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대했다. 모든 정보는 원칙적으로 공개됐으므로 당시 파업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업무는 훨씬 수월했다. 기자들이 파업을 둘러싼 노사회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회의가 끝날 때마다 리는 기자들에게 회의결과를 보고해주었다. 라는 또한 최초로 대규모적인 "자료배포제"(handout system)를 실시하여 기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리는 정보의 공개와 편의 제공으로 기자들의 호감을 샀으며, 결국 파업에 대한 회사의 입장이 정확히 보도될 수 있었다.

당시 리는 "퍼블리시티"(publicity)라는 말을 썼으며 1919년까지는 PR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다. 그는 "퍼블리시티"에 기업경영단에 대한 자문 기능까지 확대하여 PR로 발전시켜 나갔다. 1914년 12월부터 록펠러 2세의 PR자문역을 맡은 그는 록펠러가의 이미지 개선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면서 PR인으로서 명성을 굳혀나갔다.
 

20세기 초 미국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과정에서 록펠러(Rockfeller)는 대기업이 되면서 부정한 폭리와 노동운동의 강경진압으로 "기업악의 화신"(the epitome of the evils of business)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당대 최고의 PR인 아이비 리는 록펠러의 "이미지관리"를 하게 된다. 물론 당시는 "이미지 관리"(Imagement=Image+Management)라는 합성어도 생기지 않았을 때이고 아이비 리는 록펠러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잠재우겠다는 전략적 접근을 했을 뿐이다.

록펠러의 PR자문을 맡은 리는 "탐욕스럽고 뻔뻔한 서민의 적"(a rapacious, unscrupulous enemy of the commonman)이라는 록펠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그가 1937년 97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 "친근한 영감님"(the kindly old fellow)의 긍정적 이미지로 끌어올렸다. 록펠러의 이미지관리에 있어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비 리가 직접 록펠러와 대면해서(face-to-face) 종합적인 전략을 짰고, 록펠러는 아이비 리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아이비 리의 이미지관리에 포함된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록펠러의 사업과 자선기금에 대한 광범위한 호의적 보도를 위해 교육기관과 의료기관에 총 5억 달러를 기부한다.

(2) 록펠러가 만찬회 등의 공공행사에 참석하여 만찬열설을 통해 보도 기회를 획득한다.

(3) 록펠러의 "자애롭고 인간적인" 이미지를 조성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기사화한다. 즉, 아이들에게 은화를 무심코 건네주는 그의 행동이나, 의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마음내키는 대로 골프를 즐기는 그의 행동을 다룬 인간적 관심(human interest)을 불러일으키는 기사를 개발한다.

(4)록펠러와 그 가족의 동정적 부고자료를 배포하고 문필가에게 의뢰하여 그의 전기를 저술하게 한다. 

리가 대기업주를 고객으로 PR자문을 하면서 특히 강조한 점은 훌륭한 실적이 동반하지 않는 PR이란 실은 "홍보와 망상"(fallacy of publicity)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돈 많은 기업인들을 인간화(humanization)하는 데 최대한 노력했다 그는 PR을 단순한 대행업무에서 "기업의 참모"(brain trust for the businesses we work with) 기능으로, 더 나아가 "자문"(public relations counseling) 기능으로 확대하여 오늘날의 PR 기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했다. 

PR인으로서 아이비 리의 공적은 역사상 길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PR실무가로서 그의 행적에 대한 비판 또 한 컸다. 그가 1914년 12월 록펠러의 PR자문역을 맡을 당시 노동파업을 진압하는 기업주로서 록펠러의 낙폭한 행위는 맹렬한 지탄을 받고 있었다. 록펠러에 대한 비판은 리의 PR활동에까지 비화되어 업턴 싱클레어는 그에게 "독풀 아이비"(poison ivy, 독풀 넝쿨의 일종)라는 별명을 붙인다. 또 당시의 투쟁적 언론인 조지 크릴(George Creel)은 리를 "여론독살자"(poisoner of public opinion)라고 불렀다.

리의 PR행위가 실질적으로 의혹을 사게 된 것은 나치스가 장악하고 있는 독릴계 파벤(I. G. Farben) 그룹 산하의 "저먼 다이 트러스트"(German Dye Trust)를 위에 PR을 대행했다는 점이다.

리는 1933년 연간 2만 5000달러 및 기타 비용을 지불 받는 대가로 독일 회사의 PR대행을 맡았다. 

이 일로 아이비 리는 돈만 주면 비윤리적인 일이라도 언제나 기꺼이 하는 PR인으로 인식되어 그의 윤리적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됐다. 그러나 그는 죽기 직전 나치정부로부터 직접 돈을 받은 일은 없었으며, 미국 파벤사(American I. G. Farben)와의 관계를 확대하는 일환으로 독일 파벤사와 관계를 맺었다고 해명했다. 또 전범재판소에 제출된 기록에 의하면 파벤이 리를 고용한 것은 나치의 선전원으로서가 아니라 나치 정권을 정책을 유화 하려는 노력에서였다고 했다. 

아이비리 리가 활동했던 시대적 상황은 미국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과정에서 부정한 폭리, 노동운동의 폭압등 기업의 횡포가 빈번했으며 한편으로 언론은 기업의 추문을 폭로해서 터뜨리기에 열을 올리는 ‘폭로성 저널리즘’(muckraking journalism)이 만연한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칙의 선언’을 하면서 공개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주는 PR을 표명하고 나선 아이비 리는 분명 ‘현대 미국의 PR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하다.

 

미국 최고 경영자들이 이미지에 문제가 생겼을 때 PR전문가 의존도 1위

미국 최고 경영자들이 위기발생 들을 포함하여 회사의 평판이나 이미지와 관련된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해결 수단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가? 조직이 기능과 규모에 따라 다르겠으나 최근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PR이 가장 많이 의존하는 수단으로 나와있다. 미국의 ‘PR위크’지는 임펄스 리서치(Impulse Research)를 통해 미국의 최고 경영자(CEO)2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설문내용 중 회사의 평판(reputation)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회사내 어느 부서 전문가에게 맡기는 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한다.

(1) PR 전 문 가 : 35% (2) 마케팅전문가 : 22%

(3) 경 영 자 문 : 12% (4) 변호사 : 10%

(5) 인사 전문가 : 8% (6) 광고 전문가 : 8%

(7) 기 타 : 5%
 

PR전문가와 먼저 만나서 전략을 짜겠다고 하면 응답한 수가 전체 설문대상의 35%로 가장 많다. 또 250명 중 75%가 PR이 그들의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년 전 보다 훨씬 더 증가했다는 반응을 보여 PR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입증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조사를 했을 때 PR전문가에 대한 의존도가 과연 1위겠는가는 확신이 서지 않지만 많은 최고경영자들이 단순한 언론대책을 강구하는 목적만이 아닌 종합적인 위기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PR전문가와 상의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재벌 총수들이 해외여행시 PR전문가의 수행이 두드러지고 있다. 물론 해외 주요 도시에 상주하고 있는 한국 언론 특파원들과의 관계를 고려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PR전문가의 기업경영에 대한 종합적인 자문의 비중이 더욱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흔히들 외국기업들은 PR전문가를 ‘상담역(consultant)이라고 부르고 있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언제라도 의논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생각에서 상담역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PR전문가들이 상담역으로 불리워지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많은 사안에 대해 정말 도움이 되는 자문을 해 줄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하고 있어야만 하겠다. 즉, 자문역의 값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PR회사의 직원들은 변호사와 같이 시간당 청구금액(hourly rate)을 갖고 있다. 나는 1시간에 350달러씩 청구하고 있다. 2시간 우리회사의 고객과 만나 비즈니스 대화를 나눈 후 700달러의 청구서가 그 고객에게 날아갔을 때 아무 불평없이 청구된 금액을 지불하는 상담역이 도지 않으면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해 가는 PR업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된다. 

얼마전 세계적인 투자 금융회사인 골드만(Goldman Sachs)의 고위층을 한국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의 시간당 청구금액은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그러나 고객들이 기꺼이 그의 시간당 청구금액을 수용하는 것은 그가 시간당 청구금액보다 훨씬 더 가치가 높은 자문을 해주고 잇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PR사업도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돌입하여 21세기에는 크게 번창하리라는 예상들이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잠재 고객들에게 PR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최고경영자들도 미국처럼 이미지 문제가 생겼을 때 PR전문가에 대한 의존도가 1위가 되게 하는 것이다. 

 

국제화시대의 인터컬츄럴(intercultural) PR 

이제 기업의 비즈니스가 글로벌 마케팅과 글로벌 PR의 단계로 접어듦에 따라 문화적 요소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국제PR을 포함해서 국제비즈니스를 수행하는 과정에 다문화 PR, 다문화 마케팅, 인종 마케팅 등은 PR 실무자들에게 익숙한 용어가 되었으며 PR 실무자들의 중요한 논의점이 아닐 수 없다. 다음은 인터컬처럴 PR과 관련하여 인터컬처럴 커뮤니케이션즈 분야의 전문가인 수원대학교 최윤희 교수가 특별 기고한 글이다.  

세계가 지구촌화 되면서 사람들은 타문화권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할 기회를 많이 갖고 있으며 매스미디어를 포함한 정보통신 기술을 통한 간접 접촉 또한 많이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활발한 국제 교류를 통해 사람들은 문화를 교류하고 공유한다. 그렇지만 세계의 각 나라는 아직도 각기 독특한 문화, 언어, 사회 및 생활관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의 차이는 국제무대에서 오해와 갈등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러한 갈등은 개인간의 관계는 물론 기업 경영을 포함한 각종 국제관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모든 사회에는 그 나름대로의 문화적 가치체계가 있고 그 가치들은 특정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배우고,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불문율이다. 따라서 서로 대비되는 문화권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할 때에는 상대방의 문화적 코드를 모르기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기 쉽다. 특히 해외로 진출한 기업은 물론 국내에서 해외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기업은 상이한 법률, 매체, 언어 또는 비즈니스 환경과 부딪혀야 할 뿐만 아니라 타 문화권 구성원들의 행동 패턴, 심지어는 이해의 패턴을 만들어 내는 보편적인 관행, 신념과 가치체계를 이해해야 한다. 

PR, 특히 국제PR실무자들은 국제 PR을 수행함에 있어 국가단위의 상이한 문화뿐 아니라 많은 경우 단일국가 내의 다양한 문화도 함께 다루어야 한다. 이들은 매스미디어 또는 대인관계를 통하여 해외 현지의 환경과 상호작용을 해야 하며 지역사회, 정부, 주주, 종업원, 경쟁기업, 이익집단 등 다양한 공중과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해야 한다. 즉, 국제 PR실무자는 타 문화권 환경과 쟁점에 민감한 경계선 관리자(boundary spanners)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 예로 로스엔젤레스의 인종폭동 때 한국 교포들이 얼마나 억울한 손해를 보았는가, 그러나 우발적인 사건으로 보인 그 폭동의 이면에는 종족 차별과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부족,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 즉 대 주민관계 PR을 등한히 해온 교포사회의 책임도 크다. 

문화적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이러한 변수는 우리의 지각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대화할 때 사용하는 메시지 의미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들의 태도, 사회조직, 사고방식, 역할, 언어를 비롯해서 공간의 개념, 시간관념과 같은 비언어적 요인들이 가치관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변인들이다. 

우선 언어를 국제 PR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많은 사람들이 타 문화권 사람들과 대화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통역관이라고 가볍게 여기고 만다. 이런 사고방식은 문화와 언어와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소치일 것이다. 대체로 언어는 문화의 산물인 반면 문화는 역시 언어의 산물로서 문화와 언어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 언어의 직접적인 역할이다. 또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은 우리 문화의 본질을 부분적으로 결정짓는 것이다. 

언어의 차이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의 지각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단어가 작용하는 역할이다. 어떤 사물에 대한 판단과 뜻을 부여하는 일이 지각의 일부인 이상 단어에 관련된 최종적인 뜻은 문화와 깊이 관련되어 정해지게 된다. 한 예로, 파커펜사는 셔츠 주머니에 넣고 다닐 때 잉크얼룩이 묻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만년필을 개발하여 광고를 했다. 이 만년필광고는 성공적이었고 파커펜사는 유명해졌다. 파커펜사가 사용한 광고문구는 “파커펜사는 소비자를 당황하게 하지 않습니다(To avoid embarrassment, use Parker pens.)"였다. 여기서 당황하게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잉크가 갑자기 새어나오지 않아 옷에 묻지 않는다는 뜻이다. 파커펜사는 미국시장에서 성공한 뒤 남미시장에 진출했는데 이때 이 광고문구를 그대로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하지만 광고캠페인의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였다. 번역된 광고 문구 속에 다중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가 있었던 것이다. 즉 ”embarrassment"에 해당하는 스페인어에는 “임신”을 뜻하는 단어로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슬로건은 “피임을 위해서는 파커펜을 쓰세요”로 해석되었다. 

언어의 또 다른 문제는 의미상의 문제이다. 미국에서 모든 차는 자동차로 인식되지만 아랍의 어떤 나라에서는 오직 캐딜락만이 자동차로 생각된다고 한다. 이런 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나 중동에서 온 사람에게 자기의 차를 사용하도록 편의를 제공한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의 차가 캐딜락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만일 캐딜락이 아닌 엑셀이었다면 좀 묘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언어가 메시지를 주고 받는데 중요한 만큼 비언어 커뮤니케이션(nonverbal communication)도 언어 메시지를 해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언어 행위는 언어 메시지가 심각한 것인지, 위협적인 것인지 또는 농담인지 여부를 지칭해 준다. 사실 두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 중 약 30%만이 언어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한다. 특히 외국인과의 대화나 국제비즈니스 수행과정에서 많은 것을 비언어 행위에 의존하게 된다. 비언어행위들은 문화권을 넘어 매우 비슷한 기능을 하지만 어떤 비언어적 행위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을 두절시키기도 한다. 비언어 행위 중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부분을 이루는 것은 제스처라고 해야 겠다. 제스처에는 눈, 속, 발, 머리, 다리, 얼굴의 움직임이 포함된다. 이중 어떤 제스처는 의도적으로 이뤄지지만 어떤 것은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 그 예로 악수를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 오른손만을 사용하고 화장실이나 신발을 닦을 때는 왼손을 사용하는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사람이 공간을 이용하고 만드는 것도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또 하나의 문화요소다. 문화가 다름에 따라 사람과 사람이 두는 거리도 각기 다르다. 즉 공간은 사람의 목소리처럼 커뮤니케이션의 한 몫을 차지한다. 미국 사람들의 경우 큰방에 앉아서 서로 대화를 할 경우 가장 안락한 거리는 약 1.5미터이며 옆으로 나란히 앉는 것보다 얼굴을 마주보며 앉기를 더 좋아한다. 한편 아랍인이나 남미인들은 매우 가까이 서서 대화한다. 이렇게 문화에 따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즐기는 거리가 각각 다른데, 이 거리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따라 서로 다르게 마련이다. 

시간도 인간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요소로 작용한다. 서양에서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되어 그들이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절약하고, 또 낭비할 수도 있는 중요한 대상의 하나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은 시간을 피부로 느껴서 직접적인 것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다. 불교가 중요한 종교인 동양의 몇 국가에서는 시간을 사건이 발생하고 발전하고 사라지는 무한한 늪으로 본다. 거기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없이 오직 현재라는 상황 속의 계속만이 있을 뿐이다. 

이는 국가마다 다른 문화적 상황에서 언어의 차이가 불러오는 의미상의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타 문화권 사람들과 대화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통역관이라고 가볍게 여기고 만다. 이런 사고방식은 문화와 언어와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소치일 것이다. 대체로 언어는 문화의 산물인 반면 문화는 역시 언어의 산물로서 문화와 언어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 언어의 직접적인 역할이다. 또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은 우리 문화의 본질을 부분적으로 결정짓는 것이다.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패턴에 기초한 PR 

한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패턴이 함축적(Implicit)이냐 아니면 설명적(Explicit)이냐에 따라서 PR 전략적 접근이 달라져야 한다. 즉 함축적(Implicit)인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많은 고맥락(High Context) 사회와 설명적(Explicit)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많은 저맥락(Low Context) 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문화권에서 전략적인 PR프로그램을 계획,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의 그림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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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에서 일본과 가깝게 자리하는 한국 사회는 고맥락 사회의 특성을 드러낸다. 옛말에도 있듯이 이심전심이 통하고 무언의 의미가 중시되는 사회로 뚜렷한 언어적 명시나 계약관계가 발달되어 있지 않은 사회라 할 수 있다. 한번은 미국 회사가 한국에 진출하는 것과 관련하여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가 PR대행을 하면서 계약과 관련하여 사소한 분쟁이 일어난 경우가 있다. 그러한 경험으로부터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교훈은, 칼 같이 세세한 모든 내용을 계약서에 명확하게 다 집어넣는 것이 오랜 동안 함축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 있는 동양적 시각으로 처음에는 섭섭하기도 하고 야박한 것 같기도 하지만 계약관계를 명확하게 해두지 않으면 시간이 흘러 또는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거나 양자의 비즈니스 관계가 나빠질 리 없지만, 동양적인 사고방식으로 이심전심 서로 잘 이해해주겠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분쟁이 일어나 양자가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나중에야 발견되면 적(enemy)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편 우리나라와 같은 저맥락 사회에서는 “자기비하에 의한 겸손(modest bias)" 의식이 널리 공유되는데, 예를들면 박찬호나 박세리 같은 운동선수가 승리했을 때 사장, 감독, 코치에게 그 공을 돌리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만 성공할 수 있었다는 식의 코멘트를 한다면 소외되고 배척받게 된다. 사실이 그러할 지라도 한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패턴에 따르지 않은 데서 오는 오해와 질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PR활동에서도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패턴은 하나의 중요한 이해 척도가 된다. 따라서 PR활동을 전개하는 환경이 고맥락 사회(High Context)인가, 저맥락 사회(Low Context) 사회인가를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PR전략이 수립되고 실시되어야만 성공적일 수 있는 것이다. 예를들면 지금은 법적으로 허용되었지만 한때 규제되었던 비교광고나 PR활동에서의 경쟁상대방에 대한 비판 등은 한국 사회에 같은 저맥락 사회에서 대개는 긍정적으로 수용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공중과 PR전략 

일찍이 대중(Mass)으로만 목표 공중(Target Audience)를 바라보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관점이 근래에 공중(Public)이라는 개념으로 바뀌면서, PR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과학적으로 세분화된 공중(Public)의 분석이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PR 메시지를 과연 어떤 공중에게 초점을 맞추어 소구할 것인가 이전에 어떤 공중(Public)이 PR 환경에 존재하는가 하는 고찰은 PR전략 수립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Public Relations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PR은 다양한 공중들과의 관계를 중요시 한다. 그 공중의 다양성은 기업 및 사회 환경의 다양화에 힘입어 더욱 세분화되어가고 있다. PR에 있어서 선진적 기업들은 기본적 목표 공중의 종류를 미리 선별하여 놓고 있으며, 그에 대한 우선순위(Priority)를 기업의 사명 선언(Mission Statement)에 명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 공중의 선별과 우선순위는 PR프로그램의 수립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데, 그 하나의 유명한 예가 미국 존슨 앤 존슨사의 타이레놀 사건이다. 

이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대표적 사례로도 유명한데 80년대 초 독극물이 든 타이레놀(진통제의 일종)을 먹고 미국 시카고 지역에서 7명의 사람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가면서 존슨 앤 존슨사의 타이레놀 위기(Tyrenol Crisis)는 시작되었다.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타이레놀에 대한 소문과 공중들의 두려움은 점점 더해 갔고, 마침내 존슨 앤 존슨사는 전 미국의 약국 선반에 전시된 타이레놀 약병들을 스스로 모두 치워 없애는 파격적인 대응을 하게 된다. 위기관리는 곧 "공중의 인식(Perception)의 관리"라는 것을 잘 파악한 존슨 앤 존슨 위기관리팀은, 일부 지역에서만 독극물 투입이 추정되는 상황에서도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며 모든 지역의 제품들을 모두 수거하는 전량수거(Total Recall)를 결정하였다. 이는 목표 공중의 "공포(Panic)"라는 인식을 통제하는 극단의 조치였다. 미국같이 거대한 시장에서 전량수거 조치는 존슨 앤 존슨사의 엄청난 재정적인 손실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론 목표공중의 관리에 대한 한 기업의 애착을 대변하여 준다.  

존슨 앤 존슨사의 기본적 목표공중에 대한 선별과 우선 순위는 "신조(Our Credo)"라고 불리는 기업사명 선언문(Mission Statement)에 명시되어 있다. 이 "신조"에 나타난 존슨 앤 존슨사의 목표공중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우선 우리의 상품과 서비스 수요자인 의사, 간호사, 환자와 자녀를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하여 모든 사람에 대해 책임을 다한다

(2) 전세계에서 근무하는 모든 남녀 직원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

(3) 우리가 생활하고 근무하고 있는 지역사회는 물론 세계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

(4) 마지막으로 회사의 주주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

이 같이 존슨 앤 존슨사는 미리 주요 목표 공중을 정해놓고 각각의 우선 순위를 명시해놓음으로써 위기에 직면하여 우선순위에 따라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수요자를 주주들의 이익보다 우선하여 중시했기 때문에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이렇게 세분화된 공중에 대한 설득적 메시지가 적절한 시기에 제공되어지지 못했다면 잠재적인 공중(Potential Public)이 통제할 수 없는 활동적 공중(Active Public)으로 변하게 된다는 공중관을 이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각 기업이나 단체는 전반적인 경영 및 PR 운용상의 공중을 분석하고 우선순위를 설정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각 PR프로그램의 성격과 시기, 환경적 요소 및 전술적(Tactics) 목표들을 분석하여 실시해야 한다. 하나의 공중은 수없이 다양한 종류의 세부공중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세분화 기준은 문화, 가치관, 라이프스타일, 사회적, 경제적, 인구학적 특성 등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세분화된 목표 공중에 대한 분석은 그 세부계층에 적절한 메시지를 수립하고 그 메시지 전달을 위한 전략 수립을 위한 핵심적인 자료가 된다. 그러므로 PR 프로그램의 수립에 있어서 대략적인 하나의 큰 집단을 목표공중으로 보기보다는 프로그램의 의도에 부합하는 가능한 한 세분화된 목표 공중을 식별해내는 것이 좀더 전략적인 PR 프로그램의 첫 단계가 되는 것이다.

 

PR산업의 미래 

국내 전문 PR대행사와 광고대행사내 PR부서의 주요 고객들은 거의 외국 기업이나 정부이다. 많은 사람들이 PR산업의 잠재력을 논하고 PR을 각광받는 21세기 각광받는 유망업종이라고들 하며 이 분야에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은 국내 기업이나 정부가 독자적인 PR부서와 자체인력으로 PR활동을 수행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국내 PR의 전문화와 과학화는 소원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물론 국내 기업들 자체적으로도 PR의 전문성 확보를 위한 여러 강구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이미 서구 선진국으로부터 PR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전세계를 상대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전략으로서의 PR의 노하우를 쉽게 주고받을 수 있었던 PR전문회사로부터 자문을 구하거나 용역을 의뢰할 수 있는 경영진의 앞선 선택이 21세기 그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PR은 경영의 일환으로 PR의 미래는 기업의 미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서독의 통합과 관련하여 PR전략을 수립한 내용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통상전문가, 언론인, 사회학자, 역사학자, 광고, PR전문가, 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팀이 되어 구성해낸 종합마케팅 전략의 첫부분은 2차 세계대전 상황에서 시작되고 있다. 런던 하면 영국, 파리 하면 프랑스라고 하지만 독일은 어느 한 도시로 대표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시나리오이다. 즉 런던만 마비시키면 영국을 마비시키는 셈이고, 파리만 무너뜨리면 프랑스를 무너뜨리는 것이 되지만 독일은 어느 한 도시가 아니라 중추신경과 같이 골고루 흩어져 있는 모든 생산공장을 파괴시키지 않는 한 무너뜨릴 수 없는 논리를 적용하여 동서독 합의 전반적인 마케팅 전략 패러다임을 수립한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동서독이 통일될 때까지 단계적이고 종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되었다. 한편 쿠웨이트 전쟁에서는 PR대행사가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실시하기도 했다. PR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단순한 관심 분야 이상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으며, 기업 경영뿐 아니라

국가적 대사에까지도 관여하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PR 프로젝트가 대형화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국가이미지, 기업이미지, 대형 국제행사 등에 PR회사가 관여하고 있고 한편 광고대행사와 컨소시움을 형성하기도 한다. 정부 PR이나 올림픽 PR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고 몇몇 외국정부에서 각종 성명서 발표시 PR회사의 자문을 얻는 경우도 있다. 해외홍보를 위해 전문 PR회사의 도움을 얻는 기업이나 기관들도 늘어나고 있다. 정부 주요인사들이나 경제사절단이 외국을 방문할 때 전문PR회사에 종합적인 PR계획 수립을 요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PR의 역할이 하루가 다르게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PR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특히 기업들은 급변하는 환경에서 다양한 공중과의 발생 가능한 쟁점이나 위기 관리에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대책보다는 보다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전략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PR은 하루아침에 어떤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 씨를 뿌리면 열매를 얻기 위해 어떤 시기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듯이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추구해야 하는 일종의 투자이다. 

또 한 가지 PR에서의 과학적인 전문화(specialization)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PR은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정치부 기자가 사회부 기자로 자리바꿈 했을 때 분야가 달라졌다고 해서 기사를 쓰지 않을 수는 없으며, 어제까지 정치부 기자였던 그 기자는 오늘은 사회부 기자로서 제몫을 다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PR의 저널리즘적 측면이다. 관광분야의 고객을 상대로 PR업무를 해오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전혀 생소한 주주관리 PR대행업무를 요구하는 고객을 맡더라도 제대로 수행해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분야에 적응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편 미국에서는 은퇴한 기자가 PR회사에서 일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또 신문기자뿐만 아니라 변호사, 회계전문가, 은행가, 과학자, 고급 정부관료 출신자들이 전문적인 경험을 살려 특정 분야의 PR서비스를 하는 일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PR의 아카데미즘이라 할 수 있다. 특정 분야의 PR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그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가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PR인들에 대한 개념이 고객을 위한 PR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단순한 A.E. 개념에서 벗어나 “컨설턴트”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미 외국의 고객들은 전문 PR인을 컨설턴트로 인정하면서 우수한 서비스를 요청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21세기 발전하는 PR산업을 주도하는 PR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문성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PR에 대한 수요가 점점 커지고 있는 이때야말로 바로 PR인들이 전문화와 함께 윤리적 측면에 더욱더 관심을 기울어야 하는 시점이 된다. 미국 PR협회(PRSA)의 17조 윤리강령에서처럼 우리에게 투철한 윤리강령의 구현 의지와 실천이 가 있을 때만이 우리 PR산업의 미래는 밝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PR으로서 투철한 전문가 의식이나 직업적 자긍심, 윤리의식을 지닌 사람은 흔치 않다. PR인 스스로 투철한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질 때 비로소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전문인으로서 그 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직업적 윤리의식을 통제하는 문서화된 강령(Ethics Code)의 본보기로 미국 PR협회의 윤리강령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문서화된 직업적 윤리 강령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PR인 스스로의 가치관 정립이 우선되어져야 하지만 말이다. 확고하고 엄정한 직업윤리를 바탕으로 전문가로서의 자긍심을 추구하는 PR인이야말로 21세기가 요구하는 시대적 인물형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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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성순
    2008년 12월 12일 01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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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2월 23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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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01월 03일 14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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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언론과 윤리

2008년 10월 31일 09시 24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가판과 관련된 윤리문제


지난 2001년 10월에 중앙일보가
가판신문 발행을 폐지하면서 본격적으로 가판제도에 대해 논의가 있었고, 2002년 3월 20일에는 중앙일보가 가판신문을 없앤 것을 계기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이 '일간지 가판제도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해 이에 대한 첫 공론화의 장을 열었다.
근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2월22일 <오마이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청와대와 정부의 가판신문 구독금지 발표로 가판 제도가 다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노대통령의 언론관과 언론개혁의 맥락에서 구체적인 시행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중앙일보의 A 기자는 한국PR기업협회세미나에서 "좀 깊이 있는 기사를 쓰거나 비판적인 기사를 썼을 때는 며칠동안 누가 고소하지는 않을 지에 신경을 쓰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고백하였다.

가판이 나올 경우는 대기업이나 정부의 홍보담당자가 저녁 7시 경부터 가판 내용중 틀린 내용이나 숫자에 대해 정정을 요구해와서 그 기자는 그들의 주장을 확인해서 한번 더 사실 보도에 접근하게 되면 별 걱정 없이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가판이 없어지고 새벽에 최종판이 한번 나오게 되면 그간의 관행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기에 힘든 일인것 만은 분명하다.

가판이 없어진 것과 관련하여 담당기자들은 더 정확하고 사실에 입각한 기사를 써야 별탈이 없게된다.

시대가 변하고 있기에 기자들의 오보에 대해 여러 가지 법적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다. 언론의막강한 힘을 의식하여 ‘치외 법권’으로 알아서 움직이던 시대는 이미 지난 이야기다. 사법부도 기사내용과 관련된 소송에 대해 기자들에게 전혀 특혜를 주고 있지 않기에 이제는 기자들 스스로 더욱더 정확한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여기에 취재원의 정확한 인용도 필요하며 객관적인 보도를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한다.
 

가판의 단점으로 부정적인 역기능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