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PR현장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68건

  1. 2008년 03월 10일 정치인들도 MPR 기법을 도입하라! (16)
  2. 2008년 03월 10일 고객이 즐거운 마음으로 “시간당 청구금액(hourly rate)"을 지불하게 만들자! (2)
  3. 2008년 03월 10일 아버지가 아들에게 던진 한마디
  4. 2008년 03월 10일 외신기자를 내 사람으로 만든 김우중 전 대우 그룹 회장
  5. 2008년 03월 10일 다 잃은 후 더 많은 것을 얻은 옛 삼호건설의 설립자 조봉구씨와의 워싱톤에서의 짧은 만남
  6. 2008년 03월 10일 호리에 행장 전격경질과 숨막히는 숨바꼭질
  7. 2008년 03월 06일 Kodak사의 성공적인 투자자 관련 PR(IR)
  8. 2008년 03월 06일 월트디즈니사의 미국역사 테마와의 한차례 전쟁
  9. 2008년 03월 06일 협회와 회원들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미국목재보존협회의 PR프로그램
  10. 2008년 03월 06일 브리티시 텔레콤의 전략적 PR (2)
  11. 2008년 03월 06일 엑슨의 알래스카 석유유출
  12. 2008년 03월 06일 NASA 챌린저호 참사는 "PR계의 비극"
  13. 2008년 03월 06일 존슨 앤 존슨의 타이레놀 사건
  14. 2008년 03월 06일 도미노 피자 "30분 넘으면 무료"
  15. 2008년 03월 06일 맥도날드의 햄버거 대학(Hamburger University)
  16. 2008년 03월 06일 힐 앤 놀튼의 사내직원 커뮤니케이션
  17. 2008년 03월 06일 어느 원로교수의 고백
  18. 2008년 03월 06일 선전기법의 경연장 대구시장 선거전
  19. 2008년 03월 06일 PR교실에서 만난 노 외교관
  20. 2008년 03월 06일 한국PR협회의 탄생과 PR교실
  21. 2008년 03월 06일 ‘김경해의 장학생이 아니면 외신기자 아니다’
  22. 2008년 03월 06일 “당신 간첩 아닙니까?”
  23. 2008년 03월 06일 평양 보통강 “려관”에서 만난 고 이범석 수석대표
  24. 2008년 03월 06일 평양 지하 이발소에서의 삼십 분
  25. 2008년 03월 06일 추측하지 마라
  26. 2008년 03월 06일 위기관리 매뉴얼은 21세기 생존전략
  27. 2008년 03월 06일 카타르시스(Catharsis)만 맛보지 마라
  28. 2008년 03월 06일 가상위기에 대비하라
  29. 2008년 03월 06일 사전대응이 최선의 길
  30. 2008년 03월 06일 예방접종을 하라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펼쳐보면 하루 사이에 벌어진 수많은 위기의 순간들을 접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 나의 하루를 돌이켜 보더라도 실수로 혹은 예기치 않은 일로 위기를 겪게 된다. 표면으로 보이는 이유는 각기 다른 듯 하나, 내면의 문제를 파헤쳐 보면, 이는 바로 전략적 위기 커뮤니케이션 부재로 발생한다.




특히 이해관계가 각기 다른 국민들을 주요 공중으로 고려해야 하는 정당 및 정치인의 경우는 그들과 신뢰를 바탕으로 장기적이고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해 가는 과정 속에서 매 순간 위기에 철저히 노출되어 있다. 또한, 한번의 위기로 국민들의 마음에서 멀어진 정당 및 정치인이 다시 기존의 명성 및 신뢰를 쌓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위기를 사전 예방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위기관리 프로그램 교육에 대한 정당 및 정치인들의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지난 대선의 가장 큰 패인을 스스로도 홍보의 문제로 꼽고, 개혁적으로 '정치 PR 특강'을 추진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정치인들의 이 같은 위기관리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지난 2003년 7월 9일, 정부 및 정치인 대상 최초의 위기관리 교육 프로그램으로 저자의 '정치인과 위기관리'의 특강을 개최하였다.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정치인과 정부 관료 그리고 PR에 관심 있는 학생 등 120여명이 자리를 가득 매웠다.




먼저, 저자는 정치인들은 이미지의 위기, 정체성의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실수, 언론관계 속 위기, 국민의 불신 등의 위기상황에 놓여 있지만, 그 어떠한 경우라도 위기관리의 첩견으로 꼽히는 사전대응적(Proactive)인 준비자세를 갖추고, 평소 좋은 이미지를 심어둔다면 위협스럽게만 느껴지는 위기는 바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전략적 관리의 중요성은 지난 대선 기간 중 여러 차례 보여진 노무현 후보의 위기 정면 돌파의 모습이나 사스로 중국 전체가 비상사태까지로 발전하였을  때 한국의 LG전자가 위기관리 전략인 '중국 사랑 캠페인'을 도입 오히려 매출이 급증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게 된 사례를 통해 더욱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위기 발생 이후 책임자 문책으로 쉽게 위기를 종결 시켜 버리는 우리사회의 전반적인 위기 불감증 문제는 바로 위기관리의 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상기 시켰다. 따라서, 강의 중 위기관리 Process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며 듣게 되었다. 위기 상황들은 먼저 내부인사 및 외부 전문가와 언론인을 통해 진단을 통해 (Crisis Audit) 완화(Mitigation) 과정을 거쳐, 사전대응적이며 모든 가정 시나리오를 상정하여 이에 대한 전략 수립이 구체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CMM)을 작성하고, 모의 훈련(Simulation) 을 통해 사전 대비하여 회복(Recovery) 과정을 거쳐 교훈(Lesson)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게이트 키퍼와 여론 조장의 역할로 지금까지도 큰 힘을 작용하는 언론 관계에서의 위기에 관한 토픽이 나오자 실무에서 직접 언론을 접하고 있는 정치인 및 정부 관료분들이 보다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종에 목숨을 걸어야 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언론의 성격을 절실히 이해하였을 때,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정치인들은 반드시 언론 훈련(Media Training)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끝으로 '정치인의 위기관리 10계명' 이라는 타이틀로 '자신을 마케팅 하는 키워드를 개발해야 한다.'는 4번째 계명을 스스로 실천해 주신 김경해 사장의 얘기 중 특히 실무에서 바로 적용 할 수 있는 정치에 MPR 기법을 도입하여 정치 CEO 가 되어야 한다는 부분에서 특히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략적인 단어 선택을 통해 참신한 메시지를 쉽게 전달하여 정통한 커뮤니케이터가 되어야 한다는 계명에서는 여성흡연이 금지되어 있던 시절 자유의 횃불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여 여권신장의 이미지를 흡연에 심을 수 있었던 에드워드 버네이드의 예를 접할 수 있었는데, 그의 뛰어난 창의력과 전략적 언어구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끊임없는 여론 진단과 스스로의 브랜드와 이미지도를 측정하야 하여 홈페이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하나의 전문 분야를 자신의 브랜드화 시키는 동시에 TV 토론 철저히 준비하고 연습하여 주요 이미지 전략의 수단으로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21세기의 키워드인 신뢰,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계명에 보다 무게를 실어 강의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예시와 핵심을 집어주는 명쾌한 설명으로 위기관리 특강은 뜨거운 열기 속에서 2시간여 동안 진행되었다. 강의가 진행되어 가고 있는 그 순간에도 밖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를 끊임없는 위기들을 직접 관리해 가야 하는 정치인 및 정부 관료들인 만큼 강의가 직후 이어진 질문과 답변 시간에도 질문의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위기관리 전문가의 조언을 얻기 위한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먼저, 무엇보다도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언론관계에서의 위기관리 관련 질문이 들어왔다. 언론기사에서 잘못된 인용보다 부수적인 내용을 제목으로 하거나 편집상 부정적인 내용을 제목으로 뽑는 경우의 위기관리 방안을 궁금했다. 저자는 예를 들어, 'We do not'이 아니라, 'Don't'를 사용하는 전략적인 단어 선택을 통해 언론과의 관계 설정하여 기자가 ‘not'를 놓칠 수 있는 여지를 처음부터 차단하여, 언론이 결정적인 부분에 대해 잘못 인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을 마련/ 관리하고, 기자들이 이러한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하였다.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한나라당이 처한 가장 큰 이미지 위기인 '늙은 당'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실제로 출마예상자 또한 나이 든 후보가 많은 현실을 직시할 때, '젊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공격을 당할 경우, 신체적 나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을 묻는 물음에 대해서 신체적 나이에 관계없이 젊은 메시지를 던져야 된다고 강조하였다. 즉, 신체적 나이를 극복하기위해 선거 캠페인이나 TV토론에서 젊은 이미지, 튀는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전략을 활용하며 이는 특별한 메시지나 이벤트를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유권자와 후보자간 활용 가능 한 미디어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현대에서 가장 좋은 미디어는 홈페이지이므로 유권자와 소통할 수 있도록 적극 활용을 제안하셨으며, 지역구의 오피니언 리더와 이메일, 문자메세지 등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하는 방법도 제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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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년 04월 08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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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해 사장님, CEO 블로그 오픈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에델만 코리아에서 근무하고있는 이중대라고 합니다. 앞으로 블로그를 통해 사장님의 많은 인사이트를 접할 수 있길 기대하겠습니다.
    • 2008년 04월 10일 13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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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대씨, 우리 직원들로부터 이야기 많이 듣고 있습니다.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우리 PR계에 많은 업적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축하 감사합니다.
  2. 2008년 04월 09일 01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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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님 안녕하세요. 블로그 오픈 축하드립니다. 사용하고 계신 블로그 소프트웨어인 텍스트큐브 개발사인 태터앤컴퍼니 홍보팀의 이미나입니다. 처음 홍보를 시작할 때 사장님께서 저술하신 책들을 보며 공부했었습니다. 이렇게 블로고스피어에서 뵙게 되서 정말 기쁩니다. 자주 찾아 오겠습니다.
    • 2008년 04월 10일 13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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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십니까. 직원들의 도움으로 시작은 했지만 아직도 배워가고 있습니다.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3. 2008년 04월 09일 04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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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해 사장님~ 안녕하세요.
    예전에 신인섭 교수님 소개로 CK에서 인턴했던 서재민이라고 합니다.
    블로그 개설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자주 놀러오겠습니다.
    건강하세요.
    • 2008년 04월 10일 13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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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민씨, 감사합니다. 저희 회사 인턴이셨군요. 어디에서나 우리 직원들을 만나면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4. 2008년 04월 09일 13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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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님께서 조아라 하시는 봄이 되었습니다. :) 어제 정원에서 꽃을 심고 계시더군요. 비즈니스 할 때의 샤프한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일상에서도 자주 뵙지만 블로고스피어에서 뵙는 사장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실지 기대가 되네요. 자주 놀러오겠습니다. 건강하세요.
    • 2008년 04월 10일 13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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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5. 부산댁
    2008년 04월 09일 15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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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님..블로그 오픈 축하드립니다..
    사장님 팬분들이 많으십니다..^^
    도움이 되는 글들 많이 읽고 몸에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들게 하는 장입니다..
    사장님..배려로 일본 워크샵도 잘 다녀왔습니다..
    짱님이 빠지셔서..조금은 서운했습니다..^^;;
    다음에는 전직원이 함께 할 수도 있었음 합니다...
    • 2008년 04월 10일 1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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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하게 잘들 다녀왔으니 좋습니다. 더욱 힘내서 잘 해 봅시다.
  6. prholic
    2008년 04월 09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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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도 힘든 블로그를 이렇게 오픈하시고, 좋은 글 올려주심 감사합니다. 다치시고는 한번인가, 밖에 회사에서 못뵈었어요. 종종 4층에 올라오셔서 격려의 말씀해주시고, 새까만 후배이자, 직원들 야단도 쳐주세요...
    그리고, 정말로 다음번 워크샵에는 함께 했으면 해요...
    • 2008년 04월 10일 1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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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7. 2008년 04월 10일 14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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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저는 에델만에서 근무하고 있는 황상현이라고 합니다.

    김경해 사장님 블로그 오픈 축하드립니다. '생생한 PR현장 이야기'는 제가 광고회사에서 PR회사로 넘어올 수 있는 계기가 된 소중한 책입니다.

    무례함을 무릅쓰고, 저자 사인을 받으러 CK에 한번 찾아뵙으면 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 2008년 04월 10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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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델만에서는 블로그들을 열심히 하시는군요. 반갑습니다. 황상현씨.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좋습니다.
  8. mark
    2008년 04월 11일 14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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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님의 인기와 PR에 대한 열기가 훌훌 타오르는 것 같습니다. 이제 블로그를 통해 어디서든지 사장님의 큰 생각을 볼 수 있으니 너무나 기쁩니다. 지금처럼 CK직원들 잘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2008년 05월 08일 16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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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대리, 뒤늦게 댓글을 접하게 되어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정부사장이 CK에 다시온 이후 장대리의 얼굴모습이 활짝 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직원들이 똘똘뭉쳐서 PR의 전문인이 되기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계속 열심히 대화나누고 CK를 한국최고의 PR 전문집단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힘을 모아봅시다. 감사합니다.

PR회사의 주요간부들은 시간당 청구 금액 (hourly rate)이 있다. 일반적으로 시간 당 청구 금액은 급료와 근무시간 근무일과 직급 등을 고려하여 금액을 정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나 이 금액은 상당히 주관적인 차원에서 결정이 된다.




저자는 시간당 청구 금액을 US$350으로 정해 두고 있다. 이 금액을 인정해 주는 몇몇 관대한 고객도 있지만 다른 고객들은 너무 비싸다고 불평하면서 깍아 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월 고정금액(retainer fee)을 받는 고객과 단순히 한두번 프로젝트로 하는 고객사이에도 시간당 청구금액을 달리 하는 것은 당연하기에 여러 가지 경우에 따라 그 청구 금액이 달라질 수 있다. 필자가 만난 한 나이 지긋한 미국인 컨설턴트는 시간 당 청구금액이 $50,000라고 하였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천문학적인 시간 당 청구금액을 갖고 있는지 큰 호기심을 갖고 그를 만나게 되었다. 겉보이기에는 평범한 한 노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한 한국기업의 인수․합병(M&A)과 관련된 업무를 돕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였고 필자의 회사도 그 일에 관여하고 있었기에 그 미국인 컨설턴트의 방한 첫날 저녁을 같이 하게 되었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고 서로 친밀한 분위기가 성숙했을 때 필자가 그 외국인 노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한시간에 50.000US달러를 청구한다고 하는데 고객이 그것을 인정해주는가?” “김사장,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이 시간당 50,000US달러를 지불하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야 되는지 말로 표현 할 수 없소.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고객에게 10배, 20배되는 가치를 창출해주지 않으면 이런 딜(deal)은 불가능한 것이요.“




시간당 청구 금액은 가장 핵심 전략회의나 실제 상대방과의 가격협상에 참여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하며 그 나머지 미국에서 한국까지의 비행시간, 호텔에 머무는 시간, 왕복교통시간, 식사시간 등은 청구를 하는 시간에서 제외된다. 변호사 친구와 얘기를 한참 하다가 “지금부터 자네와 하는 대화시간은 청구된다”는 얘기를 들은 경험이 있는 분들은 변호사나 컨설턴트들의 청구시간에 대해 정확한 개념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 프로젝트가 다 끝난 후 그 노인은 실제 회의에 참석한 시간을 1주일 서울 체류 동안 10시간으로 청구했다고 한다. 10시간이면 500,000 달러를 청구한 것이다. 약 6억 이다. 10시간에 6억이라는 청구 금액을 받았을 때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면서 “이 날강도 같은 X"라고 욕이라도 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이다. 그러나 그 고객은 기꺼이 500,000달러에다 실경비(OOPs : Out of Project Expense, 호텔과 식대 및 항공료 등의 비용)를 영수증대로 정산해 주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 많은 금액을 지불하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즐거운 마음으로 지불 할 수 있단 말인가?

500,000$를 청구했으나 상대회사와의 가격 협상에 있어서 그 노인의 전문적인 자문에 힘입어 그 회사는  최소한 50억은 더 받게 되었다고 한다.

6억을 투자하여 50억을 벌게 해 주는 것이 컨설턴트의 세계인 것이다. 이 경우 이 노인의 시간 당 청구 금액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계산 할 수 있겠는가? 어느 정도의 기준은 있겠지만 이 노인은 적어도 나의 컨설팅의 가치는 1시간에 $50,000이라고 주장하고 고객이 그 것을 인정해 줄 때 성립되는 것이다.




에드워드 버네이스도 나이 98세(1990년)에도 시간당 청구금액이 1,000US달러였다고 하니 그노인의 두둑한 배짱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우리 PR인들도 시간당 청구 금액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또 고객이 그 금액을 인정해주게 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고객이 기꺼이 시간당 청구 금액을 인정해 줄 때 고객과 PR회사간의 신뢰는 더욱 두터워 지고 PR회사는 고객을 위해 돈을 더 벌 수 있게  매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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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Y
    2008년 04월 09일 16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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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같은 수요일입니다. 투표하기에 딱!이라는 비오는 날씨인데, 해물파전 생각나는건 저만일까요?:)
    어제 CK정원손질에 비지땀을 흘리시는 사장님을 우연히 뵙고 인사드렸었던 김인턴입니다.
    CEO 블로그 오픈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많이 배우겠습니다~:)
    • 2008년 04월 10일 13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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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생이 많습니다. 고맙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후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악의 축’에 비유하는 발언이 나오면서 한반도의 긴장관계가 고조되던 시점이었다. 군사전문가이면서 현재는 로비스트(lobbyist)로서 미국의 한 기업을 도와주고 있는 연세가 지긋한 미국인을 사업상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 핵과 관련된 북한 상황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한 후 북한의 핵과 관련해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중국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이 핵으로 무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으니 남한은 한반도의 핵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중국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그 전문가는 분석하였다. 북한이 핵으로 무장하고 되면 일본이 핵으로 무장하고 일본이 핵으로 무장하게 되면 남한도 그냥 있지 않을 것이니 동북아가 핵지뢰밭이 될 것이 틀림없기에 중국은 이러한 불행한 사태를 원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 전문가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악의 축’ 이라고 부른 것에 대해 집중적인 질문이 있었다.




“부시 대통령 머릿속에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서 굉장히 뿌리깊은 선입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부시대통령이 여러정보 채널을 통해 김정일위원장에 대한 독자적인 평가를 갖고 있겠지만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심어준 부분도 크게 작용하였다” 상당히 새로운 이야기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아버지 부시가 CIA국장과 부통령을 지낼 때 아들 부시는 잘 알려진 것 처럼 별로 좋은 아들이 아니었다. 마약과 알콜과 관련된 스캔달이 있는 아들을 불러놓고 나무라는 흔한아버지를 쉽게 연상 할 수 있다. 몇 번이나 아들을 불러 놓고서 좀 착한 아들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아들과 같은 사람(김정일)이 되려고 하느냐?”고 다그쳤다는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여러 번의 충고에서 아들 부시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하면 악의 모델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어서 ‘악의 축’이라는 발언이 나오게 된 발단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었다.




저자도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이런 주입식 교훈을 들은 적이 있다. ‘호랑이나 사자의 입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람의 입이다 호랑이나 사자는 직접 공격해서 물어대는 사람에게만 피해를 주지만 사람의 입은 한번 잘 못 말하게 되면 너무나 많은 주위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더욱이나 그 말하는 사람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을 때는 전 국민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말 한마디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은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저자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두 번 세 번 생각해서 신중하게 하면서 세상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부모가 자식에게 아무 사심 없이 얘기해주는 체험적이고 교훈적인 이야기들은 그 파장이 크다.




많은 사람들은 어릴 때 부모들이 들려준 교훈적인 이야기에 직 ․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살고 있기에 부모는 자식들에게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그들이 평생 살면서 교훈으로 간직 할 만한 메시지를 개발하여 효과적으로 자식들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부모역할을 잘 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집안에 두 명의 대통령이 탄생한 명문가. 그 아버지가 그 아들에게 던진 많은 메시지가 그 아들까지도 미국의 대통령이 되게 만들었지만 아버지가 단순히 더 좋은 아들이 되라고 비유해서 설명한 것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까지 발전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간의 역사는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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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를 움직인다는 미국 맥그로 힐에서 발행하는 비즈니스.위크(Business Week)지에 한국 관련기사가 나오면 자주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의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직접적으로 대우와 관련된 경우에는 당연히 나타나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경우도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형식의 인용문으로 김회장이 등장하는 것이다. 한국의 비즈니스계와 관련해서는 김우중 회장이 압도적인 비중으로 인용되거나 직접 기사로 다루어 져 대우그룹의 국제 신인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저자가 1983년 한국최초로 영문 경제지 비즈니스 코리아(Business Korea)를 발행을 시작하였을 때 그 모델이 비즈니스 위크였다. 그래서 잡지 제호도 비슷하게 지었다. 그때 한 네팔국적의 청년이 기자로 응모하였다. 우리말에 능통하고 경제에 대한 지식을 아주 폭넓게 갖춘 청년이었는데 그의 설명에 의하면 네팔에서 언론인 생활을 하다 정치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써서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에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능력을 검증해 보기 위해 몇 가지 상황을 가상해서 영문기사를 한번 써 보라는 숙제를 내 주었다. 그 기사는 A+ 기사였다. 그래서 그를 채용하게 되었다. 그 기자는 락스미 나까미(Laxmi Nakarmi)였고 상당히 오래 같이 일 하면서 편집국장으로까지 승진하였다. 그때 락스미 편집국장은 비즈니스 위크의 스트링거(stringer)일도 겸하게 되었다. 비즈니스 코리아 업무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비즈니스 위크를 위해 종종 기사쓰는 것은 권할만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비즈니스 위크에서 제공해 주는 정보와 기사를 쓰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의 전문적인 견해가 비즈니스 코리아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때 락스미씨는 취재를 위해 대우의 김우중 회장을 자주 만나게 되고 김회장은 락스미씨를 따뜻한 마음으로 돌봐 주었다. 비즈니스 위크는 기자들이 지켜야할 투철한 윤리 기준이 있었기에 그 범위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서로 친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재벌총수와 인터뷰하게 되면 소위 “촌지”라고 해서 봉투하나 받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으나 외신기자들은 그들의 내부 윤리규정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락스미씨도 저자와의 대화에서 대우 김회장 비서실에서 건 낸 흰 봉투하나를 받았으나 그 안에 돈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4번씩이나 서로 주고 돌려보내고 해서 결국은 돌려보냈고 대우 비서실에서도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후 김회장은 돈이 아닌 따뜻한 인간적인 배려로 락스미씨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다. 사실 외신기자들은 이 낯설고 물 설은 한국 땅에서 계속해서 좋은 기사를 써야한다는 부담을 안고 힘들게 하루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말 한마디만 따뜻하게 해줘도 고마운데 우리나라 최고 재벌 총수인 김회장 같은 분이 조금만 마음을 써줘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락스미씨는 비즈니스 코리아에서 사내 결혼을 하였다. 이대 정외과를 졸업한 여자기자와 결혼식을 힐튼호텔에서 거행하였다. 그때 김우중 회장이 직접 참석하기도 하여 그 친분 관계가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락스미씨의 얘기에 의하면 사람의 손이 안으로 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이슈에 대해 재벌 총수의 인용을 집어 넣어야 할 경우 다른 총수들에게 접근한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 었으니 가장 쉽게 접근하고 항상 협조적인 김우중회장의 얘기가 나 올 수밖에 없더라는 것이다.



 

광고도 아닌 객관성이 생명인 기사 속에 자주 김우중 회장의 이름이 나오고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 기사에서 김우중 회장을 대하게 되면 그것이 대우에 미치는 광고효과는 천문학적이다. 몇 번은 대우 김우중 회장을 표지의 인물로 정해서 커버스토리로 기사화 되기도하여 비즈니스 위크가 대우의 김우중회장을 세계적인 인물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세계경영을 하는데 있어 세계적인 경제잡지의 지원을 받을 수 만 있다면 받아야 한다. 대우 김회장의 이런 발빠른 움직임을 이해한 비서실과 기획실의 간부들도 락스미씨와 자주 등산도 가고 그와 비공식적인 모임을 가져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외신기자들과 친해져 비윤리적이지 않는 범위에서 그들을 감동시켜 더욱더 많은 우호적인 기사가 나올수 있다면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것이다. 홍콩에서 발간되는 파.이스턴.이코노믹 리뷰(Far Eastern Economic Review)지의 심재훈 서울 지국장은 일본기업과 한국 기업의 외신기자 다루는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얘기하는 것을 저자가 직접 들었다. “일본기업은 외신기자들의 정보 요구에 융단 폭력을 하고 있으나 우리 기업들은 외신기자가 전화 걸기만 하면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 있어서 접촉하는 줄  알고 사시나무 떨뜻이 떨고만 있다.”




외신기사들을 분명한 윤리기준을 갖고 있기에 좋은 기사를 써서 높이 평가받아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다. 그때 그들을 가끔 따뜻이 대해주고, 기자회견시에도 그들을 위해 따로 사내에서 영어 잘하는 사람을 시켜 영문보도 자료를 준비한다든지 임원들이 구체적 상황을 영어로 설명하게 해주면 그들이 힘들게 한국 신문에 난 것을 번역하지 않아도 되고 또 영자신문에서 그대로 인용하지 않아도 되기에  그들은 아주 고마워하게 된다. 이 지구촌 시대에 외신이 어떻게 보도하는지가 이제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외신의 보도는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김우중회장에 대한 평가는 각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업인으로서 외신기자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역할을 하고 나선 것은 높이 평가 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비록 대우뿐만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의 신뢰도를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김회장은 미국 방문시도 비즈니스 위크나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의 고위 편집국간부들과 식사를 자주 하였다. 언론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소에 투자해둬서 그들을 “동맹국”으로 만드는 (ally-building)작업이 중요하다. 어려울 때 S.O.S를 친다고 먹히지 않는 것이 언론계의 현실이다. 이 모든 언론대응법을 완전히 터득한 김우중 회장은 지금 현재 해외를 떠돌아 다니면서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지금 과거에 그 화려했던 시절을 비즈니스 위크의 과거 잡지를 훓어보면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과 코멘트가 다 기사화 된 것을 보면 과연 어떤 심정일까? 아마 쓴 웃음을 지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거기서 강력한 하나의 메시지를 얻을수 있다. “외신기자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못하는 기업총수는 CEO의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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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현장 24시는 항상 긴장감이 고조된다. 문제가 있는 곳에는 PR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저자와 친하게 지내온 홍콩의 한 PR회사의 대표가 “삼호의 조봉구씨를 아느냐? 조봉구씨가 김대중 정부를 통해 과거의 억울한 사연을 세상에 알리려고 하는데 법적인 일과 대미관계는 미국에서 담당할텐데 한국의 언론에 그 실상을 알리는 일을 좀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아파트붐 초기 방배동의 삼호 아파트를 지었고 중동진출을 하여 삼호의 이름을 국내외에 떨치다가 어느날 갑자기 소리없이 사라진 삼호건설의 창업자 조봉구씨! 1997년의 어느 봄날 아침, 시중에서는 조봉구씨가 사라진 것을 하나의 미스테리로 여기고 있었고 저자도 언론인으로서 의문투성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참에 조봉구씨 사건을 접한다는 호기심반, 평소 저자의 회사에 꽤 많은 비즈니스를 연결시켜줬고 오랜 기간 사귄 친분 반으로 그의 부탁을 수락하고 일에 착수하게 되었다.




조봉구씨는 서울 강남에 부동산 개발붐이 한창이던 70년대 무렵, 부동산 업계에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테헤란로 주변의 역삼동, 도곡동, 방배동 일대에 수백만평의 땅을 소유하였고, 강남 일대는 물론, 제주도 땅까지 근 백만 평이나 소유하고 있어 한국 최고의 부동산 재벌로 뽑혔으며, 그가 살던 방배동 집은 국내 재산세 1위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1974년 건설업체 삼호를 설립하였으며, 강남 일대에 자신의 땅에 1천 세대 이상의 대규모 아파트를 지었다.




저자는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여러 사정들을 밝힐 자료도 없을뿐더러 그런 의도도 없다. 다만 5공 군사정권 때 일이기에 입도 뻥긋하지 못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후 이제 때가 되었다고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그 문제를 ‘정의’(justice)차원에서 규명하고 조봉구씨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고 나선 사람은 미 국무성의 고위 공무원 제프 씨브라이트(Jeff Seabright)씨, 그는 조봉구씨의 딸 조영애씨의 남편이었다. 로스앤젤리스에 있는 씨브라이트씨의 법대 동창이 운영하는 대형 법률회사에서 LA카운티 수피리어 코트에 대림건설등을 상대로 20억 달러 상당의 재산 반환 청구에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을 요약하면 삼호 건설의 조봉구 회장은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을 하자마자 삼호는 부실기업 정리 대상에 올라 모든 재산을 몰수당한 후 1984년에 사라져버렸다. 그 이후 그의 동정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죽은 줄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랬던 그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가슴에 묻어둔 할말을 하고 진실을 백일하에 드러내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는 로스앤젤리스와 워싱톤의 한국 특파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삼호가 부실기업이었다면 주거래 은행에서 부도를 내고 기업주를 구속하는 게 정상적인 절차인데, 이런 절차도 밟지 않고 하루아침에 삼호를 타 기업에 넘긴 것은 위법이라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삼호가 합병한 것은 예정된 각본에 따른 것으로, 은행을 통해 삼호에 자금압박을 가한 뒤 강제로 위임장을 받았다고 말했다.




저자는 월간조선의 한 탐사기자가 로스엔젤리스에서 조봉구씨를 만나 인터뷰하는 것을 주선하였다. 그 기자는 취재 후 아주 긴 원고를 작성하였으나 어찌된 사연인지 월간조선에 기사가 게재되지 않았다. 다시 시사저널의 기자를 접촉하여 저자회사의 부사장과 같이 로스엔젤리스의 조봉구씨를 인터뷰하였다. 그 결과 3페이지에 달하는 심층보도가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1984년에 일어날 일들을 13년이 지난 시점에 문제제기는 언론의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로스엔젤리스에서 조봉구씨를 만난 두기자에 의하면 조봉구씨는 정말 어렵게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는 겨우 17평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으며, 미국 정부가 주는 연금을 받아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정은 시사 저널과 로스앤젤레스 특파원들이  인터뷰한 내용으로 신문에 기사화 되면서 그의 억울했던 과거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저자의 관심은 그 사건 자체보다는 조봉구씨의 기막힌 인생역정이 더 큰 관심사였다. 한국최고의 갑부였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서 미국 정부의 연금을 받으면서 17평의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면 아마 자살을 생각 할 수도 있지 않았을 까 생각해봤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여 생활하는 법을 잘 터득한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두 한국 기자들의 로스앤젤리스 방문 후 저자는 조봉구씨의 사위인 씨브라이트와 딸 조영애씨를 만나기 위해 워싱톤을 방문하였으며 그때 조봉구씨도 워싱턴으로 오게되어 조봉구씨를 만나게 되었다. 어떻게 모습이 변했고 그 기막힌 인생역정을 어떻게 견디어 냈을 까하는 호기심으로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차분히 과거 얘기도 하면서 긴박했던 1984년을 털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분명 악에 북받친 사람이 아니고 편안한 마음으로 큰 용광로에 증오와 분노를 녹이면서 그 기막힌 사연을 남의 얘기처럼 얘기하였다. 그에 비하면 그의 사위인 씨브라이트씨는 정의(justice)는 살아있다고 강조하면서 장인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이 그의 사명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것이었다. 조봉구씨는 처음 딸이 미국인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별로 찬성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미국인 사위가 한 노인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앞에 나서게 된 지금 저 노인의 마음에는 만감이 교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R인이 과연 이런 일에도 개입되어야 하는가? 이일을 맡으면서 PR인의 서비스 범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고객이 정당한 주장을 할 때 그 ‘진실’을 밝히는 작업에 PR은 분명 그 역할을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정리를 하게 되었다. 약 6개월 동안 이 사건과 관련 PR업무를 하였고 그 이후는 예산상의 문제로 로스엔젤리스에 있는 법률 회사가 소송을 진행하고 저자의 회사는 손을 떼게 되었다. 이 법률 회사도 소송에서 이기는 경우에 ‘성공불’(success fee)을 받는 조건이었다고 하였다. 그 이후 소송이 어떻게 결론났는지 정보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인간 조봉구씨와 몇시간을 지내면서 저자가 느낀 생각은 또 다른데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은 후의 조봉구씨. 그는 불운하였지만 현재 불행하지 않고 오히려 더 높은 행복지수를 누리고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재벌로서 매일 무거운 짐 속에서 편안한 날이 없는 ‘무거운 짐 진자’의 생활을 보내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새로운 삶은 사는 조봉구씨. 얼굴모습에서 분명 그는 다 잃어 버린자가 아니었고 많은 것을 얻은 자의 모습이었다.




지금 조봉구씨는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살아있다면 84세의 노인으로 미국 정부의 연금을 받으면서 작은 아파트에서 과거를 잊고 조용히 인생을 관조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무거운 짐을 버리고 최고의 “행복지수”를 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조사를 보니 행복 지수는 GNP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질적으론 가난하지만 정신적인 만족감이 큰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 1위, 필리핀이 세계 5위, 대한민국이 24위 미국과 일본이 훨씬 뒤에 있다고 한다. 지금도 아마 17평 아파트 주위를 바쁘게 산책하고 있다면 그의  행복지수는 상당히 높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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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장, 이사실은 전세계에서 8명만 알고 있는 일이오. 당신이 그 8명안에 들어 있으니 얼마만큼 보안을 철저히 해야 되는 일인지 알겠죠.”


2001년 10월말 어느날 새벽2시경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 케피탈(New Bridge Capital)을 자문해주고 있는 미국인 컨설턴트인 모리씨가 제일은행장 월프레드 호리에씨의 전격적인 경질이 곧 있을것이라고 알려주고 거기에 관한 전략을 상의하기 위해 걸은 국제전화였다. 이틀 있으면 제주도에서 국내주요신문사들의 논설위원과 방송사의 해설위원을 대상으로 제일은행의 앞으로의 사업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서강대학교 김병주교수가 금융산업의 국제화에 대해 강연도 하고 또 그 이후에는 신선한 제주회를 즐길시간이 마련되어 모든 확인 작업과 호텔과 항공기예약이 완벽하게 다 끝난 시점에서 갑자기 걸려온 전화는 무척 당황스러운 내용이었다.



“호리에행장, 새로 취임할 코헨 행장, 나와 당신의 4명을 제외하고서 뉴브리지의 최고책임자들 4사람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 당신 부인에게도 이 이야기는 건네면 안 됩니다. 서울에 있는 제일은행내의 누구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지금부터 여기에 관한 이야기는 당신과 내가 오로지 국제전화를 통해서 일을 진행 시킬테니 잘 협조해주기 바랍니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새벽2시에 걸려온 전화는 청천 벽력같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우선 일차적으로 제주도 세미나는 그래도 진행하는데 합의하였고 세미나에 참석할 논설위원들에게 엠바고(embargo)를 부쳐서 그 내용을 알려 줄것인지, 말 것인지 아니면 off-the-record 로 정보를 줄 건인지가 주요 현안이었다. 우리 둘은 쉽게 행장교체에 대한 내용을 제주도에서는 일체 밝히지 않으며 공식 발표 후에 세미나에 참석한 논설위원들과 해설위원들에게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때 미리 알려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 사과의 편지를 보내도록 결정했다.




제주도 세미나에는 제일은행의 홍보부장, 부행장과 주요 임원들이 참석했다. 원래 세미나 첫날 호리에 행장이 참석하게 되어 있었으나 마지막순간에 참석을 못하게 되었다고 알리고 그때까지 미국에 머물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임원들이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느끼고 그간 저자가 뉴브리지의 본사와 깊이 업무를 진행해온 것을 알고 저자는 뭔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목을 조여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집사람에게도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으니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뭔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들을 멀리하고서 호텔방에 들어와 다시 미국에 전화를 해서 발표할 보도자료내용을 팩스로 서로 주고받으면서 최종정리를 하고 호리에 행장과 신임 코헨 행장의 기자회견에 대해서 전체적인 진행을 협의하였다. 그 이튿날 공식 보도자료가 나가고 기자회견까지 진행되니 제일은행임원과 그때 같이 갔던 몇몇 언론인들은 저자를 원망하면서 섭섭하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해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호리에 행장의 1년 10개월은 막을 내리게 되고 코헨 행장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1년 10개월 동안 호리에 행장은 무척 많은 일을 하였다. 호리에 행장 취임 초기 뉴브리지의 컨설턴트 모리씨가 한국에 와서 저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롯데호텔 커피숍에서 차 한잔하자는 전갈이 와서 나가니 예상치도 못하게 그 자리에는 호리에 행장이 나와있었다. 행장으로서의 계획과 앞으로 역점을 두고 진행할 사업과 몇몇 언론들이 외국자본에 대해 비우호적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좀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후 계약이 급속히  진행되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두 번째 만남은 호리에 행장 방에서 이루어졌으며 배석자 없이 단 둘이 만나게 되었다. 만나자마자 제일은행 카렌다가 걸려 있는 곳으로 저자를 안내하면서 카렌다 안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일반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이 은행달력에 들어가는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국민학생들이 그린 것 같은 아주 아마추어적인 그림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는 “김사장, 내가 부임 초기 카렌다 제작하는 일반관례를 이야기 들어보니 유명화가들에게 의뢰하여 비싼돈을 주고서 그림을 구입해서 카렌다에 그림을 넣고 그리고 그 그림들을 정부나 다른 쪽에 선물하는 것을 보고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소. 그리고 어느 날 직원들의 자녀들중 그림에 재주가 있는 소년, 소녀를 모아서 그림을 그리게 하고 전문가가 12개를 뽑아서 이렇게 카렌다가 된 것입니다. ” 놀라운 일이다. 화가에게 그림을 부탁하면서 많은 돈을 쓴 것을 절약했고, 정부나 다른 쪽에 그 그림을 일종의 뇌물로 바치는 부패의 고리를 차단하였고, 또 직원들이 이제 우리 아들, 딸의 그림도 은행 카렌다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여 애사심을 높인 그 조치들은 돈으로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직원들과 고차원적인 커뮤니케이션(employee communication)을 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PR인들도 쉽게 생각하지 못한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기법이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2001년 호놀룰루 마라톤대회에 단체로 참가한 호리에 행장과 제일은행직원들의 이야기이고 그때 참석한 직원들은 호놀룰루마라톤대회를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에 비유하기도하였다. 제일은행이 많은 문제를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