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인의 용어사용
PR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단어 하나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순간이 많이 있다. 최근 미국 정부에서 구제금융법안(Bailout Bill)에 관한 표현을 할 때 처음에는 ‘bailout(구제)’이라는 용어를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Rescue(구조)’라는 표현으로 바꿔 쓰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Bailout’ 이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을 구제해 준다는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음을 미국 정부에서도 인식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현재 비슷한 금융위기 상황을 겪고 있는데, 미국정부에서 이렇게 새로운 표현을 찾아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이 우리 정부보다 정책홍보를 잘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나라의 PR인들도 이와 같은 자세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본인이 오래 전 강연을 나갔던 한국가스안전공사에서는 배관 ‘폭발’이라는 표현 대신에 배관 ‘파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가스공사의 경우 배관이 파열되면 ‘폭발’이 잇따르게 되지만 그 규모 및 피해여부를 떠나 항상 ‘폭발’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와 불안감을 조성하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공사에서 상황에 알맞게 적절한 용어를 사용한다면 불필요한 언론의 확대보도 또는 사회불안을 막을 수 있다. TV뉴스에서 headline news로 ‘폭발’이라는 단어가 사용될 경우와 ‘배관파열’이라는 단어가 사용될 경우에 국민들이 느끼는 반응은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또한, 분야는 다르지만 외교분야에서 있었던 일화를 꼽을 수 있다. 김용식 전 외교부 장관은 본인이 운영하던 PR교실의 초빙강사로 왔을 때 과거 일본의 문화재 반환을 놓고 한일 외교당국간에 벌어졌던 신경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당시 우리측에서는 일본이 빼앗아간 문화재를 돌려받는 것이니 ‘반환한다(return)’라는 용어를 쓰자고 주장한 반면 일본측에서는 ‘기증한다(present)’는 표현을 고집했다고 한다. 물론 양측은 국보급을 제외한 상당부분의 문화재를 돌려 준다는 내용에는 합의하고 있었고 단지 외교문서 상의 표현문제 때문에 밀고 당기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3일간에 걸쳐 벌어진 마라톤회의와 설전은 마지막 날 한 젊은 외교관의 제안을 통해서 비로소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즉 영어로는 ‘인계(hand over)’라는 표현을 쓰고 각자 자국 정부 및 언론에 발표 할 때 일본은 외무성 기자실에 가서 일본이 ‘기증한다(present)’고 그 의미를 설명하고 한국은 외무부 기자실에 가서 일본이 반환하기로 했다고 설명하는 묘수를 발견하니 외교현안이 단숨에 해소되었다는 것이다.
위기발생시 기업이 ‘사과한다(apologize)’라는 단어를 선택할 때는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한 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사과한다고 공식발표를 했을 경우 법적인 책임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사과한다는 표현의 장단점과 그 당시 상황을 치밀히 분석한 후 기업의 전체적인 실수가 인정될 때 사과한다는 표현을 하게 된다. 사과가 아닌 경우 tone이 좀 약한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고 특히 외교 분야에서는 사과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유감(regret)표명’을 고려한다. PR인들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한 우리의 고객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단어 하나의 선택에도 많은 고민을 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