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어느 봄날, 점심 후 나른한 봄기운을 내 쫒기 위해 시원한 곳에서 저자의 회사의 강형석 부회장(전 서울신문 기자, 주 수단, 말레이지아 및 덴마크 한국대사관 공보관, 국무총리 공보비서관)과 마주앉게 되었다.
언론계 선배로서 해외공보관으로서 외국에서의 많은 시간을 보낸 분이라 재미있는 PR관련 에피소드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얘기를 유도하였다.
한참과거의 경험담을 털어놓다가 말레이시아 공보관시절 전두환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하였을 때의 아웅산 사태를 얘기하는 것을 듣고 PR현장은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정도로 살벌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때 미얀마에는 공보관이 없었기에 대통령이 미얀마 방문 약 한 달 전부터 말레이지사 공보관이었던 강부회장이 현지에 파견되어 그 쪽 언론인과의 관계를 강화하였다고 한다. 한 달 동안의 치밀한 언론관계로 상당히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청와대 공보수석과 아침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 그간 미얀마에서 한 일들을 짧게 요약해달라는 공보수석의 요청을 받고 강부회장은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웅산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미리 기자들이 아웅산 국립 묘지에 가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기에 강공보관이 그 자리에 가서 사진기자들이 사진 찍을 장소를 미리 정하고 모든 점검을 확인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종이 한 장정도로 요약해야되는데 쓰다보니 2장으로 넘어가서 약간 길어져서 그때까지 끝내지 못 하게 되었다. 이것을 본 청와대 공보수석은 원래 이순자 여사를 수행하기로 된 청와대 공보차석을 아웅산으로 가게하고 강공보관은 쓰고 있던 보고서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순자 여사를 수행하게 일정을 바꾼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아웅산으로 간 청와대 공보차석은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강공보관은 그때의 상황을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얘기하면서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저자는 아웅산 사태 이후 재무부차관으로서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했다 목숨을 잃은 분의 부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의 설명에 의하면 전두환 대통령은 수시로 집으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하고 딸, 아들이 결혼할 때는 꼭‘축의금’을 전달하고‘내가 너희의 아버지’라고 격려하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 전두환 대통령의 따뜻한 인간미를 접하기도 하였다.
그때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내각이라고 할 정도로 드림팀이었다. 너무나 환상적인 콤비들이었기에 조물주가 시기가 나서 그런 사건이 벌어지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 정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 사건이 터지자 서울에서는 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어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우선 기사를 써야하는데 당장 객관적으로 입증할 아무 자료가 없었고 심증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 ‘북괴의 만행으로 보이는....’정도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누구도 그 상황에서 정확한 근거를 갖고 기자들에게 브리핑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1분1초를 다투는 것이었다. 이 국가적인 비극을 보도해야 되는 언론과 정확한 범인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의 대 언론 발표 책임자와의 관계에는 서로의 이해 관계가 다르기에 큰 긴장감과 경계심이 조성되게 되어 있다. 그때 누군가 “ 북괴의 소행으로 보이는....”이라고 브리핑을 한다면 언론의 갈증은 해소되고 전단 제목이 하나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추측이 맞아들어가지 않았을 경우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너무도 끔찍해서 생각하기조차 싫은 것이다. 이와 같이 PR현장은 항상 긴장이 고조되고 큰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나가는 하나의 인생살이와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봄날의 나른함을 이기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