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장, 이사실은 전세계에서 8명만 알고 있는 일이오. 당신이 그 8명안에 들어 있으니 얼마만큼 보안을 철저히 해야 되는 일인지 알겠죠.”
2001년 10월말 어느날 새벽2시경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 케피탈(New Bridge Capital)을 자문해주고 있는 미국인 컨설턴트인 모리씨가 제일은행장 월프레드 호리에씨의 전격적인 경질이 곧 있을것이라고 알려주고 거기에 관한 전략을 상의하기 위해 걸은 국제전화였다. 이틀 있으면 제주도에서 국내주요신문사들의 논설위원과 방송사의 해설위원을 대상으로 제일은행의 앞으로의 사업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서강대학교 김병주교수가 금융산업의 국제화에 대해 강연도 하고 또 그 이후에는 신선한 제주회를 즐길시간이 마련되어 모든 확인 작업과 호텔과 항공기예약이 완벽하게 다 끝난 시점에서 갑자기 걸려온 전화는 무척 당황스러운 내용이었다.
“호리에행장, 새로 취임할 코헨 행장, 나와 당신의 4명을 제외하고서 뉴브리지의 최고책임자들 4사람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 당신 부인에게도 이 이야기는 건네면 안 됩니다. 서울에 있는 제일은행내의 누구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지금부터 여기에 관한 이야기는 당신과 내가 오로지 국제전화를 통해서 일을 진행 시킬테니 잘 협조해주기 바랍니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새벽2시에 걸려온 전화는 청천 벽력같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우선 일차적으로 제주도 세미나는 그래도 진행하는데 합의하였고 세미나에 참석할 논설위원들에게 엠바고(embargo)를 부쳐서 그 내용을 알려 줄것인지, 말 것인지 아니면 off-the-record 로 정보를 줄 건인지가 주요 현안이었다. 우리 둘은 쉽게 행장교체에 대한 내용을 제주도에서는 일체 밝히지 않으며 공식 발표 후에 세미나에 참석한 논설위원들과 해설위원들에게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때 미리 알려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 사과의 편지를 보내도록 결정했다.
제주도 세미나에는 제일은행의 홍보부장, 부행장과 주요 임원들이 참석했다. 원래 세미나 첫날 호리에 행장이 참석하게 되어 있었으나 마지막순간에 참석을 못하게 되었다고 알리고 그때까지 미국에 머물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임원들이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느끼고 그간 저자가 뉴브리지의 본사와 깊이 업무를 진행해온 것을 알고 저자는 뭔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목을 조여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집사람에게도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으니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뭔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들을 멀리하고서 호텔방에 들어와 다시 미국에 전화를 해서 발표할 보도자료내용을 팩스로 서로 주고받으면서 최종정리를 하고 호리에 행장과 신임 코헨 행장의 기자회견에 대해서 전체적인 진행을 협의하였다. 그 이튿날 공식 보도자료가 나가고 기자회견까지 진행되니 제일은행임원과 그때 같이 갔던 몇몇 언론인들은 저자를 원망하면서 섭섭하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해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호리에 행장의 1년 10개월은 막을 내리게 되고 코헨 행장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1년 10개월 동안 호리에 행장은 무척 많은 일을 하였다. 호리에 행장 취임 초기 뉴브리지의 컨설턴트 모리씨가 한국에 와서 저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롯데호텔 커피숍에서 차 한잔하자는 전갈이 와서 나가니 예상치도 못하게 그 자리에는 호리에 행장이 나와있었다. 행장으로서의 계획과 앞으로 역점을 두고 진행할 사업과 몇몇 언론들이 외국자본에 대해 비우호적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좀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후 계약이 급속히 진행되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두 번째 만남은 호리에 행장 방에서 이루어졌으며 배석자 없이 단 둘이 만나게 되었다. 만나자마자 제일은행 카렌다가 걸려 있는 곳으로 저자를 안내하면서 카렌다 안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일반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이 은행달력에 들어가는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국민학생들이 그린 것 같은 아주 아마추어적인 그림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는 “김사장, 내가 부임 초기 카렌다 제작하는 일반관례를 이야기 들어보니 유명화가들에게 의뢰하여 비싼돈을 주고서 그림을 구입해서 카렌다에 그림을 넣고 그리고 그 그림들을 정부나 다른 쪽에 선물하는 것을 보고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소. 그리고 어느 날 직원들의 자녀들중 그림에 재주가 있는 소년, 소녀를 모아서 그림을 그리게 하고 전문가가 12개를 뽑아서 이렇게 카렌다가 된 것입니다. ” 놀라운 일이다. 화가에게 그림을 부탁하면서 많은 돈을 쓴 것을 절약했고, 정부나 다른 쪽에 그 그림을 일종의 뇌물로 바치는 부패의 고리를 차단하였고, 또 직원들이 이제 우리 아들, 딸의 그림도 은행 카렌다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여 애사심을 높인 그 조치들은 돈으로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직원들과 고차원적인 커뮤니케이션(employee communication)을 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PR인들도 쉽게 생각하지 못한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기법이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2001년 호놀룰루 마라톤대회에 단체로 참가한 호리에 행장과 제일은행직원들의 이야기이고 그때 참석한 직원들은 호놀룰루마라톤대회를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에 비유하기도하였다. 제일은행이 많은 문제를 안고 외국에 팔렸기에 따가운 국민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데 한가롭고 사치스럽게 18명씩이나 해외마라톤대회에 참가시키느냐라는 비난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시점이었으나 호리에는 과감하게 참여를 결정한다. 호리에 행장은 호놀룰루마라톤대회 내내 대회에 참가한 직원들의 후원자 역할을 하였다. 그는 대회 중에는 주로 32km 지점쯤에서 오렌지를 썰면서 자원봉사자로 참가하였다. 태극기와 제일은행 깃발을 텐트에 걸고 밴드도 동원하여 열심히 응원하였다.
호리에 행장의 부인도 참가자들에게 물을 나눠주며 열심히 봉사하였다. “마라톤에서 가장 힘들어지는 30km 이후 지점에서 행장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을 보는 제일은행 직원들의 마음에 밀려올 감동이 얼마나 클지 저는 직원이 아닌데도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고 선주성 마라톤 컬럼니스트는 회고하였다. “저와 같이 갔던 일행들은 모두 완주 후에 호텔로 향했습니다. 호텔로 호리에 행장의 전화가 왔습니다. 대회 결승점이 있는 카피올리니 공원 한 쪽에 간단하게 점심을 준비했으니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호리에 행장이 일일이 직원들의 밥을 떠주며 완주한 직원들을 개선장군처럼 대접하고 있었습니다. 쇼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눈빛과 손길, 그리고 호리에 부인의 따듯한 말씀, 이 모든 것은 직원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진심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주성씨의 이야기다.
호리에 행장은 연봉 34억원의 사나이였다. 연봉 34억원은 물론 큰 액수이다. 그러나 그가 CEO로서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은행의 이미지를 개선한 것을 돈으로 평가한다면 34억보다는 휠씬 큰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계 경제를 움직인다는 미국 맥그로 힐에서 발간하는 비즈니스위크지는 “한국 금융시스템을 개혁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호리에 행장이다”라고 호리에 행장을 평가하였다. 호리에 그는 분명 사내직원 커뮤니케이션(employee communication)과 이문화 커뮤니케이션(intercultural communication) 의 최고 전문가임에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