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일순간에 일약 스타가 되어 돈방석에 올라서게 된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밖에 사람들이 보기에는 일순간에 그런 일이 벌어진지 모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힘든 견딤과 힘든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벤쳐붐 훨씬 이전 1989년경에는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개 발은 많은 언론이 관심을 가졌던 분야이고 운이 좋게도 그때에 좋은 소프트웨어가 하나 나오게 되면 언론이 앞장서서 보도하다보면 따로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좋은 사례하나를 소개한다.
1989년 서울대학교 공대 전자계산학과 4학년생이던 이찬진을 비 롯한 몇몇의 학생들이 아래아 한글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것이 시중의 화제가 되었다. 일반인에게 컴퓨터 하면 당 시 용어로 퍼스컴(PC)이라는 하드웨어만 있는 줄 알고 있던 때 에 이찬진씨(현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드림위즈' 사장)가 개발한 아래아 한글은 소프트웨어가 있어야만 하드웨어가 제 구실을 한 다는 점을 알려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언론은 이찬진씨가 만든 워드프로세서가 유명한 컴퓨터 회사가 만든 제품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더구나 배우는 학생의 신분으로 이런 훌륭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이찬진의 아래아 한글을 연일 대서특필했다. 이찬진에 대한 인물소개부터 제품에 대한 소개와 제품 개발과정 등 이찬진과 아래아 한글에 대한 것은 거의 모든 내용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순수한 기사만으로도 이찬진과 아래아 한글을 모르면 간첩이 될 정도로 기사화의 위력은 대단했다. 당시로서는 쓸만한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너무 없었기에 가뭄에 단비 만난 격의 타이밍도 적절했지만 순수한 학생의 신분인 '이찬진'과 그가 만든 '아래아 한글'의 신기할 정도의 우수성은 여러모로 높은 뉴스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언론의 스폿 라이트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신문, 잡지, 방송에서 다양한 언론 매체가 발표하는 기사 그 자체는 광고보다 몇십배 몇백배의 위력을 발휘했다. 대학생들의 한낱 습작품에 불과할 수도 있었던 아래아 한글을 이와 같이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소개하자 이에 힘입어 이찬진씨는 1990년에 아래아 한글을 개발, 판매하는 '한글과 컴퓨터'를 창립하여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다. 이 '한글과 컴퓨터'가 IT벤처 기업의 효시로도 자주 언급되는 것은 당시 '이찬진'이라는 네임 밸류와 '한글과 컴퓨터의 아래아 한글'이라는 제품의 유명세 때문인데 이는 여타 마케팅 활동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언론에서 기사화하여 준 덕택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학생이 광고를 할 여력 있었던 것도 아니고, IMF이후처럼 IT벤처 대한 투자 붐이 당시에 일어났던 것도 아니므로 프로모션 할 비용도 없었던 상황이었음에도 오로지 제품하나 제대로 만들었고 이를 언론에서 인정하여 기사화를 통하요 홍보(마케팅 PR)를 대신 해줌으로써 큰 비용 없이도 회사설립이후 한때 벤처 신화로 인정받는 사세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한글과 컴퓨터의 아래아 한글의 신화의 이면에는 한국 언론이 끼친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는 점에서 마케팅 측면에서 언론 기사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게 하는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