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정부기관 중에서 연간 2천만 달러에 달하는 최고 액수의 PR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이 중에는 대국민 정보활동비로 5백만 달러, 연간 2백만 명에 이르는 9개 우주센터의 방문객 접대를 위한 공공서비스 비용 350만 달러도 포함되어 있다.
NASA는 미국의 정부기관 중에서 가장 완벽하고 기민한 PR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기관으로 알려졌 있다. 1986년 1월 28일 단 73초 사이에 발생한 전례없는 참사로 인하여 NASA는 물론 국가 전체가 큰 위기에 몰렸을 때까지는 PR과 관련한 NASA의 명성에는 빈틈이 없었다. 우주선 챌린저호가 전국의 TV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폭발하여 7명의 탑승원 전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 최초의 일반 시민 우주비행사인 뉴햄프셔 고등학교 교사 크리스타 맥올리프씨도 희생됐다.
챌린저호 폭발은 국가적인 참사였을 뿐만 아니라 사고발생 후 NASA가 대처한 위기관리 측면에서도 참사로 기록된다. 우주선 발사 직후 폭발과 함께 2분 가까이 불덩이가 튀는 것이 TV화면에 생생하게 방영되었으며, NASA의 사령탑 해설자가 고장으로 인한 대폭발 사고라고 냉정한 목소리로 설명한 것 등은 위기상황에 대한 미숙한 대응이었다. 더욱이 NASA PR당국의 위기관리 매뉴얼에 의하면 사고발생 후 20분 내에 공식성명서를 발표하여 루머와 추측에 의한 부작용을 방지하도록 해 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참사 후 무려 5시간이 지나도록 사고와 관련하여 아무런 발표도 없었다.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NASA의 우주선 발사 책임자는 수백 명의 기자들에게 아무런 새로운 뉴스도 전달하지 못했다.
며칠간 NASA는 발사에 관련된 모든 서류, 심지어는 발사 수시간 직전의 기상과 기온에 관한 자료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사고와 관련된 정보를 감춤으로써 기자들은 비공식적이거나 익명으로 발표되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추측 기사들이 난무했다. 20년 넘게 NASA를 출입하면서 취재한 한 기자는 불꽃의 원인이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보조로켓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주장은 나중에 진실에 가장 근접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NASA 당국자들은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일체의 정보유출을 금하는 자세를 고수했다. NASA 직원의 표현에 의하면 우주왕복선 프로그램과 그 시행에 관련된 일체의 정보유출을 막는 일이 급선무였기 때문이었다. 언론의 반발은 거세었다. 귀중한 인명과 기술의 상실과 함께 PR활동의 원칙에도 크게 어긋나는 행위라고 규탄하고, 향후 NASA의 신용과 명성을 손상하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사건발생 후 2년 반 동안 챌린저호 참사에 대해 NASA가 취했던 언론대응이 여러 각도에서 비판되었다. 챌린저호의 잔해를 수거한 배가 귀항할 때에도 사진기자나 카메라맨이 촬영하지 못하도록 한 NASA의 부두 접근 금지 명령을 언론은 무시해 버렸다. 한편 우주비행사들의 시신이 도착했을 때 NASA는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빈 앰뷸런스를 공항 부근 병원에 파견하기까지 했다. 기자들은 분개했다.
그 후 고체연료 제작업체인 몰튼 티콜사가 1986년도 연차보고서에서 참사와 관련된 사항을 거의 언급하지 않은 사실에 언론은 주목했다. 각 미디어는 특집기사를 통하여 연료의 결함이 참사의 원인이었다고 보도했다. 또 사장단으로 구성된 참사조사위원회가 발사에 이의를 제기한 티콜사 실무진들의 의견을 책임자들이 무시한 사실을 밝히고 이를 사고의 원인으로 결론지었다고 보도했다.
1988년 겨울 PR리뷰지에는 "록웰사-우주선 참사 원인 규명에 미온적" 이라는 제목으로 비난기사를 실었다.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의 주계약업체인 록웰인터내셔널사가 NASA의 교사로 언론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존 카우프만 기자는 기사에서 록웰과 NASA의 '노-코멘트' 작전이 정보의 공동화를 초래하여 결국 기자들은 그들의 내부자 또는 적대적인 경쟁사에서 취재원을 찾는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챌린저호 참사는 인재였으며 또한 PR계의 비극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참사관련 당사자들의 PR차원의 실수는 미국 우주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